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장품]책갈피 너덜거리는 국어사전
[나의 애장품]책갈피 너덜거리는 국어사전
  • 윤금초
  • 승인 2009.01.28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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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신문
 
 
프랑스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을 역설한 사람이다. 하나의 사물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적확한 말은 단 한 마디뿐이라는 것이다. 옳은 얘기다. 그 적확한 단 한 마디 ‘말’을 궁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워야 하고, 얼마나 많은 날을 바장여야 하는가?

소설가 오유권吳有權 선생에 관한 에피소드를 먼저 소개한다. ‘방아골 혁명’, ‘참외’ 등 토속성 짙은 작품을 발표한 작가는 가난의 굴레를 떨쳐내지 못한 환경 속에서 성장한다.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그가 장차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한다. 자신의 모교에서 사환 일을 보다가 해병대에 입대, 통신병 생활을 하게 된다. ‘스스 똔똔, 스스 똔똔…’ 무전을 타전하는 틈틈이 소설가가 되고자 습작을 하면서 매일 국어사전 한 장씩 찢어 먹는다. 어휘력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 날마다 국어사전 앞 ․ 뒷장을 외운 다음 그것을 씹어 삼킨 것이다. 그처럼 독한 자기 단련이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소설가로서 일가一家를 이루게 된 것이다.

감히 ‘일물일어설’을 주장한 플로베르나 ‘방아골 혁명’의 작가 오유권 선생과 견줄 수는 없지만, 나도 꽤나 우리 토박이말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편이다. 대저 글쓰기란 ‘언어순화 작업’에도 한 몫을 담착해야 한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일상어의 주류 밖으로 내몰린 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흙 속에 묻혀 있는 탯말 - 내 어머니와 고향이 일깨워준 그 ‘영혼의 언어’를 우리는 너무나 홀대하고 있지 않는 건지? 감칠 맛 나는 토박이말을 찾아내고, 점점 잊혀져가는 우리 사투리의 어원을 찾아내어 그 본딧말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일은 문학인이 평생 천착해야 할 덕목이 아니겠는가.

그런 연유로 나는 국어사전을 애인처럼 끼고 살아온 것이다. 1960년대 이희승 편저 ‘국어대사전’을 산 이래 줄잡아 50년 가까이 생활의 한 반려로 그것과 함께 살아온 셈이다(그 이전에도 국어사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 다닐 때 자취생활을 하면서 ‘향토장학금’이 올라오면 국어사전을 샀다가, 용돈이 궁해지면 그것을 헌책방에 착 내다주고 술과 바꾸어 먹는 짓을 되풀이했던 것이다).

나의 분신처럼 손때가 묻은 ‘국어대사전(초판본)’은 어느 틈엔가 표지가 해어져 없어지고 ‘머리말’이며 ‘일러두기’, ‘부록’ 같은 것들은 자취를 감춘 것이다. 사전 본문도 일부는 귀가 닳거나 떨어져 나가고, 책갈피가 너덜너덜 ‘쇠락한 몰골’이 돼버렸다. 그러므로 50년 남짓 나의 한 반려로 살아온 이 ‘쇠락한 몰골’의 국어사전을 애장박물관에 보내기로 한 것이다.

 
/ 윤금초 시인<한국예술가 애장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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