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악녀 바토리 여백작
세기의 악녀 바토리 여백작
  • 신금자
  • 승인 2008.12.12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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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속 여인들 26회

▲ 신금자[수필가·본지 편집위원]     ©독서신문
명문가와의 정략결혼


엘리자베트 바토리 (1560~1614) 백작 부인은 과연 현재에만 살고자 했던가. 그녀가 죽은 후 세인들은 그녀를 ‘피의 여왕’ 혹은 ‘잔혹한 악녀’로 일컫고 있으니 안타깝다.

그녀는 1560년 트란실바니아(루마니아 서북부의 고원지방)의 귀족 바토리 가에서 태어났다. 바토리 가는 합스부르크 가와 맞먹는 명문가로서 대대로 왕위를 잇고 있던 집안이다. 그녀는 11살 때 이미 가문에서 정해준 나다스디 가문의 성으로 보내졌다. 장차 명문 무인 집안의 맏며느리가 될 신부수업을 받기 위해서였다. 신랑이 될 페란츠 백작은 전장에 나가고 성에 없었다. 어린 나이에 시어머니 울슬라는 무섭고 엄했다. 무인의 아내는 결코 웃음을 보여선 안되며 냉정하고 의연해야 남편이 전장에서 공을 세울 수 있다며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책망했다. 너무 아름답다고, 지나치게 목소리가 상냥하다고, 몸가짐이 나긋나긋하다고 야단을 치니 바토리는 점차 뚱하고 남의 눈치만 살피는 아무런 감정이 없는 소녀로 변해갔다.

마침내 15살이 되자 4살 연상인 페란츠 백작과 결혼식을 올렸다. 그 첫날밤도 바토리는 남편에게 미소조차 보이지 않았다. 남편이 의아해서 묻자 무인의 아내는 전장에서 돌아온 남편의 성 배출구 역할만 하면 될 뿐, 다시 전장에 나가야할 남편에게 미련을 갖게 해선 안되며 아름다워서도 안된다는 것을 알았다고 답했다. 남편은 그래도 그녀가 아름답다고 말하며 몇 번이고 안아주었다. 결혼 후 여러 성 중에서 마음에 두었던 헝가리 체터 성으로 옮겨서 살았다. 그렇지만 남편은 ‘헝가리의 검은 영웅’이란 별명처럼 전쟁 때문에 거의 성을 비웠다.
 

엽기적인 그녀 엘리자베트 바토리

거의 대부분을 전쟁터에서 사는 남편이었기에 외로워진 바토리는 하인에게서 신비주의, 악마숭배 등등의 것을 전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남편과 같이 지내는 시간이 적었기에 결혼한 지 10년 만에 겨우 두 딸과 아들 하나를 얻었다.  그리고 남편 페란츠 백작이 1604년 51세의 나이로 전장에서 전사했다. 그 후 그녀는 평소에 무척 미워했던 시어머니를 성에서 쫓아내버렸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악마숭배에 빠져들었다. 처음엔 말이나 동물들을 제물로 사용했지만 나중엔 인간을 제물로 바쳤다고 하는데 젊은 처녀의 피로 목욕을 하면 아기처럼 고운 피부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고. 나중에는 천민이 아니라 귀족 처녀들의 피를 받기 위해 성내에 귀족여학교를 만들었다한다. 마침 희생자 하나가 극적으로 탈출하여 정부 당국에 신고, 1610년 조르지 토르조 백작이 이끄는 군대에 의해 진상이 낱낱이 밝혀졌다. 이에 660여 명을 죽였다는 기록처럼 그녀의 행적이 드러난 뒤 그의 악행을 돕고 부추겼다고 하는 하인들은 손가락을 자르고 산 채로 화형시켰다. 특별히 그녀는 귀족인 탓에 목숨은 건졌지만 죽기 전 4년을 고성 첨탑에 갇혀 살았다.
 

피의 여왕인가 정치적 희생양인가

문제는그녀와 관련된 자료를 뒤적이다 의아한 부분이 더러 발견되었다. 과연 그녀가 소문대로 희대의 살인마이며 피의여왕이었을까? 명징한 답은커녕 그 당시의 재판기록이 헝가리에 보관되어 있다고는 하나 재판기록 자체를 100% 믿을 수가 없어서 낭패다. 실제 그녀를 재판장에 참석시키지도 않았으며 구술도 그녀의 시종들이 분위기에 편성해 한 것뿐이다. 다시 말해서 그녀를 엮어 넣는 것은 그 사람들의 마음먹기 나름 아닌가. 불행히도 그녀는 남편도 없는 루마니아 출신이다. 그런데 그녀가 살던 체터 성은 헝가리이다. 체터 성에 연고가 있을 리가 없다. 그녀를 옥탑에 감금한 후 모든 것을 조작해도 말릴 이가 없는 상황 아닌가. 이는 모든 일이 그녀의 행적과 다르게 그들의 구미에 따라 조작되었을 수도 있다는 심증이기도 하다.

한편, 그녀는 정규 교육을 받은 여자였을 뿐 아니라 남자를 능가할 정도로 똑똑했다고 한다. 당시의 헝가리 군주들이 거의 글을 읽지 못했던 반면, 그녀는 헝가리어, 라틴어, 로마어에도 능통했으며 제반 상식 또한 상당한 경지였다고 전한다. 알려진 바, 엽기적인 그녀의 행각과 크게 다른 면이다. 귀족여학교를 세운 것도 그렇다. 만일 엽기적인 행각을 펼칠 목적으로 귀족여학교를 만들었다면 학생들을 한꺼번에 다 참살할 것도 아닌데 그곳의 비밀을 언제까지 묶어 놓을 수 있으리라 보겠는가. 차라리 납치를 하고 말지 번잡하게 여학교를 만들어서 금방 드러날 일을 꾸민다는 것도 퍼뜩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저 여성들의 교육기관이 없어 다른 나라로 유학을 가야했던 만큼, 귀족여성들만이라도 교육시키기 위해 만들었다면 이는 여자들의 교육을 깡그리 무시하던 당시로선 상당히 획기적인 일이다. 그녀의 지적 수준이 제발 이리 흘렀어야 했다.

요는 헝가리 출신인 남편 집안과 루마니아 출신의 그녀 집안간의 문제에 결국 그녀가 치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시어머니를 쫓아낼 정도라면 실제로 체터 성은 그녀의 성이었을 것이며 이는 루마니아인들에게 자기들의 파이를 뺏긴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측근들은 모두 참형을 당하거나 성을 쳤을 당시에 거의 몰살했다. 그러니 그녀의 편에 서서 진실을 말해줄 사람은 그녀 외에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죽을 때까지 철탑 밖으로 나오질 못했다. 올바른 재판과 공정한 기록을 기대하는 것은 그만큼 어리석은 짓이 된다.

역사는 승리자의 것이라 진실이 어느 정도 가려져 있을 수도 있지만 영원히 가리기엔 많은 억측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녀는 체터 성의 제일 높은 탑 꼭대기에 감금되어 음식을 넣어주는 작은 구멍 이외에 창문 하나 없는 어두운 방에서 감금 4년만인 1614년 8월 말,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이 사건이 진실이 아니고 조작된 것이라면 감금되었던 4년 동안 그녀가 흘린 눈물과 한을 어찌 어루만져주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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