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장품]다구(tea utensils) 결혼식
[나의 애장품]다구(tea utensils) 결혼식
  • 윤향기
  • 승인 2008.12.12 1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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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신문

비가 내린다. 비오는 날이면 가슴이 파랗게 변하는 여인이 있다. 지병이 도지는 것이다.


봄! 낡은 자전거 한 대가 예당저수지 뚝 길에서 낯선 자전거 한 대를 만난다. 통학 길에서 마주친 여중3년생과 고교3년생의 만남이다. 그 후 세 번째 여름이던가. 둘이는 서해안의 더 먼 섬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약속한다.

드디어 여름방학. 덩커덩덜커덩 버스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 한적한 해안가에 도착한다. 가까운 무인도까지 작은 배를 빌려 둘이는 꿈처럼 노를 저어간다. 행복중독증에 걸린 사람들처럼 둘은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화창하던 날씨가 폭풍우로 변한다. 간신히 발견한 작은 동굴에서 맞이하는 아침. 젖은 사람 속으로 젖은 사람이 따라 들어와 잘 피어오른 햇살처럼 환하게 웃는다.

다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몇 번인가 자리를 바꿀 때쯤 그 남자는 월남전에 자발적 파병을 하게 된다. 혼기가 찬 그녀의 집에는 중매쟁이들이 들락거리고, 그녀는 그에게서 온 편지 읽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동생으로부터 그의 사망통지서를 받는다……. 그리고 또 다시 봄! 봄! 봄! 꽃은 피고……. 그녀는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었다.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들은 나는 그녀와 먼저 가버린 그녀의 사랑을 위해 차례(茶禮)를 지내주기로 마음먹고, 이 다구(tea utensils)를 만들게 되었다. 다완(tea bowl)은 보편적인 것들과 다름이 없지만 주전자(kettle)는 모양새가 각별하다. ‘그녀’를 상징한 뚜껑의 손잡이에는 구멍을 뚫어 여성성을 나타내었으며, ‘그’를 상징한 손잡이는 남근을 형상화시켰다. 생명의 눈부심과 인간의 신성(神聖)한 사랑을 투명하게 표출시키려는 의도에서였다. 의도는 좋은 주문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영혼의 다비(茶毘)를 위해 이 다구로 다례(茶禮)를 지낸 날부터 친구는 그 고질병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다. (효험 보시고 싶은 분 연락바람. 대여료 유료)

/ 윤향기 시인<한국예술가 애장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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