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학》 창간호에 부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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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 충정로(지금의 경기초등학교 서쪽 담 중간쯤에 있는) 허름한 판자집 2층에는 늘 누추한 차림의 깡마른 시인이 두꺼운 돋보기 쓴 채 원고지의 글자를 뚫어지게 흩고 있었다. ‘현대시학사’의 주간인 전봉건 선생님이었다.
진열된 이 잡지는 당시의 편집인들이 주머니를 털어 내놓은 순수 시전문지이다. 나는 1985년 8월 전봉건과 박두진 두 분 선생님들의 3회 추천을 통해 문단 말석에 이름을 올렸다. 따라서 이 잡지는 문인으로서의 나의 모태이자 둥지이다. 1987년 여름으로 기억하고 있다. 나는 청계천 헌 책방을 뒤지다가 운좋게(?) 《현대시학》 창간호와 2, 3호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애장품이라기에는 좀 멋쩍기도 하지만 그러나 나는 이 책들을 귀하게 대접 해 온 셈이다. 그렇지만 나의, 나만의 초라한 책장에 꽂힌 다른 책들 사이에서 제 값의 대우를 받지 못하다가 다행히 ‘열린시학사’에서 높게 대접해 줄 것 같아 기쁜 마음으로 내놓는다.
‘시작노트’와 관련하여
정지용 선생은 당신의 작품이 완성된 뒤에는 첨삭은 물론, 재독(再讀)도 하지 않았다한다. 언젠가 선생을 회억하는 tv 대담에서 그의 아드님이 밝혔던 이 말은 시상을 가슴의 용광로에서 오래도록 녹이고 익혀 세상에 내놓았다는 다른 표현이기도 할 것이다.
시상(詩想)으로부터 퇴고에 이르는 시 창작 작업인 일련의 과정을 선생과 비견할 수 없는 나의 무능은 졸렬한 시상일지라도 그때 그때 기록하지 않으면 잊기 십상이다. 이 너덜거린 노트는 그런 필요성 때문에 내가 10여년을 넘게 지녀 온 공책이다. 이 역시 내게는 소중한 것이어서 ‘열린시학 애장박물관’의 한 모서리를 차지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내놓는다.
/ 한국예술가 애장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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