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개강첫날… 영화감독이 관객 기다리는 기분”
“인문학 개강첫날… 영화감독이 관객 기다리는 기분”
  • 독서신문
  • 승인 2009.04.02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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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정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장, “강의 홍보하느라 발품 많이 팔았죠”
▲ 이우정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장     ©독서신문

 
“지하수가 지표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보존과 개발을 소홀히 한다면 지상의 생물들이 생존하기 어렵게 되는 것처럼, 실용학문들의 기초가 되는 인문학은 학문의 세계에서 지하수의 수맥과 같다” 조광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가 예전 인문학의 위기의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여러 교수들이 모인 자리에서 언급한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한 쪽에서는 자본주의가 팽배한 사회풍조 속에서 일부 대학이 인문학과를 폐과하는 사례와 기업과 국가가 실용적인 인재상만 추구하는 사례를 들며 ‘인문학의 위기’를 외치고 있고 다른 한 곳에서는 ‘지금이야말로 인문학 열풍’이라고 한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지만 두 가지 상반된 관점과 상황이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중심의 사회가 조성하는 분위기와 달리 일반 대중들의 마음속 저변에 ‘인문학에 대한 열망’이 깔려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사례일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한 도서관이 인문학 강의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주민들 마음속에 자리 잡은 ‘인문학 열정’이 ‘열정’으로만 끝나지 않고 ‘실현’될 수 있도록 장장 10개월에 걸친 인문학 여행을 제공하는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 첫 강좌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접수 이틀 만에 정원 60명을 채웠고, 20여명이 등록하지 못한채 그냥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4월 강좌인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보조의자까지 설치해 80명을 모집했고, 이 역시 이틀 만에 마감됐다.
 
지난 2006년 개관한 이곳은 다양한 강좌와 전자자료 통합 서비스 기술을 적용 시켰다는 점에서 꾸준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러한 프로젝트의 총책임을 담당하며 도서관을 활성화시킨 이번 인문학 강좌에 대해서도 매우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었다.
 
“공공도서관에 많은 문화 프로그램들이 있긴 하지만 책과 무관한 프로그램이 현재 많습니다. 물론 도서관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마치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하는 프로그램들이 공공도서관에서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이러한 것들과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가 인문학 강의를 마련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타 도서관과의 차별성’이고 두 번째는 ‘돈 되는 프로그램만 시행하는 곳과의 차별성’이다.
 
“소위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하는 영어, 논술 같은 프로그램이 많은데 역시 도서관에서 굳이 이런 것을 다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시중에서는 돈이 되는 프로그램 위주로 개설되고 상업성이 없으면 아예 만들지 않죠. 이런 빈틈을 공공 도서관에서 메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인문학에 주목하게 된 거죠”


 
▲ 인문학 강의 모습     © 독서신문

 
- 현재 사회 전체적으로 인문학을 배우자는 분위기는 확산되고 있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문학을 어려워합니다. 이런 강의를 마련하기 까지 모험이 필요했을 텐데요.
 
사실 강의를 시작할 때 걱정을 많이 했어요. 실제 사람들이 많이 올까 싶기도 했고… 마치 영화 제작자가 개봉 후 관객들을 기다리는 느낌이랄까요. 게다가 유료강의이기 때문에 더욱 걱정이 되긴 했는데 강좌를 접수하는 날 40여명이 등록을 했더군요. 저희 안에서는 굉장히 성공적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통해 ‘인문학의 수요가 없는 것이 아니었구나’하는 것도 새삼 깨달았고요.
사실 지금 인문학은 대학에서도 비인기 과목이죠. 폐과 되는 대학도 있다는 말을 들을때는 정말 안타깝더군요. 공공 도서관에도 여러 독서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대부분 문학류에 치중돼있고요. 독서지평을 좀 더 넓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독서교육이다, 논술이다’ 이런 기능적인 교육보다 인문학 책을 통해 자기 교양을 넓히고 문제 해결능력과 판단력을 기를 수 있는 강좌야 말로 좋은 독서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문학에도 여러 갈래가 있겠지만 저희가 주목한 것은 실천 인문학이었습니다. 인문학이 연구실에만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생활 속의 인문학, 그래서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췄고 또 그것이 공공도서관이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강의를 시작하기까지의 준비 단계에서 어려움도 있었을 텐데요.
 
