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으로]박쥐
[영화속으로]박쥐
  • 독서신문
  • 승인 2009.04.27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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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더 선(善)해지기 위한 욕망
욕망을 바라보는 박찬욱 감독의 새로운 시각
송강호, 고뇌하는 사제연기 돋보여
▲ <박쥐>의 한 장면     © 독서신문

“가톨릭 신부가 어떤 상황에 놓였을 때, 신앙이 기로에 놓이게 될까?”
박찬욱 감독은 가장 극단적인 딜레마 상황 속에서 처절하게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 떠오른 소재가 ‘뱀파이어’. 그것도 가톨릭 사제가 남의 피를 빨아먹어야만 하는 뱀파이어가 된다면… 
 
▲ <박쥐>의 한 장면     ©독서신문
알랜드 보통은 『불안』이라는 책에서 “불안은 욕망의 하녀다”라고 정의했다. ‘박쥐’의 주인공 신부 성현 (송강호) 역시 자살과 성적 욕구로 불안해하는 사람들의 고해성사를 들으면서 그들의 욕망에 다가간다. 하지만 상현의 욕망은 다르다. 더욱 더 선(善)해지고 깨끗해져야한다는 사제로서의 욕망. 욕망의 사전적 풀이도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함. 또는 그런 마음”. 이를 보더라도 선(善)함 역시 욕망의 대상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 사람들이 자신의 선(善)함에는 자신없어하기 때문이다. 신부라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그 이전에 상현 역시 인간이기에 이러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상현의 선(善)해지기 위한 욕망은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한 백신개발 실험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면서 극에 달한다. 죽어가는 사람들만 살릴 수 있다면 자신의 목숨은 잃어도 상관없다는 사제로서의 신념. 하지만 극선(極善)에 이르면 이를 파괴하기 위해 극악(極惡)은 더욱 거세게 몰아치는 법. 상현은 뱀파이어의 피를 수혈 받음으로써 아주 근원에 있는 원초적인 욕망의 도전을 받게 된다.
 
이처럼 피는 상현의 욕망을 깨우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영화 전체에 등장하는 시뻘건 피는 인간 내면에 있는 더러운 욕망을 자극하여 인간이 얼마나 더 추해질 수 있는지를 여과없이 보여준다. 상현은 자신이 돌보고 있는 환자의 피를 훔쳐 먹으면서 단지 피를 빌릴 뿐이라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시키지만 이 역시 거세게 몰아치는 근원의 욕망에 무릎을 꿇는 것으로 보인다. 
 
▲ <박쥐>의 한 장면     © 독서신문

반면 ‘박쥐’는 징글징글한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 기자간담회를 통해 송강호는 “기나긴 인생을 살아갈 때,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 동경하는 감정은 사랑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상현이 친구의 아내를 탐하고, 피를 훔치는 등 사제로서는 치명적인 오점을 남기면서 지금까지 근접하지도 가질 수도 없었던 사랑이라는 감정을 갖기 위해서 엄청난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결국 상현은 태주(김옥빈 분)와 사랑을 나누면서 인간에게 있어 사랑만큼 강한 욕망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한편, 익히 알려진 송강호의 성기 노출은 잘못된 신앙을 하는 장애 여성을 성폭행하는 장면에서 나온다. 실험에서 살아남은 단 한 사람인 상현을 메시아로 여겨 구원을 얻으려하는 신자들에게 치졸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상현은 보다 선(善)해지고자 하는 욕망, 자신을 옭아매왔던 억압에서 자유로워진다. 오히려 상현이 구원을 받은 것이다. 충격적인 이 장면이 숭고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이렇듯 영화 ‘박쥐’는 다양한 욕망의 감정 (그 욕망이 선(善)이라 할지라도)을 충돌시킴으로써 인간의 본성을 단순하게 좋고 나쁨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다양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도록 해준다. 칸 경쟁부문에 출품된 ‘박쥐’가 박찬욱 감독의 작품세계에 새로운 획을 긋는 작품이 될지 기대가 모아진다.
 
<강인해 기자> toward2030@reader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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