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리다(Jacques Derrida)
데리다(Jacques Derrida)
  • 황인술
  • 승인 2009.03.21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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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인술 교수     ©독서신문
 
데리다 1930~2004


자크 데리다는 1930년 알제리 엘 비아르에서 유대계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프랑스 철학자이다. 학문에 대한 관심과 열정 또한 남달라 이른 나이에 장 자크 루소, 프리드리히 니체, 앙드레 지드, 알베르 카뮈 등의 작품들을 섭렵했다. 철학뿐 아니라 문학, 회화, 정신분석학 등 문화 전반에 관한 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특히 현대철학에 해체의 개념을 도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1967년에는 『글쓰기와 차이』, 『목소리와 현상』, 『그라마톨로지에 관하여』 등 첫 저작 3권을 출간했다. 1983년 국제 철학 대학을 창립한 뒤 1984년부터 2004년까지 고등사회과학원의 철학 교수직을 맡았다. 주요 저서는 『근원 저편에 de la grammatologie』(1967), 『에크리튀르와 시차성 l’criture et la différence』(1967) 등이 있다. 2004년  지병인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해체주의(deconstructionism)

해체주의는 전통적 인식방법을 뒤집어 보고 기존개념에 대한 의문의 던지는 등 현실의 권위주의적 획일성을 해체 시키는 강렬한 미적 비판정신으로 플라톤 이래 견고하게 자리 잡아 존재해 온 서양철학의 중심을 허무는 작업이다. 이를 위해서 모든 것을 통괄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자율적 자아의 탈 중심화. 그 자아가 이 세계를 바라보는 원근법적 시선 구조를 해체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이 이론이 관심을 갖는 것은 글쓰기, 독서, 해석에 관한 것이다. 즉, 해체이론은 근본적으로 이전 시대의 서구 형이상학 전통을 부정함으로 시작한다.

데리다는 플라톤 이래 지속돼 온 서구형이상학의 일관된 경향을‘로고스(이성) 중심주의’로 규정하고 육체보다 정신, 문자언어보다 음성언어가 중심인 형이상학의 해체를 주장한다(주체에 대한 사유를 해체). 로고스 중심주의는 절대적인 진리체계를 중심에 놓는데 이는 그와 반대되는 것들을 배제하고 축출해서 만든 허구에 불과하다는 게 해체주의의 주장이었다. 데리다에게 해체는 기존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책읽기와 글쓰기의 실천이기도 했다. 서구형이상학의 밑바탕을 이루는 로고스중심주의, 음성중심주의, 민족중심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면서 철학적 텍스트를 결정짓는가에 관심을 가진 데리다가 현대철학에 남긴 가장 의미 있는 개념은 ‘차이’에 대한 사유였다. 자아를 중심에 놓고 전개 돼 온 근대철학의 흐름에서 타자성을 인정하고 차이를 동일성에 앞세우는 사유의 자유로움은 현대철학에 무한한 가능성을 던진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그의 사상이 가지는 의의는 사유가 폭력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폭력적인 사회의 억압에 대해 근본적인 비판을 내포하고 있는데 있기 때문에 데리다의 해체 전략은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해체에 대한 데리다의 삶과 학문은 다수보다는 소수, 주류보다는 비주류에 대한 관심의 결과이다.
 
 
데리다의 해체와 존재

서양의 형이상학이 가지고 있는 전통에 관하여 데리다는 현전(la prêsence, presence)의 형이상학이라고 생각한다. 형이상학은 physical 세계에 대한 반성을 하는 학문이며, 그것의 원리와 본질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원리와 본질은 일원론과 이원론으로 나뉜다.

1) 일원론 - 둘 중 어느 한 것이 다른 것을 규정하거나 환원될 수 있다고 본다. 이를 다시 유물론과 유심론으로 나눈다. 
① 유물론(marx) - 물질은 정신에 선행한다. 정신은 고도로 발달한 물질, 즉 두뇌 활동의 결과이다. 
② 유심론(버클리) - 물질의 존재를 부정. 우리가 보는 물체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각한 결과이다.

2) 이원론 - 세계를 외적 대상의 세계와 순수 사유 주체로 구분하여 본다. 
① 이원론(descartes) - 데카르트에게 있어 철학은 실체substance를 탐구하는 것이었으며, 데카르트는 실체에 대한 정의를 “존재하고 있기 위해서 다른 그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그런 방법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실체는 실재하는 것이며 또 동시에 실재의 근거로 보았다. 또한 데카르트는 실체를 정신과 물체 두 가지로(유한한 영역에서)보면서, 정신의 주요한 속성은 사유이며, 물체의 속성은 연장延長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연장은 철저히 수학적인 공간의 세계에서 일어난다.
 
