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가요 언덕
잘가요 언덕
  • 독서신문
  • 승인 2009.04.03 10: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용서는 바로 당신을 향합니다”
차인표의 『잘가요 언덕』
▲     © 독서신문
한 사람이 불특정 다수를 살해한다. 그리고 말한다. “더 죽이지 못한 것이 한이다”
햇살이 밝은 어느 날 그는 맑게 웃으며, 서로 웃음으로 화답하며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아이들을 바라본다. 순간, 부러움이 질투로 바뀌고 질투는 시기로, 시기는 분노로 바뀐다. ‘나는 이렇게 불행한데 왜 저들은 저토록 행복한 거야’ 결국 이 분노는 많은 어린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 그는 불특정 다수를 살해했다. 하지만 죽은 아이들의 유족은 모두 특정한 누군가였다. 어느 날 특정한 누군가가 사형을 선고받은 그에게 다가온다. 그 당시 죽은 한 아이의 할머니. 그녀가 그를 찾은 이유는 다름 아닌 ‘용서’를 하고 싶어서란다. “용서라는 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용서란 ‘누군가 죄를 지었을 때 꾸짖지 아니하고 덮어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누군가 자신에게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것을 눈감아 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지만 실은 용서란 ‘절대 용서하지 않으리라’하며 버티고 버티다, 더 이상 자신의 마음이 찢기고 횟칼로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을 참을 수 없어 마지막에 내리는 해결책이다.
 
차인표의 『잘가요 언덕』은 1930년대를 배경으로 호랑이 사냥꾼이 황포수와 그의 아들 용이, 용이와 가슴 깊은 사랑을 나누는 순이, 일제 치하 시대 한국에 주둔한 일본군 가즈오가 서로 얽히고설킨 감정의 실타래를 ‘용서’로 풀어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호랑이 마을에 들어온 황포수와 용이는 마을에서 발생한 불의의 사고로 마을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결국 사랑하는 순이와 용이는 이별을 하게 되지만 오랜 세월 서로를 마음에 품으며 살아간다. 그 사이 일본의 침략으로 한국 내에 일본군이 주둔하게 되고 가즈오는 호랑이 마을에 들어가게 된다. 순수하고 정 많은 호랑이 마을 사람들과 허물없이 지내던 가즈오의 부대는 상부에서 내려온 명령으로 위안부를 소집하게 되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갈등이 고조 된다.
 
차인표는 ‘용서’라는 키워드를 축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엄마를 죽인 백호에 대한 용서, 민족과 민족에 대한 용서 등을 통해 결국 모든 용서는 타인이 아닌 자신을 향한다고 말한다. 사실 용서란 타인에게 받은 상처 뿐 아니라 스스로 자해한 흔적까지도 아물게 하는 능력을 가졌다. 아니, 어쩌면 모든 것의 귀결은 자신을 용서하는 것에서 마무리 되는 지도 모르겠다. 그를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은 그것을 매일매일 아로 새기는 자신에게 각인돼 어느새 마음속에 커다란 벽을 만들게 한다. 마치 통곡의 벽에 둘러쌓인 것처럼 그 안에서 날마다 목 놓아 우는 자신의 모습은 날이 갈수록 스스로에게 상처로 다가온다. 그리고 지쳐간다. ‘너무 힘들다. 이렇게 분노의 칼날을 갈고 있음이 너무 힘들다’ 그리고 용서라는 의미를 조금씩 되새겨 본다. 용서는 뛰어난 성품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처를 받지 않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누구보다 마음이 저리도록 상처가운데 절어본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작품을 통해 10여 년의 집필기간 동안 저자 차인표가 흘렸을 눈물을 가늠하게 됐다. 스스로와 끊임없이 상처와 화해의 줄다리기를 하며 이 작품을 탈고했을 그가 말하는 용서란 결국 스스로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황정은 기자> chloe@readersnews.com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