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vs영화 - 『더 리더_책 읽어주는 남자』
소설vs영화 - 『더 리더_책 읽어주는 남자』
  • 독서신문
  • 승인 2009.04.2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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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소년과 서른여섯 여인의 은밀한 사랑
법,문자,사랑의 상관관계 그린 슐링크 소설 영화화
▲ 영화 <더 리더> 포스터(왼쪽), 소설『더 리더』표지(오른쪽)     © 독서신문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소설『더 리더_책 읽어주는 남자(이하 더 리더)』가 영화화됐다.  『더 리더』는 독일어권 소설 최초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미국에서 1백만 부 넘게 판매된 작품이다. 이 작품을 본 스키븐 달드리 감독은 운명적인 이끌림을 경험했고 여주인공 ‘한나 역’으로 ‘케이트 윈슬렛’을 지목했다. 슐링크와 달드리는 왜 그녀를 한나로 선택한 것일까?

케이트 윈슬렛은 우리에게 <타이타닉>의 여주인공 ‘로즈’로 기억되는 배우다. 그게 벌써 10년 전 일이다. <타이타닉> 후에 많은 영화를 찍었지만 안타깝게도 크게 기억되는 영화는 없다. <네버랜드를 찾아서>에서는 조니 뎁의 연기에, <이터널 선샤인>에서는 짐 캐리의 연기에 묻혀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얼마 전 개봉한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통해 10년 만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연기호흡을 맞추면서 세간의 이목을 끌었고 <더 리더>를 통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하며 그녀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소설을 읽은 독자들이라면 분명 영화 속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에 감탄할 것이다. 그녀는 순수하지만 자존심 강한, 세상앞에 당당하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한나’를 세상밖으로 끄집어 냈다. 관객들은 그녀의 연기 변신에 놀랐다. 전라의 연기를 펼친 그녀의 대담함은 물론이고 <타이타닉> 이후 10년동안 묻혀있던 그녀의 연기 내공에 혀를 내둘렀다. 

 
 

영화는 소설의 큰 줄거리와 원작자인 슐링크의 메시지를 올바로 담아내고자 노력했으며 무엇보다 한 남자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던 운명적 첫사랑을 담고자 노력했다.

열다섯 살 소년 미하엘은 길을 가던 중 간염으로 인해 심한 구토를 일으키고 우연히 소년을 지켜 본 서른여섯의 여인 한나의 도움을 받게 된다. 미하엘은 감사 인사를 하러 그녀를 다시 찾게 되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강한 끌림을 느끼며 세상에 밝힐 수 없는 비밀스런 연인이 된다.

한나와 미하엘의 묘한 의식. 관계를 가지기 전 미하엘은 한나에게 책을 읽어주고, 함께 샤워를 하고 사랑을 나누고, 그리고 나서 잠시 같이 누워 있는 두 사람만의 이 의식은 아름다우면서도 세간의 논쟁을 일으켰던 부분이다. 열다섯 소년 미하엘과 서른여섯의 성숙한 여인 한나 사이의 사랑이 과연 ‘사랑이냐, 성적 학대냐’는 것이다. 분명 현실에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나이차이다. 더군다나 상대는 미성년자다.

 
 

 

실제 영화에서 어린 미하엘 역을 맡은 배우 '데이비드 크로스' 또한  처음 촬영을 시작할 당시 미성년자였다. 제작진들은 영화가 공개됐을 때 닥칠 후 폭풍을 염려해 영화에 등장하는 섹스 장면을 크로스가 18세가 되던 생일에 급히 촬영했지만 많은 관객들과 평론가들이 이 장면에 대해 윤리적으로 옳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슐링크는 두 사람의 나이 차이를 언급하는 것을 이해 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미하엘과 한나의 관계를 통해 자신이 진정으로 그리고 싶었던 것은 전쟁 이전 세대와 이후 세대 간의 관계와 세대 차이였고, 미하엘과 한나의 관계는 소위 ‘68세대’라고 불리는 신진 세대와 구세대 간의 관계에 대한 메타포라고 설명했다.

『오디세이』, 『에밀리아 갈로티』, 『간계와 사랑』등 미하엘이 한나에게 읽어주는 책의 수는 늘어가고, 사랑이 깊어 갈수록 한나의 알 수 없는 불안감은 커져만 간다. 그러던 어느 날, 한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남겨진 미하엘은 한나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진정이었는지, 반대로 자신에 대한 한나의 사랑 역시 진정이었는지에 대한 지울 수 없는 마음의 불신을 갖게 된다.

 
 

이 작품의 모든 사건은 한나의 ‘문맹’ 으로 귀결된다. 두 사람의 관계가 지속되는 것도 문맹인 한나에게 미하엘이 책을 읽어주기 때문이고, 한나가 갑자기 미하엘을 떠나는 것도 글을 읽고 써야 하는 사무직으로 승진하면서 자신이 문맹임을 들킬까봐서다. 그리고 나치 전범 재판소에서도 문맹임을 밝히면 죄가 경감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나는 끝끝내 자신이 문맹임을 밝히지 않고,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 미하엘도 침묵을 지킨다.

감옥에 있으면서 그녀가 제일 먼저 한 일을 문맹에서 벗어나기 위해 글을 배운 일이다. 그녀가 글을 배운 이유는 미하엘과의 사랑 때문이다. 하지만 미하엘은 감옥에서 그녀가 죄를 뉘우치기고 자신에게 용서를 빌길 원한다. 그녀는 그와의 사랑만을 생각하고  미하엘은 그런 그녀를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런 두 사람의 생각차는 결국 그녀를 자살로 내몬다.

사랑과 나치의 시대사,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밑바닥에 자리 잡은 인간의 자존심과 약점의 문제가 이 소설의 내적인 근간을 이룬다. 따라서 미하엘과 한나의 사랑은 슐링크의 설명처럼 보다 높은 차원을 향한 알레고리적 요소를 담고 있다. 사랑과 죄의식, 이해와 유죄판결, 그리움과 수치와 분노라는 상반되는 감정이 주인공의 마음을 끝까지 괴롭히는 모티프로 남아 있는데, 이 문제는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철학적인 차원으로까지 상승한다.

 
 

누구에게도 밝히고 싶지 않은 비밀 때문에 나치 수용소의 감시원으로서 살인을 저지르고, 게다가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죄까지 뒤집어쓴 한나는 어찌 보면 전쟁에 이용당하고 유린당한 한 개인에 지나지 않는다. 법의 이름으로 그녀를 심판하고 그녀에게 종신형을 선고하며 손가락질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녀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사람들 역시 그녀가 저지른 죄과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더 리더>를 본 관객들을 열띤 토론을 벌였다. 에로티시즘, 비밀, 죄의식,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 작가의 의도, 영화에 숨겨진 암시 등에 관한 이 자극적인 토론들은 영화를 그저 감상하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생각하고 토론'하는 고차원적인 영화감상의 묘미를 제공해줬다. 문학, 영화, 음악은 보고, 듣고, 감상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람과 예술을 소통하게 만드는 도구다. <더 리더>는 우리에게 소통의 길을 열어준다.

<양미영 기자> myyang@reader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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