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류시인 김신영의 두 번째 시집 『불혹의 묵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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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시인 김신영 시인의 두 번째 시집에 부치는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의 해설이다.
천년의시작 출판사를 통해 나온 이 시집은 <쑥대밭>, <불혹의 묵시록 1·2·3·4>, <수몰지구대 1·2>, <잎잎이 춤추는 이름>, <신성한 제의(祭儀)> 등 59편의 시를 담고 있다.
불혹을 가지 끝에 달아 놓고 / 오래도록 흔들린다. / 흔들리다 잠이 들면 / 꿈결에도 흔들리는 벼랑에 / 내가 부둥켜안았던 / 사회들이 불의 혹처럼 즐비하다 / 친구와 소꿉놀이를 하며 / 해변에서 통통한 알을 먹느라 정신을 잃었고 / 강가 나루터에서 빙어, 피라미를 끓이느라 / 너를 알아보지 못했고 - <불혹의 묵시록 1> 부분
김신영 시인은 시집의 자서(自序)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어디서나 결핍이 나를 부른다. 핍진으로 인한 삶과 언어도단을 일삼으면서 시를 쓰는 일 또한 도달하지 못한 세계에 대한 결핍이라 여긴다. 삶의 길은 펼쳐지고, 채워지지 않는 욕구는 오늘도 꿈꾸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조금 먼 길을 가고 있다.”
본 시집 전편에 걸친 시인의 詩作 의도나 시세계를 짧은 지면을 통해 평설적으로 정리하기엔 그다지 의미를 찾을 수 없을 것으로 본다. 다만 필자가 (다분히 단편적으로)이번 시집에 깔린 하나의 특징적인 코드를 발견했다면 그것은 ‘녹두’와 ‘아바타’가 아닐까 한다.
‘무엇이 삶에 넝마를 걸치게 하였는지 / 낭패만 당하니 고시공부에 낭인이 되었다’로 시작되는 <녹두거리 낭인백서>, ‘다시 컴퓨터 가게에 들어 앉아 녹두거리에 묻힌 / 녹두장군과 커피 한 잔을 마셨지’로 끝맺는 <불혹의 묵시록 4>, ‘처음 여기 녹두거리에 올 땐 판사가 될 줄 알았어요’라는 대목을 지닌 <코드 레드> 등에서 등장하는 ‘녹두’와 ‘나의 분신이며, 왕국인 / 아바타가 있는 커뮤니티에 들어간다’로 시작하는 <춤추는 인터넷 유희 1>, 역시 ‘인터넷의 공원에 / 사람들이 서성거린다 / 나의 아바타도 공원으로 간다’로 시작되는 <춤추는 인터넷 유희 2> 등에서 관찰되는 ‘아바타’란 시어가 그것이다.
이렇게 ‘녹두’와 ‘아바타’는 5편 정도의 작품에 나타날 뿐이지만 유달리 관심을 끈다. 시집의 분위기를 대표하는 듯도 한 ‘녹두’와 ‘아바타’야말로 이 시대 ‘불혹’의 세대가 겪는, 혹은 어지러운 오늘날의 세상에서 갈등과 아픔을 겪고 있는 군상들의 표징일 수도 있으리라. 시인은 어쩌면 ‘녹두’를 통해 ‘(사회)저항 또는 패배 의식’을, ‘아바타’를 통해 ‘(소시민적)적응 또는 現脫(현실탈피)심리’를 표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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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휩쓸어 온다. / 너의 머리칼을 휩쓸어 온다. / 오후의 태양이 쏟아지고 / 너의 그늘 옆에 하늘을 우러러 눕는다. / 하늘가를 흐르는 구름에 한 점 태양을 싣고 / 이리로 저리로 이야기를 담는다. / 푸른 풀밭 위에 / 포도 알처럼 사람들이 영근다. / 그리고 내 욕망의 시간도 영글어 / 너의 슬픈 이야기를 담으면 / 다시 바람이 휩쓸어 온다 / 너의 머리칼을 휩쓸어 온다. / 하여, 조심하여라 / 나는 양의 탈을 쓴 느릅나무 / 너를 삼키는 포식자이다. - <느릅나무 숲> 전문
김신영 시인은 충북 중원 출생이며 중앙대 국어국문학과에서 <한국 현대 여성詩의 공간상징 연구>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4년 『동서문학』으로 등단한 뒤 시집 『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 평론집 『현대시, 그 오래된 미래』 등을 상재하고 현재 호서대, 협성대, 홍익대 등에서 강의를 맡고 있다.
/ 안재동 시인·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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