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타이거
화이트 타이거
  • 독서신문
  • 승인 2009.04.06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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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했던 것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회”
아라빈드 아디가의 『화이트 타이거』
▲     © 독서신문
“돈은 최선의 종이요, 최악의 주인이다”
르네상스 후의 근대철학자이자 영국 고전경험론의 창시자인 프랜시스 베이컨이 한 말이다. 산업주의가 발달하면서 더욱 큰 격차를 보이는 ‘빈부’는 마치 가속페달을 밟은 것처럼 더욱 틈새가 벌어지고 있다. 그 와중에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존중받아야 할 인격도 무참히 유린당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아라빈드 아디가의 『화이트 타이거』는 계급 차별을 받는 인도인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작품으로 자본주의에 완전히 짓이긴 인권이 어디까지 바닥에 내몰렸는지를 거침없이 비판하고 있다. 중국 원지아바오 총리에게 보내는 서신의 형식으로 쓰인 이 책은 무나(어린아이라는 의미)가 각종 천대를 받으며 꾹꾹 눌러온 분노를 살인으로 표출하는 내용을 담았다.

미국인의 운전기사로 일하는 발람은 일정한 나이 때까지 이름 없이 그저 ‘무나’로 불리다가 선거철이 다가오자 부정선거를 조장하는 한 선생님으로부터 투표를 할 수 있는 18세의 나이를 부여받는다. 그리고 학교에 온 장학사는 ‘어떤 정글에 가더라도 희귀한 짐승이 있듯이 한 세대에 딱 한번만 나타나는 동물’을 의미하는 ‘화이트 타이거’라는 호칭을 총명한 발람에게 붙여준다.
 
그동안 가난한 삶에 절어있는 그에게 그의 주인 ‘아쇽’은 그가 세상을 다시 보게 하는 통로이자 그를 변화시키는 터닝 포인트의 역할을 한다. 아쇽의 부인이 저지른 교통사고로 그녀대신 발람이 감옥에 들어가게 되는 상황에 처하지만 상류사회가 이에 대해 느끼는 어떤 죄책감은 없다. 계란으로 비유되는 고급 승용차 안에서 각종 뇌물과 부정, 비리에 연루된 상류층을 보는 발람은 인생의 법칙을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게 되고 결국 자신이 갇혀 있는 닭장에서 벗어나는 길도 철저히 자본주의 원리에 따라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결국 그는 거액의 돈이 들어있는 아쇽의 빨간 가방을 훔치고 달아난다.
 
너무나 무겁고 심각한 이야기지만 그것을 다루는 어조는 역설적으로 굉장히 경쾌하다. 어쩌면 이 둘 사이의 간극이 인도의 가슴 아픈 실상을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하는지도 모른다. 미국인 ‘주인’의 운전기사로 일하는 그는 그의 주인 ‘아쇽’과 그의 형제, 아내로부터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다. 겉으로는 친절한, 그러나 감정 없는 ‘하인의 웃음’으로 주인을 맞이하고 속으로는 분노의 칼날을 도사리고 있는 그의 모습을 저자는 허무할 정도로 감각 없이 그려낸다. 이것이 분노의 마지막 단계일까. 머릿속 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분노는 머리를 뚫고 나갈 수 없어 결국 안으로 사그라지고 사그라진다. 그것은 점점 차가워지면서 사람을 냉철하게 만들고 모든 감각을 얼게 만든다. 마음까지도.
 
인권이 살아있다고 외치는 이 시대, 진정한 인권을 외치고 있었는지 생각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는, 하지만 결국은 씁쓸한 웃음을 남기는 작품이지만 그래서 더욱 우리의 현실을 냉정하게 가늠할 수 있다. 아름다운 로맨스도, 달콤한 사랑의 속삭임도 없는 소설이지만 매섭도록 직설적인 표현으로도 독자를 얼마나 사로잡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황정은 기자> chloe@reader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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