정연희의 『백스무 번째 죽음』
정연희의 『백스무 번째 죽음』
  • 독서신문
  • 승인 2009.05.12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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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책] 소설가 김진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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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연희 선생의 장편소설 『백스무 번째 죽음』을 읽고 나는 몇몇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 책을 선물해야지 마음먹었다. 모처럼 소설다운 소설, 누군가에게 꼭 읽히고 싶은 소설을 만난 것이다. 이 소설만큼은 나 혼자 읽기에 정말 아까웠다. 참으로 오랜만에 나는 독자로서의 행복감에 젖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내 가슴을 쥐락펴락하면서 농락하는 작가의 솜씨에는 독자로서의 감동과 동업자로서의 질투심을 동시에 느꼈다. 소설이 끝나갈 즈음에는 차마 책장을 넘길 수 없어 부러 차 한 잔을 타가지고 와서 시간을 끌었다.

 근래 들어 이토록 재미와 깊이를 고루 갖추고 거기에 품격까지 갖춘 명품소설을 만난 바 없다. 그래서 나는 책을 덮고도 오랫동안 『백스무 번째 죽음』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인 삶과 사랑과 운명의 이면을 슬그머니 들춰내고 거기에 확대경을 들이대어 누구도 예상치 못한, 그러나 따지고 보면 세상사 면면이 있어온 장면을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예리하게 짚어주는 솜씨와 더불어 적절한 부분에 그라데이션된 판타지수법도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요즘 젊은 작가 뺨치게 유려하고 감성적인 문체와 묘사에는 절로 무릎이 쳐지면서 역시 태생적으로 작가일 수밖에 없는 정연희 선생이구나 생각했다. 이 작품에서 정연희 선생은 우주와 인간, 자연과 문명, 사람과 사람의 순환고리와 해법을 목소리 낮추고 들풀을 눕히는 바람처럼 가만가만 들려준다. 결국은 그거다. 운명을 극복할 수 있는 해법은 자연이다. 자연은 늘 거기 그대로 있고 해답도 거기 있는데 다만 눈이 어두운 우리가 찾지 못하는 것이다.
 
 모 계간지 2008/가을호에 평론가 이경재가 언급한 정연희의 작품세계를 보면 “한 작가의 문학성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작품의 수준, 활동기간, 작품의 양을 꼽을 수 있다면, 정연희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성과를 남긴 작가이다. 첫 번째 기준은 그가 그동안 수상한 문학상의 목록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활동 기간에 있어서도 그녀는 스물이 갓 넘은 대학교 3학년 때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래 칠십이 넘은 지금까지 단 한 차례의 공백도 없이 꾸준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중략) 객관적인 고찰만으로도 정연희는 한국 현대문학의 거목이라 불러 넘치지 않을 것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사실은 그녀의 지속적인 활동이다. 조로(早老)가 상례가 되다시피 한 한국 문단에서 그녀의 정열적인 활동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경이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그녀가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결연함으로 얻고자 했던 단독자의 그 존엄과 자유는 이제 그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때의 단독성은 근대의 일반화된 개인주의와는 격을 달리하는 타자와의 공감과 열림의 뜨거운 숨결을 받아 안은 것이다.
 정연희가 최근의 소설에서 보이는 조화, 화해, 포용, 관용, 종합의 몸짓은 반백년의 삶과 문학을 오로지 다 바쳐 얻어낸 우담바라와도 같은 것이다. 이러한 성숙한 말년성은 전후의 그 짐승스러운 이분법과 동일성의 폭력에 맞선 치열했던 단독성에의 열망을 거치고 이룬 것이기에 더욱 빛난다. 오랜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그녀의 문학이 바래지 않는 이유이다.”라고 평론가 이경재는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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