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시인’ 장충길의 첫시집 『바람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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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kbs 선임프로듀서로 재직 중인 장충길 시인. 그가 첫 시집으로 『바람의 사람』(한국문연 刊)을 상재했다. 깊은 인상을 안겨주는 시집의 제목 ‘바람의 사람’이란 과연 무엇을 말함일까?
바람이 나를 듣는다. / 우주의 이쪽에서 저쪽까지 / 한걸음에 내달아 / 크고 작은 별들을 만들고 / 별과 별 사이 질서를 세워 / 황홀한 기쁨을 노래하게 하는 / 태초의 바람이 / 어느 날 내게로 왔다. // 바람이 나를 듣는 것에 / 나는 번개처럼 전율했다. / 민망한 눈과 귀를 / 바람을 향해 열어두고 / 나는 준비도 없이 / 바람을 따라 나서 / 광야와 도시를 휘돌다. / 불타는 산에 이르렀다. / 거기서 옷을 불살랐다. / 눈과 귀를 불태웠다. / 입술을 지졌다. / 그리고 나는 소멸되었다. // 바람이 내 안에서 / 내가 되었을 때, 나는 / 원초의 기쁨을 노래하는 / 바람의 사람이 되었다.
- 「황홀한 기쁨」 전문
본 시집의 제목은 시 「황홀한 기쁨」에서 땄고,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봐도 「바람의 사람」이란 제목이 붙은 시는 발견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시집 속에 든 시들 중에서 한 편을 골라 그 작품의 제목을 시집 제목으로 삼는 것에 비추면 이 점 역시 좀 특이하다.
고요히 꽃이 피고 있다. / 형언할 수 없는 아픔인 것이다. // 노래는 바람처럼 스치고 / 빛은 해와 달을 공처럼 굴린다. // 꽃이 피려고 / 노래와 빛은 미움이었다. / 소리는 모호하고 / 물질은 궤도를 잃었다. // 공허를 내지르며 / 고요히 꽃이 피고 있다. / 형언할 수 없는 아픔인 것이다. - 「개화」 전문
「언어들이 아프다」, 「문 열어라 꽃아」, 「까치가 얼어 죽은 날 얼음 밑을 흐르는」, 「어둠 속의 만찬」, 「은검초」, 「나무와 비의 탱고」, 「한 줄 긋다」 등 60편의 시를 125쪽에 걸쳐 제1부 ‘개화’, 제2부 ‘아름다운 발견’, 제3부 ‘여의도 시편’ 등 3부로 나누어 담았다.
깊은 산 나무는 그저 나무지만 도심정원에 옮겨 심은 나무는 보석이라던 / 그가, 산에서 돌아오지 않은 날 / 안테나를 세운 바람이 전하는 그에 관한 이야기 한 그루.
- 「바람의 안테나」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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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시인은 ‘여의도 시인’이다. 거주지나 직장이 여의도라서가 아니라, 여의도를 소재로 한 시를 그만큼 많이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여의도 관련 시를 가장 많이 발표한 시인일 것이다. 그만큼 그는 여의도에 대한 애착과 시작(詩作)이 남다르다. 본 시집에만도 여의도 관련 작품을 무려 20편이나 수록했다.
공원 잔디밭에 뒹구는 / 추억은, 잠시 꽃구름비늘로 빛나다 / 마침내 사라질 것이다. // 순수한 열정의 입맞춤도 / 능력 있는 거짓말도 / 이제 열매를 맺지 못 하는 것은 / 여의도에 가을이 오고 / 가을은 인생처럼 짧기 때문이다. // 아, 아직 사랑할 시간인데 / 사랑은 떠나가고 / 여의도에 가을이 오네. - 「전설」 부분
장 시인은 “한낮 씨앗 같은 생각을 벗어 던지고 감히 존재 앞에 서다. 출렁이는 세상 속으로 떠나기 전 비릿한 어느 해변을 거니는 느낌. 그러나 바다 저편으로부터 불어 와 온 몸을 스치는 바람에게서 꽃 이후의 분명한 기쁨을 감지한다”며 한 편의 시 같은 이야기를 책머리에 적고 있다.
장충길 시인은 경남 밀양 출생으로 경북고를 거쳐 그리스도대학교를 마쳤다. 이제 kbs에서 정년을 앞두고 있는 그는 한국방송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05년에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등단한 뒤, 꾸준한 詩作은 물론 문학단체 활동에도 활발하게 임하고 있다.
/ 안재동 시인·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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