처음 이 강좌를 마련할 때 강사 섭외가 어렵더군요. 그래서 도움을 청한 곳이 ‘연구 공간 수유+너머’였습니다. 고병권씨께 이번 강연의 취지를 말씀 드리니까 흔쾌히 승낙을 하시더군요. 그 곳에서 커리큘럼을 받고 프로그램도 그 쪽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 다음 홍보는 저희 몫이었죠. 온/오프라인을 통해 강좌를 알리고, 이곳 근처 대학과 국책연구원에 포스터도 붙이고, 아파트 단지 부녀회에 알리기도 하면서 발품을 많이 팔았습니다. 그리고 강의 오픈을 하자 40명이 등록 하더군요. 

 
- 왜 지금이 ‘인문학 위기의 시대’라고 불린다고 생각 하십니까.
 
요즘은 평가나 학점, 이런 목표를 두고 많은 강의들이 이뤄지고 있죠. 하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공부 방법에서 자유롭고 싶어 해요. 초․중․고교 시절을 다 짜인 프로그램 틀 안에서 보내고, 대학에서는 더 빡빡하게 학점을 받기 위한 수업을 듣고 있죠. 이런 분위기에선 인문학도 시험 과목중 하나일 뿐이에요. 이러한 패러다임을 좀 바꿔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도서관에서 책 읽으시는 분들을 보면 자기 계발서, 소설 등 한 분야에만 치우친 분들이 대부분이고 두루두루 여러 장르에 걸쳐 독서하시는 분은 극히 극소수입니다. 개개인의 취향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을 읽고 싶어도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인문학은 읽고 싶은데 방법은 모르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더 잘 읽을 수 있을것 같다는 욕구가 크죠. 중학교 1학년 된 딸과 함께 오는 학부모를 보면서 이러한 욕구가 누구에게나 있다고 새삼 느꼈어요. ‘인문학의 위기의 시대’라고도 불리지만 사람들 마음속엔 인문학에 대한 욕구가 많다는 것이죠.

 
- 이념논쟁이 한창이던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에 비해 현 젊은 세대는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다소 떨어진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인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그리고 현 젊은 세대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먼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가장 많이 배운 것은 인문학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학문이라는 겁니다. 타인이라는 것은 철학에서 타자라고 하는데 이러한 타인의 고민이 문학, 역사, 철학에 다 녹아 있어요. 사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많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요. 사실 알 필요가 없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들이 인문학을 통해 판단력을 키우고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 이처럼 주목받는 인문학에 대해 일부에서는 ‘경제가 안 좋아지면 은연중에 수면위로 떠오르는 피상적인 인문학 열풍’이라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저희 인문학 강의를 맡고 계시는 강유원 선생님께서 강의 첫날 그러시더군요. “지금이 성장률 0%라고 해서 나는 너무 좋다. 이것은 경쟁이 필요 없는 시대임을 의미한다. 성장률 0%일 때, 즉 바로 지금이 우리 자신을 돌아볼 때다” 이 말이 딱 맞는 것 같아요.
참 역설적이게도 우리나라는 브레이크 없는 사회라고 불릴 정도로 앞만 보고 달려왔죠. 그러다보니 성찰이 없었던 것 같아요. 저는 이제야 우리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유행처럼 번지는 인문학열풍인지 아닌지는 이 불황이 끝나보면 알 수 있겠죠. (웃음) 경기가 호전된 상태에서도 계속해서 인문학에 관심을 보인다면 유행성은 아닌 것이니까요.

 
- 이쯤에서 도서관에 대한 얘기도 해보도록 하죠. 현재 우리나라 도서관 운영에 있어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 하십니까.
 
