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배려와 극기의 심상으로 꽃핀 詩”
“타자 배려와 극기의 심상으로 꽃핀 詩”
  • 안재동
  • 승인 2008.11.21 15: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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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 볼링선수 오인자 시집 『서리꽃이 필 무렵』 ◀
▲ 오인자 시인     © 독서신문
장애인볼링 종목 충남대표선수인 오인자 시인이 시집 『서리꽃이 필 무렵』을 상재했다.

도서출판 글벗에서 출간한 이 시집은 제1부 ‘인생은 노을이고 싶다’, 제2부 ‘침묵 속의 메아리’, 제3부 ‘초록으로 가는 길’, 제4부 ‘물같이 바람같이’ 등 4부에 걸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침묵 속의 메아리」, 「단풍의 향기」, 「빛을 만지다」 등 모두 80편을 시를 담고 있다.
 
제각각인 수풀의 언덕 / 햇살 밝게 쏟아져 내리면 / 손끝으로 그려지는 / 알 수 없는 그림들 // 소리는 낼 수 없지만 / 빛깔의 소리를 낼 수 있고 // 한낮 시원함은 스치고 / 벌레들의 노랫소리에 / 풀피리 만들어 화답합니다. ― 「언덕에 앉아」 전문

오인자는 여류시인이자 운동선수이다. 2008년 6월 28일에 열린 서울시장배 장애인볼링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시각 장애의 불운을 그녀 특유의 강한 의지력으로 인생을 밝고 아름답게 변화시켜 가는 인간승리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강한 외면적 모습에 뒤지지 않게 시와 문학에 대한 사랑과 재질까지 보여주고 있다.

 해오름인가 했는데 / 어느덧 뉘엿뉘엿 / 서산에 걸터앉은 그리움 // 땅거미 허리 춤 / 겨울의 길목 에이고 / 수련의 꽃 지혜 희석이어 / 나른한 일상이런가 // 저물어가는 정해년 / 천년의 약속도 못하는데 / 세월꽃에 그리움 하나 / 달아 놓았구나.
― 「그리움 하나」 전문

인생이란 고통과 인내, 일탈과 회귀, 과오와 성찰을 끝없는 반복이다. 고통이나 일탈이나 과오는 어쩌면 신이 인간에게 내리는 형벌일지 모르지만, 인간은 인내와 회귀와 성찰을 통해 자아를 완성해 나가야 한다.

오인자 시인의 다수 시편들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아픔이랄까 번민이랄까 하는 내면의 소리를 느낄 수 있지만, 그 속에서 강한 의지와 몸부림으로 현실을 슬기롭게 치유해가는 자아성숙적인 심상을 엿볼 수 있다.

한세상을 소리 없는 고뇌 / 지나간 발자취 / 역사 속으로 스며들고 / 화려하지도 않은 지난날 // 잔잔히 흐르고 / 잔잔하게 불어온 바람에 / 남은 생을 동행하여 /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고 싶습니다 // 물속에 머문 달빛에 / 지혜의 샘 번뇌의 용서를 빌고 빌어 / 좁은 소견 진리 얻어 // 수행의 길 / 깨달음의 길 / 물같이 바람같이 범부의 생 가렵니다
― 「물 같이 바람 같이」 전문

 
▲ 『서리꽃이 필 무렵』표지     ©독서신문
시집의 머리말에서 오인자 시인은 말한다.

“한때는 나도 밀폐된 공간 안에서 자폐아처럼 빛을 만지며 놀았다. 문밖으로 발을 내딛는 상황은 엄청난 공포로 다가와 나의 발을 묶어버리곤 했다. 내가 갇힌 공간 안에서 질식당하지 않으려고 닫힌 문짝 위로 까치발을 딛고 서서 늘 하늘만 보이는 작은 구멍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았다. 나를 밖으로 조심스레 이끌어 낸 것은 그 자폐적 공간 안에서 나와 함께 떠돌던 수많은 언어들이었다. 나의 상상력으로 배가 부른 언어들은 그들 스스로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어 했다.”

그동안 오 시인에게 중압감과도 같이 작용해왔던 심상(心象)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오 시인은 덧붙인다. “2007년 11월 27일 kbs 제3라디오 <강원래의 참 좋은 당신>이란 프로그램에 「다가오지 않을 것 같던 내 인생의 봄」이란 글이 전파를 타면서 가만 가만 빛을 만지며 오늘도 그 답답한 밀폐된 공간 안에 있을 장애우들에게 비로소 희망이란 명패를 걸어줄 수 있었다. 내가 뚫었던 낡은 문짝 위 그 조그만 숨 쉬는 공간 보다는 좀 더 큰 빛의 터널, 희망의 터널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이렇듯 오 시인은 자신이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장애인들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정신의 소유자이다. 세상은 삭막하나 그녀의 마음은 얼마나 따뜻한가. 게다가 남다른 열정과 투지로 정상인이도 쉬 해낼 수 없는 스포츠(볼링)와 문학창작을 생활화하고 있다.

극기의 삶을 열어가는 그런 아름다운 모습이야말로 오늘날 심신이 피폐하고 나약해진 수많은 군상에게는 분명 귀감이 될 수밖에 없는 훌륭한 작가이다.

깊은 밤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 / 마음속에 엉킨 실타래 / 빨 주 노 초 파 남 보 / 무지개에 엮어 하나씩 / 고운 빛으로 풀어 보세나 // 빈손으로 왔거늘 / 무엇을 그리 욕심내어 쥐려하는가 / 한 조각 구름처럼 흘러가듯이 / 한 줄기 바람처럼 스쳐가듯이 / 그렇게 그렇게 살아가세나 // 굽어진 인생길 / 돌밭을 짚어가는 발걸음 아래 / 시름을 딛고 기우뚱 슬픔을 딛고 기우뚱 // 그렇게 넘어져 생채기 나더라도 돋아오르는 새 살을 기억하며 / 우리 저 붉은 노을 빛 아래 쉬어 가보세
― 「실타래」 전문

▲ 안재동 시인/평론가     ©독서신문
오인자 시인은 충남 보령 출생으로 아호는 선우(善佑)이며 경북 청송 진보여중 교사를 지냈다. 《한비문학》 시 부문으로 등단한 뒤 한비문학작가협회 홍보국장을 맡고 있으며 <경찰정보신문>과 <충청시민신문>에 詩 주간연재를 하고 있다. 2008년에는 제1회 시각장애인 문학작품 공모에 당선됐으며, 천안시 장애인교통사고 피해상담센터 지회장, 한국장애인 경제인연합회 천안·아산지부 이사, 충청남도 시각장애 도지부 이사 등으로 활발한 사회활동과 함께 (주)삼성화재 선우대리점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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