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편지. 이 네 음절의 단어는 괜시리 사람 마음을 설레게 한다. 연애편지를 쓰는 당사자의 절절한 마음, 절절한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난 연애편지를 받은 이의 떨리는 마음, 누군가의 연애편지를 우연히 발견했거나, 몰래 훔쳐보는 이의 호기심 가득한 마음 모두 설레기는 마찬가지가 아닐까?
 
글재주가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하는 이에게 연애편지를 쓸 때 유명 시인의 싯구절이나 노래가사를 인용한다. 그런데 아름다운 시와 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도대체 어떻게 연애편지를 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시어 하나를 선택함에 있어서도 몇 날 며칠을 고민하는 그들이 사랑하는 이에게 그 떨리는 순간의 감정을 조금 더 멋지고 아름답게 표현하기 위해서 얼마나 오랫동안 고심하고 머뭇거릴지 짐작이 가기에.
 
그런 의미에서 섬세한 감성과 유려한 문체가 본업인 국내 작가 27인의 연애편지를 담고 있는『작가들의 연애편지』는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김동리, 김훈, 함정임을 비롯한 27명의 작가들은 지난 세월 비밀과 금기로 서랍 속에 봉인해뒀던 각자의 연애편지를 세상에 내놓았다. 수신자의 이름부터 해묵은 발신일의 명기까지 이들의 연애편지에 담긴 각 사연들은 날것 그대로의 모습이다. 작가의 청춘과 현재의 기록이며, 추억의 속살이 여과 없이 드러난 연애편지가 독자들에게 노출되고, 책으로 묶이는 건 이번이 국내 처음이다.
 
돌풍처럼 스쳐간 사내에게 끝내 이별을 고하는 하성란의 편지, 첫사랑이었던 여선생님께 세월이 흐른 후 진심을 고백하는 박상우의 편지, 짝사랑에 휘둘린 한 사내에게 받은 정끝별의 편지, 병약한 고학생이었던 자신과 결혼해준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이승하의 편지, 연인보다 더 살가운 이성친구와 주고받은 함정임의 편지, 나이어린 여대생과 격정적인 사랑을 나눈 마광수의 편지, 죽은 아내에게 보내는 박제천의 편지, 타인에게서 연인의 모습을 읽어낸 권현숙의 편지, 여행길에서 몸의 감각을 사유하는 이문재의 편지, 사랑과 기억에 관한 메모장을 들춘 김훈의 편지, 소설가 김지원에게 사랑과 우정을 전하는 서영은의 편지, 소설과 편지의 장르 구분을 허문 작고한 김동리의 편지까지 시인, 소설가, 극작가 27인은 이물감 없는 순수한 연애 감정과 뛰어난 문학성을 연애편지 속에 담아냈다.
 
이 책에 실린 연애편지는 작가가 자발적으로 내놓은 김동리, 김훈의 편지를 제외한다면 엮은이의 기획으로 2003년 11월부터 2006년 1월까지 한 월간지에 게재된 것들이다. 엮은이는 작가의 연애편지를 공개한다는 문학사적 의미 외에 독자들에게 연애편지가 지닌 문학성을 환기시키고자 했다.

『작가들의 연애편지』가 단순히 독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나라에서도 작가들의 편지가 하나의 문학 장르로 인정받게 되는 데 중요한 발판이 되기를 바래본다.  

김다은 엮음/ 생각의나무/ 244쪽/ 9,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