물론 실체(實體 substance)는 어떤 임의적 속성으로 인식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실체에는 각각의 본성 및 본질을 이루는 하나의 중요한 속성이 있으며, 다른 모든 속성은 그것에 의존하고 있다. 한편 물체에 속하는 일체의 모든 것은 연장(延長 extension)을 예상하고 있으며, 그것은 연장하고 있는 사물의 어떤 양태이다. 같은 식으로 정신 안에 보여지는 일체의 것들도 사유의 양태 안에서 밖에는 이해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형상(形狀)은 연장하고 있는 사물 안에 있어서만이, 또한 운동이라는 것도 연장의 어떤 공간 안에서만이 생각될 수 있다. 그와 같이 상상이나 감각이나 의지도 사유하는 사물에서만 생각될 수 있다. 그런데 또 한편 연장은 형상이나 운동 없이도 생각할 수 있고, 사유는 상상이나 감각 없이도 생각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철학원리 principia philosophiae』)
 
 
현전의 형이상학

해체의 대상으로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를 들 수 있다. 방법적회의(方法的懷疑)란 데카르트 철학의 바탕을 이루는 방법으로,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것은 모두 거짓으로 보고 전혀 의심할 수 없는,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이 남는지의 여부를 살피는 태도를 말하며, 수학, 자연을 수학적 방법에 의해 ‘확실하고도 明證的인 인식’을 학문으로 확립하였다. 즉, 종합과 분석의 수학적 방법에 의해서 물질적 사상 일반을 다룰 것을 생각하여, 물질을 모습이나 크기와 같은 순수하게 기하학적인 성질에 의해서 파악하려 시도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전통적인 스콜라 철학의 물질관과 대립하게 되며, 이를 위해 데카르트는 먼저 물질로부터 일체의 정신을 배제하고 동시에 정신을 일체의 물질에서 해방하려는 작업을 해야 했다.
 
나는 조금이라도 의심할 여지가 있는 것은 전부, 절대적으로 허위인 것으로 간주하지 않으면 안 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그러한 뒤에 우리의 신념 안에 하등의 의심할 여지가 없는  무엇인가가 남아지는지 어떤지를 끝까지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방법서설 discours de la mėthode』)
 
이 절대적으로 확실한 출발점은 스콜라 철학자들이 행한 것처럼 논증에 의해 얻어진 것이 아니며, 직감(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은 논증 이전의 것이라고 데카르트는 생각했다)에 의해서 얻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직감적인 것을 데카르트는 명석판명(의문의 여지없이 확실한 것으로 명석함이란 주의 깊은 정신에 대해 애매함을 전혀 포함하지 않는 인식을 말하며, 판명함이란 명석한 것이 어떠한 혼란에도 빠지지 않고 다른 것으로부터 구별되는 인식을 말한다)한 개념이라고 불렀다. 

데카르트는 네 가지 규칙에 의해 탐구를 계속해 나간다.
① 아무것도 자명한 것이 아니면 어떤 사항에서도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이지 말 것. 주의 깊게 속단과 편견을 피할 것이며, 의심의 여지가 없을 만큼 명석판명하게 우리의 정신에 나타나는 것 외에는 결코 자신의 판단으로 받아들이지 말 것.
② 내가 검토하고자 하는 모든 문제들 하나하나는 될 수 있는 한, 또한 그 것을 보다 잘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만큼 작은 부분으로 나눌 것.(= 분석의 원리)
③ 가장 단순하고 가장 인식하기 쉬운 것에서 출발하여 조금씩 단계를 밟아 복잡한 것의 인식에 이를 것. 또한 자연적으로는 서로 앞뒤가 없는 사물 사이의 질서를 가정하면서 나의 사고를 질서 있게 이끌어갈 것. (= 순서의 규칙).
④ 분할할 때에는 아무것도, 하나의 빠뜨림도 없었다고 확신할 만큼 광범위한 재검토를 할 것.

이와 같이 일체의 사물에 대하여 의심할 수 있고 또 의심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이와 같이 의심하더라도 의심하고(생각하고) 있는 우리 자신의 존재가 있다는 것만은 의심할 수 없다. 그리고 회의한다는 것은 思惟의 하나의 방법이라는 데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가 제1원리로서 세워지는 것이다. 여기에서 회의는 의심하기 위한 의심이라는 회의론자의 회의와는 달리 확고부동한 절대 진리를 획득한다는 목적을 위한 懷疑이다. 이것은 회의론(懷疑論)과 달리 모든 것을 거짓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얻는 방법으로 의지적 회의이며, 철저를 기해서 행해진다는 뜻에서 ‘과장된 회의’이다. 데카르트는 이러한 회의를 통해 “내가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려고 애쓰는 동안에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나야말로 반드시 무엇이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바로 이 진리, 즉,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것이야말로 너무도 견고하고 확실하여 아무리 과장이 심한 회의론자라도 이 진리를 뒤집어엎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나는 이것을 내가 찾아 헤매던 철학의 제 1원리를 받아들이데 망설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였다”면서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의 진리를 얻었다. 이와 같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일생에 한 번쯤 의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해봐야 한다. 우리가 갖고 있는 신념이 대부분 어린 시절부터 들어온 것들에 의해 무비판적으로 수용된 것들에 근거해 있기 때문에 신념이 이성의 토대 위에 진리로서 세워지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소한의 불확실성이라도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의심해 보아야만 한다. 

