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이 발현하는 천금 같은 삶의 지혜, 그 문학적 여운”
“이삭이 발현하는 천금 같은 삶의 지혜, 그 문학적 여운”
  • 안재동
  • 승인 2008.12.12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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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사 수필가 성종화의 수필집 『늦깎이가 주운 이삭들』
▲ 성종화 작가     © 독서신문
1938년 출생으로 2008년 현재 일흔에 달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현역 법무사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성종화 수필가가 『늦깎이가 주운 이삭들』이란 제목의 수필집을 출간해 화제다.

 
곡식이 거두어진 뒤의 내 마음의 빈 밭이랑에는 내년 봄을 위하여 작은 씨앗이라도 넣고 다음 해의 봄을 기다려야겠다. 그리고 그 밭에서 수확하게 될 풍성한 열매의 이야기를 멀리 떨어져 있는 친지나 친구에게 한 장의 엽서에 담아서 띄워 보내고도 싶다. 그들의 가슴마다에 이 가을의 편지가 소중한 이야기로 오래 남기를 바라면서. ― <가을비를 맞으며> 중에서

 
《한누리 미디어》에서 나온 2백여 페이지 분량의 도톰한 부피와 깔끔한 편집으로 우선 보는 이의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이 책은 성 수필가가 한 평생 동안 지닌 문학에 대한 미련과 열정이 여실히 서려 있다.

이번에 이 수필집과 동시에 상재한 시문집 『나』(한누리미디어 刊)의 책머리에 밝힌 글에서도 그런 그의 모습을 쉬 읽을 수 있다.“≪시와 수필≫사의 신인 추천을 받으면서 소감으로 ‘짐짓 그 길을 외면하고 살아온 지난 세월이 50년이다’라는 자신의 변부터 뇌어 보았다. 이 나이에 새삼 뒤를 돌아보고 그 살아온 날들의 흔적이 처음의 기대하였던 그 모습이 못되고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자신을 발견하면서 그 감회가 남다르지 않을 수 없음은 그 자신이 아니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싶다.” 성 작가는 일찍이 고등학교 재학시절(진주고 2) 제5회 개천예술제 백일장에서 시부문 장원과 월간《학원》지에 우수작으로 입선했을 정도로 시인으로서의 재질과 역량까지 지닌 수필가다. 
 

지금 살고 있는 집 세간 중에는 내 선대에서 물려받은 집기나 기물들이 많지는 않지만 제법 있다. 족보나 문집 등 서책류 등도 정리가 안 된 채로 서재에 내가 보는 다른 책들과 뒤섞여 있다. 우선 이것들을 하나하나 정리를 해야 할 것이고, 또 언젠가 내가 훌쩍 떠나고 난 다음에 내 아이들이 나의 유류품 관리를 편하게 하도록 해 놓을 생각도 하여야겠다.― <집을 옮기면서> 중에서

 
성 수필가는 <늦깎이가 주운 이삭들>의 머리글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누구에게나 그 살아온 지난날의 흔적은 있는 법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 흔적을 혼자 가슴에 담고 조용히 살다가 가는가 하면, 글로 표현하고 책으로 엮어서 남기는 일까지 하려는 사람도 있다. 그게 글 쓰는 일을 업으로 하거나, 사표가 될 만한 업적을 이룬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아니한 시정의 한 평범한 소시민이 이 일을 하려고 생각하는 것은 처음부터 가당찮은 짓이고, 부질없는 노고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한 마디로, 글쓰기에 대해 겸허하기 그지없는 성 수필가의 모습이다. 그는 이어, “그래도 우리들 누구나 자기 분야에서 살아가며 느끼고 생각하게 되었던 일들을 비록 다듬어지지 아니한 글이지만 진솔하게 표현하고 숨김없는 자기 고백을 하였다는 점에서는 나 또한 공감을 얻고 싶다는 욕심을 일부러 숨기고 싶지는 않는 바”라고 진솔하게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성 수필가는 “이 책은 내 사랑하는 아이들에게도 한 인간으로서의 아버지의 진면목을 알게 해 주고 내가 간 후에 오래 아버지를 기억하는 표지돌이 되어지기를 바란다.” 라고 덧붙인다. 어쩌면 이런 대목은 글 쓰는 모든 이들에게 공통적인 소망일 수 있겠지만, 성 수필가에겐 더욱 간절해 보인다.

