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튀세(Louis Althusser)
알튀세(Louis Althusser)
  • 황인술
  • 승인 2009.03.03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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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인술 교수     ©독서신문
알튀세 생애(1918~1990)

마르크스 사상에 구조주의적 해석을 제시한 프랑스 철학자로 1960년부터 1965년까지의 논문을 모은『마르크스를 위하여』(1965)에서 마르크스 사상을 초기의 인간론, 소외론으로 환원되는 것을 거부했다. 그 사상의 특질이 이데올로기에서 나오는 인식론적 절단에 있다고 주창하였다. 당시 소련은 변증법적 유물론에 따라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 사회가 구분되듯 문화나 과학도 그 계급에 맞게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알튀세는 이러한 이분법을 비판하면서 과학적 정립을 위해서는 마르크스주의에서 이데올로기를 배척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959년 『몽테스키외 정치와 역사』를 출판하였고, 『마르크스를 위하여』와 『자본론을 읽는다』(1965) 두 저작에서 마르크스주의가 과학이 되려면 역사주의·인간주의로부터 역사적 유물론을 분리시켜, 인간이라는 범주에서 계급을 떼어내고 “마르크스로 돌아가자!”라고 했다. 두 저작을 통해 알튀세는 구조주의적 개념틀을 마르크스주의에 도입한 대표적 인물로 부각된다. 1990년 10월 22일 사망하였다.
 
알튀세의 문제의식
알튀세는 당시 지배적 사상인 마르크스주의의 잘못된 방향에 대해 비판하고 마르크스주의를 새롭게 되살리려고 했다. 그는 소련 중심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비판하면서 서구의 ‘인간주의적 마르크스주의’도 거부하였으며, ‘교조주의’와 ‘우익적 비판’에도 반대하였다. 이러한 비판은 ‘경제주의’와 ‘인간주의’를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알튀세는 사회에 대한 모든 문제를 경제로 환원해서 설명하려는 ‘경제주의’와, 인간의 자유의지나 의도 등을 강조, 경제주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인간주의’를 마르크스주의 내에 존재하는 상호보완적인 한 쌍의 잘못된 경향으로 보고, 이 두 가지를 모두 극복하려 했다.
알튀세는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대한 자율성이 훼손되는 것을 큰 문제점으로 파악했기 때문에 진정으로 스탈린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다시 확립 하려고 했다. 이 문제점은 스탈린 개인의 잘못이나 개인숭배 탓으로 돌리는 것은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관계없는 비과학적인 비판이라고 보고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마르크스의 저작을 제대로 해석하여 마르크스주의의 과학성을 확립하고 뒷받침하는 일이었다.
알튀세의 우선적인 목표는 마르크스를 재건하여 당시 혼란스런 이론을 바로잡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재건되는 마르크스는 경제주의적 마르크스나 인간주의적 마르크스가 아닌 ‘과학적’ 마르크스여야 했다. - 참고문헌 : 박정호, 『현대 철학의 흐름』, 동녘, 1999.
 
이론적 반인간주의
알튀세의 이론적 반인간주의는 인간주의를 반대하는 개념이다. 인간주의는 역사적 과정을 선험적, 기원적 주체들로 개별 인간들의 의지, 의도 등을 합리성으로 설명하려는 방법론적 내용이다. 이는 욕구, 노동, 욕망의 주체, 도덕적, 정치적 행위에 대한 주체로 ‘자유로운 인간주체와 인간본질’에 기초 하여 역사를 설명한다. 보는 시각에 따라, 반인간주의는 인간 주체에 대한 많은 오해를 낳는다. 윤리와 규범에서 인본주의 또는 인간중심주의에 반대한다는 것과 방법론에서 반인간주의가 현실적 주체를 제거시키거나 주변화 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오해는 ‘방법론적 인간주의’와 ‘윤리적․정치적 인간주의’를 구분하면 설명 될 수 있다. 윤리적․정치적 인간주의는 인간을 억압하는 사회구조나 정치체제로부터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보호한다는 윤리적․정치적 가치판단을 내포하는 개념이다. ‘방법론적 인간주의’는 인간주체를 역사적 과정을 설명하는 방법론적 출발점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인간본질을 역사적 과정의 절대적 기원 또는 중심으로 설정하는 목적론적 설명원리나, 모든 사회관계나 역사적 과정을 개별 인간의 사고 및 행위로부터 설명하는 환원주의적 설명원리가 여기에 해당한다.
사회적 관계들의 복합체 속에서 주체들의 위치, 기능, 의식은 다원적이며 복합적이기 때문에, 주체들이 서로 다른 수준의 관계들 속에서 서로 다른 개인적 자율성을 지닐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개인은 일반적으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 대해 자율성을 지니기는 어렵지만 특정 기업 내의 관계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율성을 더 많이 가질 수 있다.(정태석,『사회이론의 구성』, 한울아카데미, 2002, 155쪽) 그러나 알튀세의 논의는 개인적 자율성이 고려되지 않는다. 사회 구조에 대한 논의는 풍부한 반면, 개인의 자율성은 논의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알튀세의 설정에 포괄적 틀이 형성되려면, 개인의 자율성 또한 파악되어야 한다.
 
주체의 구성
우리는 의식과 이성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판단해야 하지만 외부의 강력한 힘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며, 그 힘의 영향에 의해 행동하며 살아가게 된다. 주체가 구성된다는 것은 우리 의식이 믿고 있는 것과 같이 보편적 측면에서 당연한 것이 아니라, 외부 조건에 의해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 하도록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생각할 수 있는 한계 밖에 있는 가능성에 대해 항상 열어 놓아야 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즉, “나”의 주체가 구성된다는 것은 동시에 “나”라는 자아가 해체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인간은 주체로 구성되어 있으며, 생존을 위한 맹목적 충동을 지닌 개체는 성장과 발달하는 단계에서 “나”라는 정체성(identity)을 가진 주체로 만들어져 간다. 이 과정에서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것인가,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 되고 싶으며,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어떤 모습이며, 나를 둘러싸고 있는 관계는 무엇이며, 나는 그것들과 어떠한 방식으로 관계 맺고 있는가에 대한 의식을 가지게 되면서 비로소 “나”라는 주체로 세상에 존재하게 된다.
알튀세는 빈 공간, 혹은 알 수 없는 충동과 에너지의 덩어리-인간이라는 원초적 개체-를 어떤 가치와 규범에 따라 움직이고, 무언가 되고 싶어 하고, 분개하고, 그것이 속해 있는 공동체의 삶의 모습에 대한 특정한 이해를 하게 하는 것을 이데올로기로 본다. 주체를 구성하는 근본 조건인 이데올로기에 대한 생각의 시작을 마르크스 유물론, 프로이드 정신분석학, 소쉬르 구조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 정신 속에서 만들어지는 생각에 대한 과학적 탐구로 이데올로기 이론은 마르크스에서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인간 의식의 형성을 마르크스는 인간의 다른 활동 영역(노동과 생산의 영역)에 의해 영향 받고, “결정”된다고 봤다.
 
논제찾아보기
사회적 관계들의 복합체 속에서 주체들의 위치, 기능, 의식은 다원적이며 복합적이기 때문에, 주체들이 서로 다른 수준의 관계들 속에서 서로 다른 개인적 자율성을 지닐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주체와 자율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쓰시오.
 
/ 황인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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