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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나라 최동북단 gop초소에서 군복무를 했다. 최전방이라 외부와 단절됐기 때문에 근무를 제외하고는 딱히 할일이 없었다. 밤낮이 수시로 바뀌는 근무 시간이라 몸도 마음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쓸데없는 잡념만 늘어가고 있었는데, 보낸지 한달이 넘어서 이지엽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여러 권의 시집이 도착했다. 아무런 부탁도 드린 적이 없었는데, 친히 보내주신 시집들이 참으로 감사했다.
그 시집들을 얼마나 오래 그리고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시집이 너덜해질 정도까지 읽었다. 낮에는 저 멀리 금강산이 희미하게 보이고, 밤에는 귓가 멍멍해지도록 파도소리가 들려오는 초소에서 이전에 읽었던 시구들을 기억하며, 나는 시인을 꿈꿨다. 군에서 누구나 겪고 누구나 고민하는 젊은 날을 시로 달랜 것이다.
내 젊은 날의 방황을 잡아준 시구들을 놓치기 싫어서 그 시구들을 ‘임무수첩’에 적기 시작했다. 본래 임무수첩에는 초병으로 지켜야할 여러 가지 사항들과 메모들을 적어놓고 숙지하는 수첩의 용도였으나, 나는 마치 시가 내 임무인마냥 시구들을 빼곡히 적어놓고 달달 외웠다. 그러면서 군에서도 습작을 조금씩 해나갔다.
정말 시와 함께 사는 2년이었다. 취침시간과 근무시간 외에는 언제나 시집을 읽었고 시구들을 되새김질했으며 습작노트 두세권 늘어가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특히나 민간인의 출입이 제한되는 비무장지대의 아름다운 풍광은 정말 시를 쓸 수밖에 없게 했다.
“서툰 시인은 훔치나 능숙한 이는 표절한다”는 t.s eliot의 말을 수첩에 적어놓고, 시구들을 내것으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군대 전역한 이후의 지금에도 습작할 때 가끔씩 수첩을 뒤적이며 좋은 표현을 착안해내고 있다. 서툰 시인이 되지 않으려는 그때의 고민과 노력이 없었더라면 난 지금 시인이라는 타이틀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시를 쓰는 것이, 시를 읽는 것이 내 임무가 되었고, 이 임무수첩이 언제나 내 책장 한켠에서 나를 일깨워줄 것이다.
/ 김남규 시인 <한국예술가 애장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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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규
1982년 충남 천안 출생.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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