 
눈은 마음의 창이다. 눈은 마음의 거울이다. 어머니의 가슴에서 젖을 먹고 있는 어린 아이의 눈은 맑고 깨끗하여 호수와 같다. 그 눈으로 보는 세상은 아름답고 때 묻지 아니 하였을 것이다. 그 맑고 깨끗한 눈도 성장하는 과정에서 보아서는 안 될 나쁜 일을 보게 되면서 어머니의 젖가슴에 안겨 있을 때의 그 맑고 깨끗한 눈은 어느 사이에 혼탁해지고, 처음 타고난 눈빛을 점점 잃어가게 될 것이다. 나쁜 사물이 걸러짐 없이 가슴에 그대로 담긴 사람의 눈에는 그 사물들이 그 눈빛 그대로 나타나게 된다. 열린 마음의 눈은 인생을 달관된 경지에 이르게 한다. 마음에 평온을 가져다 준다. 그 평온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드릴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넓은 평화의 요람으로 인도한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을 만든다.― <심안을 열어서> 중에서

 
▲ 『늦깎이가 주운 이삭들』 표지     ©독서신문
이 책은 제1부 <살며 생각하며>, 제2부 <연착륙의 지혜>, 제3부 <여인들>, 제4부 <따뜻한 이야기들> 이란 큰 카테고리 안에 <남새밭 길에서>, <집을 옮기면서>, <인연과 흔적>, <버려진 보리쌀>, <목욕탕집 여주인과 수탉>, <생맥주와 안주>, <산 벚꽃이 필 무렵> 등 생활과 삶 중심의 꽤 흥미로운 수필 47편을 담고 있다. 
 

현대사회는 물질문명에서 눈부신 발전을 하고 있다. 거기다가 문화의 다양성으로 사회제도가 다방면에서 끊임없이 변천을 한다. 기존의 질서는 새로운 사고와 질서의 유입으로 인하여 도처에서 마찰과 갈등을 빚고 있다.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서로가 포용하고 융화되는 조화가 필요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물질과 정신문화의 발달도 새로운 기술과 사고가 연착륙하는 풍토에서 비로소 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하는 시대가 아닌가 한다. ― <연착륙의 지혜> 중에서


한상렬 문학평론가는 말한다. “성종화의 수필집은 우리로 하여금 새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세상에 대한 열린 마음과 삶을 바라보는 고유한 시각을 느끼게 한다. 그저 남들처럼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는 대로 허겁지겁 쫓아가는 삶에 대한 참신한 영감이 깃들어 있다. 그렇기에 그의 창의적 도전은 평범한 우리들에게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이른 봄 피는 노란 산수유 꽃도 좋아한다. 산수유 꽃은 질박(質朴)하다. 산수유 꽃에서는 낯선 사람을 피하여 초가집 두엄더미 뒤로 숨어 버리는 갑사댕기의 소녀를 생각하게 한다. 그 소녀는 이제 빨간 꽃망울이 터지려 하고 있을 것이다. 같은 노랑 색깔의 개나리꽃에서는 유치원 가방을 맨 병아리 같은 아이떼들의 고 예쁜 주둥이들이 보인다. 그 재잘거리는 소리들이 들린다. 나는 이런 봄에 피는 꽃들을 모두 좋아한다.
― <산 벚꽃이 필 무렵> 중에서
 

수필집『늦깎이가 주운 이삭들』에 든 성 수필가의 작품세계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하찮게 여기는 이삭(논밭에서 수확하다 버린 찌꺼기, 어쩌면 까마귀밥 정도로나 여기는…), 바로 그 이삭이 놀랍게도 뜨겁게 발현해내는 천금 같은 삶의 지혜와 철학이 아닐까 한다. 들판에 서면 코끝에 짙게 와 닿는 곡식 향기 같은 문학적 여운까지 독자들에게 선사를 하고 있으매….

성종화 수필가는 1938년 일본 오오사카(大坂) 출생으로 진주고등학교를 졸업(1957년)했다.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친 뒤 1967년부터 1983년까지 공무원(검찰청)으로 종사하다가 1984년 부산에서 법무사 개업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같은 일을 해오고 있다. 현재 (사)부산범죄피해자지원센터 ‘햇살’ 위원 및 부산지방검찰청 형사조정위원이기도 하다. 《시와 수필》지를 통해 수필가로 등단하였으며 영남문학(嶺南文學)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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