하드웨어적으로 살펴보자면 문제는 독서실입니다. 도서관의 일반 열람실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도서관 운영은 굉장히 달라져요. 우리나라 도서관의 80~90%는 독서실이 있어요. 하지만 시험 공부하는 독서실이 있음으로 해서 도서관의 개념은 없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냥 독서실일 뿐이지요. 서가를 같이 배치하든지 해서 독서실 문화를 도서관  문화로 바꿔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 현재 국내 많은 도서관이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도서관이 아닌 ‘문화센터’라는 비판도 일고 있고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것은 하나의 변화로 볼 필요가 있어요. 도서관의 개념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죠. 도서관의 단계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어요. 1단계는 독서실 중심의 도서관, 2단계는 책을 대출하거나 이용하면서 반납하는 자료중심의 도서관, 3단계로 복합문화공간으로서 머물고 싶은 도서관이에요. 현재 국내 도서관들이 1단계부터 순차적으로 단계를 밟고 올라서서 그야말로 ‘머물고 싶은 도서관’의 역할을 한다면 긍정적이지만 그렇지 않고 기능적으로 도서관에 수영장 갖다 붙이고, 전시 공간 갖다 붙이는 식의 개념이라면 곤란해요. 도서관이 중심이 되고 그 안에서 영화와 전시도 볼 수 있고, 휴식 공간을 가질 수도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 일부에서는 정작 이 사회에 필요한 것은 주민들이 언제나 접근할 수 있는 작은 도서관이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작은 도서관의 핵심은 접근성입니다. 작은 도서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큰 도서관이 그만큼 많이 확보가 돼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거기서 작은 도서관으로 수혈이 되는 식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큰 도서관은 부족한 채로 작은 도서관만 지어진다면 곤란합니다. 사실 작은 도서관의 운영이 굉장히 열악해요. 취지는 좋지만 도서관다운 도서관이 먼저 만들어지는 것이 먼저에요. 작은 도서관이 활성화되려면 큰 도서관이 많아야 하고 작은 도서관은 큰 도서관에서 지원 받는 협력 관계로 이뤄져야 합니다.
 

- 현재 국내 도서관 중 장애인을 위한 도서관시설은 많이 부족합니다. 예를 들면 시각장애인의 경우인데 이에 대해 개선해야할 부분은 무엇이며 어떤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 하시나요.
 
사실 이 부분은 저희 도서관도 부끄러운 부분이긴 합니다. 현재 대한민국 도서관이 물리적으로 접근하기 힘들어요. 일본의 경우는 도로에서 바로 평지로 도서관에 접근할 수 있고 자동문이어서 휠체어를 타도 바로 들어갈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죠.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각 도서관에서 책 배달서비스와 웹을 통한 전자책 도서관을 통해 보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디지털 도서관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죠. 또한 시각장애인을 위해서는 오디오북과 점자도서를 비치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고요. 사실 이러한 것들을 법적으로 의무화 시켜야 실질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어요.

 
- 도서관 지원과 관련해 어느 부분이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 하십니까.
 
현재 사서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일반 공공도서관에 가면 사서직 인원이 50%도 채 안 되는 곳도 많아요. 도서관이 잘 운영되고 주민들을 행복하게 하려면 도서관 사서가 많아야 해요. 도서관 운영은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병원을 자원봉사자로 운영할 수 없죠. 도서관도 이와 같아요. 자원봉사자는 주민들이 참여해서 사서나 도서관 직원이 할 수 없는 것을 도와주는 것뿐이지 그들이 직접 도서관을 운영할 순 없어요.

 
- 앞으로 도서관 운영계획과 방침은 어떻게 되시나요.
 
도서관이 가장 변화가 안 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지만 사실 도서관은 사회 변화를 굉장히 민감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곳입니다. 콘텐츠를 공급하는 곳인 만큼 주민들이 무엇에 관심이 있고 무엇에 고통 받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서관의 강좌와 문화프로그램도 그런 것을 반영하는 것이죠. 시대의 문제는 출판물에 다 반영이 돼요. 출판이 곧 시대의 거울인 셈이죠. 그런 의미에서 저희 도서관은 신간 도서 몇 가지를 선택해 북 세미나를 하고 있습니다. 주민에게 유익한 책의 저자 초청하기도 하고요. 결국은 책 읽는 동대문 도서관 만들기가 저희의 가장 큰 목적이자 목표라고 할 수 있어요.

직함은 마치 벽에 못을 박듯 사람의 이미지를 단단하게 고정시킨다. ‘도서관장’이라는 직함 자체가 주는 느낌도 그리 ‘프리’하지 않은, 근엄한 이미지를 상기시키지만 이우정 관장은 예상외로 ‘프리’했다. 밝은 체크셔츠의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처럼 그도 체크 셔츠를 입고 있는 모습과 ‘허허허’하고 격의 없이 웃는 모습에서 책과 사람을 읽을 수 있었다.
 
<황정은 기자> chloe@reader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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