데카르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대부분 형이상학자가 주장하고 있는 이론의 출발점은 현전(자신의 현전함[현재 있음]과 그것이 직접적으로 스스로에게 현전[나타남]한다는 것)이다.  
데리다는 반복적 동일성의 재현과 상호주관성에 의해 형성된 객관성의 이념적 대상의 수반현전에 대하여 로고스의 언어이자, 실지로는 주체의 죽음을 의미하는 장소라고 말한다. 그는 이러한 매개성을 거부하고, 삶이라는 직접적 현전 속에서 현상학의 기본개념들인 생, 체험, 살아있는 현재, 정신성 등의 개념을 다르게 해석하기 시작한다. 곧이어 그는 후설의 현상학을 재독해하면서, 우리가 말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질문하기 시작하면서 현전의 형이상학을 부정하고 이를 해체하려고 한다. 이 해체의 주요한 도구[개념]은 differance(차연)이다. différance를 différer의 명사형으로 데리다는 제안한다. différer는 라틴어 differre에서 비롯된 말. différre는 두 가지 의미 ① 영어로 to differ=‘같지 않은’, ‘별개의’, ‘닮지 않은’, ‘다른’ 것을 의미 ② to defer=put off(연기하다), 지연하다, 미루다. 전자는 공간성을 후자는 시간성과 연관된다. différer의 명사형은 실은 différence인데 이는 공간적 차이만을 의미하기 때문에 데라다는 신조어를 만들어 낸 것이다. différance는 시간과 공간에 있어서의 차연이다. 즉 차이냄과 연기함이라는 이중적 능동성이다.(제프 콜린스, 이수명 옮김, 『데리다』, 김영사, 2005, 79쪽) 

데리다는 말하기에도 기표(시니피앙)와 기의(시니피에) 사이에 차이와 단절이 있음을 말한다. 어떤 단어는 그것이 아닌 다른 단어에 의해, 즉 단어들 간 차이에 따라 정의되고, 그러한 정의는 의미의 가능성에 한계를 가진다고 한다. 아울러 의미의 가능성은 필연적으로 지연될 수밖에 없는데, 단어는 그와 다른 단어에 의해서만 정의되고 그 다른 단어 역시 또 그와 다른 단어로 이루어진 정의를 필요로 하게 되는 등 이런 식으로 끝이 없기 때문이다.
 
 
해체와 포스트모더니즘

데리다가 해체에 관심을 가진 것은 전통 서양 철학의 개념과 실천이 모순을 감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해체를 차연(differance), 부정확성(undecidability), 텍스트성(textuality)으로 나누고 해체와 포스트모더니즘과의 관련성을 연구했다.
①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든 제도에 도전 한다. - 극장 대신 거리 공연. 문화제도 비판. 제도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 도전은 세계는 텍스트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② 포스트모더니즘의 장르 해체와 관련 된 패러디 - 패러디는 상호 텍스트성을 가져오며, 해체 개념을 통해 정당화된다. 텍스트성 개념은 논리의 타당성을 인정하며, 패러디 기법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키지만 동시에 그 관계를 파괴하기도 한다. 또한 패러디는 과거를 수용하지만 동시에 비판도 한다. 공간성으로 텍스트 자율성과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특유한 의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③ 포스트모더니즘은 의식하는 자아와 새로운 가치 개념을 비판 한다 - 패러디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의식하는 자아를 믿지 않는다. 다른 텍스트를 모방하는 것은 의식하는 자아의 행위이기보다 상호주체적 행위이고, 그런 점에서 부르주아적 이데올로기의 토대라 할 수 있는 주관성으로, 초월적 주관성의 개념을 비판한다.
④ 사물의 순서, 주관(主觀)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행위의 목표, 행위나 사물의 중요성이나 가치, 규칙을 세운 제한, 구별할 수 없는 성질의 동일성 같은 원리를 주장하면서 동시에 파괴한다 - 이러한 것들의 인간주의적 원리로 부르주아 자유주의의 기본 원리로 문화를 지배한다. 그러나 현재 이러한 원리는 절대적이고 영원한 것이 되지 못한다. 모든 이데올로기적 구조가 허구이듯 부르주아 자유주의 기본 원리 또한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와 같이 현실세계 질서에 도전하여 기호 체계의 특성을 제시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든 기호 체계의 본질을 겉으로 다 드러내 보이는데 목적이 있다.
 
 

논제

포스트모더니즘은 계몽주의적 이성 중심의 세계관을 거부한다. 모든 문제의 근원이 자연과 사회 속에서 인간에게 부여되는 모든 관계들과 그 속에 존재하는 인간의 삶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21세기가 열리면서 모더니즘 중심사유였던 이성중심, 과학중심 이념은 해체와 다원화 탈중심과 불연속으로 대체되었다. 이성과 비이성 주체와 객체의 명확한 구분이 사라지고 의미의 능동적 생산자였던 주체는 사라지고 말았다. 이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쓰시오.
 
/ 황인술 논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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