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와 ‘아바타’가 표징하는 이 시대 군상들의 고뇌
‘녹두’와 ‘아바타’가 표징하는 이 시대 군상들의 고뇌
  • 안재동
  • 승인 2009.01.28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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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시인 김신영의 두 번째 시집 『불혹의 묵시록』
▲ 김신영 시인     ©독서신문
“『불혹의 묵시록』은, 그녀가 아프게 통과해온 시간들에 대한 성찰과 치유의 기록을 담고 있다. 시인은 지나온 시간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기억의 풍경에 자신의 시적 열정을 남김없이 바치고 있는데, 그것은 ‘시(詩)’를 통해 자신의 아픔을 되새기면서 그 안에서 자신만의 선명한 기억들을 재현하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여류시인 김신영 시인의 두 번째 시집에 부치는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의 해설이다.
 
천년의시작 출판사를 통해 나온 이 시집은 <쑥대밭>, <불혹의 묵시록 1·2·3·4>, <수몰지구대 1·2>, <잎잎이 춤추는 이름>, <신성한 제의(祭儀)> 등 59편의 시를 담고 있다.

불혹을 가지 끝에 달아 놓고 / 오래도록 흔들린다. / 흔들리다 잠이 들면 / 꿈결에도 흔들리는 벼랑에 / 내가 부둥켜안았던 / 사회들이 불의 혹처럼 즐비하다 / 친구와 소꿉놀이를 하며 / 해변에서 통통한 알을 먹느라 정신을 잃었고 / 강가 나루터에서 빙어, 피라미를 끓이느라 / 너를 알아보지 못했고 - <불혹의 묵시록 1> 부분

김신영 시인은 시집의 자서(自序)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어디서나 결핍이 나를 부른다. 핍진으로 인한 삶과 언어도단을 일삼으면서 시를 쓰는 일 또한 도달하지 못한 세계에 대한 결핍이라 여긴다. 삶의 길은 펼쳐지고, 채워지지 않는 욕구는 오늘도 꿈꾸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조금 먼 길을 가고 있다.”

본 시집 전편에 걸친 시인의 詩作 의도나 시세계를 짧은 지면을 통해 평설적으로 정리하기엔 그다지 의미를 찾을 수 없을 것으로 본다. 다만 필자가 (다분히 단편적으로)이번 시집에 깔린 하나의 특징적인 코드를 발견했다면 그것은 ‘녹두’와 ‘아바타’가 아닐까 한다. 

‘무엇이 삶에 넝마를 걸치게 하였는지 / 낭패만 당하니 고시공부에 낭인이 되었다’로 시작되는 <녹두거리 낭인백서>, ‘다시 컴퓨터 가게에 들어 앉아 녹두거리에 묻힌 / 녹두장군과 커피 한 잔을 마셨지’로 끝맺는 <불혹의 묵시록 4>, ‘처음 여기 녹두거리에 올 땐 판사가 될 줄 알았어요’라는 대목을 지닌 <코드 레드> 등에서 등장하는 ‘녹두’와 ‘나의 분신이며, 왕국인 / 아바타가 있는 커뮤니티에 들어간다’로 시작하는 <춤추는 인터넷 유희 1>, 역시 ‘인터넷의 공원에 / 사람들이 서성거린다 / 나의 아바타도 공원으로 간다’로 시작되는 <춤추는 인터넷 유희 2> 등에서 관찰되는 ‘아바타’란 시어가 그것이다.

이렇게 ‘녹두’와 ‘아바타’는 5편 정도의 작품에 나타날 뿐이지만 유달리 관심을 끈다. 시집의 분위기를 대표하는 듯도 한 ‘녹두’와 ‘아바타’야말로 이 시대 ‘불혹’의 세대가 겪는, 혹은 어지러운 오늘날의 세상에서 갈등과 아픔을 겪고 있는 군상들의 표징일 수도 있으리라. 시인은 어쩌면 ‘녹두’를 통해 ‘(사회)저항 또는 패배 의식’을, ‘아바타’를 통해 ‘(소시민적)적응 또는 現脫(현실탈피)심리’를 표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불혹의 묵시록』표지     © 독서신문
이제 한 편의 시를 더 감상하면서 시인이 전하는 또 다른 고뇌의 숨소리를 느껴보기로 하자.
 
바람이 휩쓸어 온다. / 너의 머리칼을 휩쓸어 온다. / 오후의 태양이 쏟아지고 / 너의 그늘 옆에 하늘을 우러러 눕는다. / 하늘가를 흐르는 구름에 한 점 태양을 싣고 / 이리로 저리로 이야기를 담는다. / 푸른 풀밭 위에 / 포도 알처럼 사람들이 영근다. / 그리고 내 욕망의 시간도 영글어 / 너의 슬픈 이야기를 담으면 / 다시 바람이 휩쓸어 온다 / 너의 머리칼을 휩쓸어 온다. / 하여, 조심하여라 / 나는 양의 탈을 쓴 느릅나무 / 너를 삼키는 포식자이다. - <느릅나무 숲> 전문
 
김신영 시인은 충북 중원 출생이며 중앙대 국어국문학과에서 <한국 현대 여성詩의 공간상징 연구>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4년 『동서문학』으로 등단한 뒤 시집 『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 평론집 『현대시, 그 오래된 미래』 등을 상재하고 현재 호서대, 협성대, 홍익대 등에서 강의를 맡고 있다.

/ 안재동 시인·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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