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을 욕망한다.
욕망을 욕망한다.
  • 관리자
  • 승인 2005.1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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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대곤의 『망둥이』를 읽고




  이 작품은 주인공의 욕망을 환상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무의식을 잘 드러낸 작품이다. 또 한국의 전통적인 의식과 오늘날 자본주의 구조 하에서의 인간의 욕망, 누구나 인간이면 언제나 돌아가고 싶어 하는 유년기적 순수자아 등이 등장하여 정신분석학으로 해석하기 좋은 작품이다.
 
 주인공 하봉기는 자신 속에 각기 세 가지의 다른 욕망을 향해 ‘망둥이’처럼 뛰고 뛴다. 첫 번째는 자신의 현실을 억압하는 ‘대타자’로써 작동하는 아버지의 욕망에 의해서이고, 두 번째는 자신 속에 타자로서 존재하는 ‘맞수’인 최인구의 욕망에 의해서이고, 세 번째는 그리움으로 남아 애정을 갈구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욕망으로 남아 있는 혜련에 대한 욕망이다.



아버지의 욕망

 ‘대타자’로서 아버지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은 하봉기에게 있어 관습적 사회적 억압의 형태로 나타난다. 즉 우리나라 유교적 문화의 잔존 형태로 남아 있는 관습적인 욕망이다. 위신, 명예, 체면, 권위를 숭상하는 문화적 형태로서 하봉기가 끊임없이 명예를 갈구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하봉기가 추구해야 할 ‘면서기’는 하봉기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직종임에도 아버지는 하봉기가 태어날 때의 태몽만 믿고 하봉기가 면서기는 할 것이라 믿는다. 이것은 하봉기에게 억압의 형태로 나타난다.

  하봉기의 욕망이 아버지의 욕망일 때, 하봉기 자신은 자신이 아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 자신의 모든 것은 무의식중에 일어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봉기 자신의 욕망이 아니고, 세상의 담론에 의해서 형성된 욕망이기 때문이다.

  하봉기의 욕망의 대부분은 자신에 대한 오인에서 오는 것이다. 하봉기 자신의 거울에 비춰진 상은 아버지의 상이다. 하봉기는 그것을 자신의 상으로 오인한다. 그러기에 하봉기는 그 자신의 상을 죽을 둥 살 둥 ‘망둥어’처럼 따라다닌다.
 이 아버지의 상이 하봉기의 초자아다. 현실의 자아와 초자아 간의 틈이 너무나 커서 하봉기는 따라잡을 수가 없다. 허수아비처럼 사람들이 떠다밀면 어쩔 수 없이 밀려갈 뿐 가는 길이 어디고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의식이 없는 것이다. 하봉기는 현실적 자아가 아닌 초자아를 따라다니다 보니, 현실 속의 남과 어울려 살아야 하는 실제에서는 고립될 수밖에 없다.
 

최인구의 욕망

  하봉기의 명예에 대한 환상보다 최인구의 현실적인 욕망이 더 힘을 발휘하는 것은 바로 지금이 물적 욕망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하봉기의 두 번째 욕망, 최인구를 통해서 나타나는 욕망은 자본주의적 욕망이다. 이 두 번째 욕망이 하봉기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은 아버지의 욕망처럼 현실에 드러내놓고 드러나는 욕망이 아니다.
 베일에 가려진 욕망이다. 이 욕망은 은밀히 진행된다. 이것은 그 사회가 만들어 놓은 금지,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노골적으로 자본주의적 욕망을 드러내는 것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은밀히 진행될 수밖에 없다. 베일은 거세이고 금지이다. 금지가 오히려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아버지의 상이 자신이 추구해야 할 이상적 자아지만, 또 하나 그 시대가 만들어준 또 하나의 이상적 자아, 자신이 닮고 싶지 않지만 자신이 좇아가야 하는 이상적 자아가 바로 최인구다. 하봉기는 결혼생활 초기부터 수단 좋은 최인구의 도움으로 버텨왔다. 여인숙 초창기 시절 손님을 끌어준 것도 최인구고, 자신이 신문사 지국을 차리는 데 필요한 돈을 꾸어준 것도 바로 최인구다.
 최인구는 비밀 춤방에 창녀까지 몇 명 데리고 포주 노릇을 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비열한 하수인이다. 명예와 위신을 중시하는 하봉기의 양심은 최인구를 놀라움과 수치심을 가지고 바라보지만, 또 한편 질투를 가지고 바라본다. 자신의 베일에 가려 있는 대타자는 끊임없이 최인구를 응시하게 하고 그를 질투하게 한다.
 
혜련에 대한 욕망

  혜련은 하봉기의 유년기 세계에서 자신과 동일시되던 자신의 원초적 자아다. 혜련이 떠나버림으로써 원초적 자아와의 동일시를 통하여 한 몸이 되려는 욕망을 이룰 수 없었던 하봉기는 그리움을 안고 산다.
 혜련이와의 결합은 유년기 시대의 순수적 자아의 동일시 속에서 일어난 사랑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근친상간적 사랑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그러기에 실체는 없고 그림자만 있는 그리움의 대상일 뿐이다. 사랑은 몸이 아니라 이미지기 때문이다.

  혜련이 떠남으로써 혜련과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의 벽이 만들어진 것이고, 그래서 그리움의 대상이고 귀순과의 사랑은 그 벽이 없기 때문에 미움의 대상이 된다. 혜련과 귀순은 하봉기가 닮고 싶은 자아이면서 동시에 파괴해야 할 대상이다.
 전자는 혜련이를 통해서 나타나고 후자는 귀순이를 통해서 나타난다. 이것은 작품의 제일 마지막 장면에 귀순과 최인구를 살해하는 장면에서, 또 혜련이와 자신을 동일시, 자신의 욕망에서 벗어나 순수자아로 돌아간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이 작품은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을 왕래하며 인간의 의식을 잘 드러낸 작품이다. 그리고 어디로 뛸지 모르는 ‘망둥어’라는 이미지를 통해서 한국남성의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돈 있는 여편네 만나, 덕분에 자신은 거들먹거리기만 하면 되는 인간 유형을 적나라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이덕화(문학평론가 · 평택대 교수)

독서신문 1390호 [2005.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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