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그램(큐브의 수수께끼) 7회
아나그램(큐브의 수수께끼) 7회
  • 김나인
  • 승인 2009.04.29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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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인 연재소설
[독서신문] 김나인 소설가 = 다행히도 벤치의 자리는 자신의 고정 좌석처럼 누구도 앉아 있지 않았다. 간혹 노숙자가 신문지를 이불삼아 덮고 누워 잠을 자고 있던 적도 있었다. 스트로에 그녀의 고르지 못한 치아와 두툼한 입술이 어색한 미소에 드러나며 헤이즐넛을 한 모금 빨아들였다. 따뜻한 온기가 울대를 넘어 위장으로 스며들고 있다.

작은 가방에 넣었던 편지 봉투를 꺼내 들었다. 휴지통에 버릴까도 생각했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날라 오는 주치의의 편지 내용이 오늘따라 궁금했다.

성안드레아 정신병원에서 퇴원 한지 사년이 흘렀지만 몇 년 전부터 주치의의 편지는 일주일에 한 통씩 배달되었다. 내용은 전에 받았던 편지 내용과 별다를 바 없겠지만, 유일하게 자신과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은 주치의 단 한 사람뿐이었다. 퇴원은 하였지만 통원치료를 받으라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퇴원 이후 한 번도 통원치료를 받은 적은 없었다. 조울증과 우울증은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흔한 신경질환 일뿐 환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단지 주치의의 정성스럽게 적은 편지를 읽어 내려가는 순간 심장 박동 수가 빨라지더니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울먹이고 있다. 과거의 치부와 아픈 기억이 떠올라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안녕하세요. 최가람씨. 이 편지를 쓰는 몇 년 동안 주치의로서 의무에 대한 책무를 소홀히 했다는 것에 깊이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조울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당신의 주치의의 직무를 맡았을 때 치료가능성과 완치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상태는 여전히 외부와의 접촉을 기피했고 병실에 앉아 온종일 울거나 벽면에 추상적인 그림과 낙서를 할 뿐이었습니다. 주치의인 저로서는 당시 조울증과 우울증 환자를 연구하며 논문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로서는 당신을 만나 논문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사실 도움은 많이 되었고 대학교 강단에서 ‘처방이란 없는 것인가?’란 주제로 강연 자료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당신도 나의 논문을 완성시키는데 일조 한 것은 분명합니다. 물론 당신과 주치의의 합의에 의한 것이었지만.

 
- 다음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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