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
머스크
  • 독서신문
  • 승인 2008.11.10 10: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향수 없인 살 수 없어 죽는 노인
자존감에 대한 새로운 고찰

▲     © 독서신문
누구나 자신을 상징하거나 아끼는 물건이 있다. 수집욕이란 인간에게 있어 필연적인 욕구로 이는 역사를 뒤집을만큼 굵직굵직한 일을 많이 만들어냈다.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시던 사람에게 커피를 앗아간다면 일상 생활의 뒤틀림을 느끼게 될 것이며, 극단적으로 인류를 대표하는 물과 공기를 끊는다면 인간은 더 이상의 생활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쉽게 접할 수 있는 연예인을 예로 들면 가수 박상민에게 선글라스는 필수품이며, 가수 김흥국에게 콧수염이란 그의 아이덴티티를 증명하는 상징이 됐다. 박명수에게 흑채를 빼앗고, 노홍철에게 키높이 깔창을 금지시킨다면 그들은 어떤 인생을 살게 될까? 아마 지금의 자신을 유지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프랑스 정보부에서 스파이로 활동하다 은퇴한 69세의 아르망 엠므. 전직 스파이다운 은밀함과 세심함, 프랑스 신사로서의 우아함과 품위가 몸에 밴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철저한 자기관리를 해온 덕분에 69세에도 밀회를 즐기는 매력적인 노신사이다.

이렇게 잘나가는 그에게는 자신만의 비법이 있다. 바로 천연 사향노루 분비물로 만든 ‘머스크’라는 향수이다. 이 향수의 향기야말로 엠므를 엠므일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물건으로써 그를 자신감 넘치는 노신사로 만들어주며 이는 여인들을 유혹하는 무기로 사용됐다.

향수의 효과를 확신해 왔던 엠므는 40여 년간 향수에 대해서만은 일편단심을 지킨다. ‘머스크=엠므’라는 공식을 그는 꾸준히 지켜온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천연 머스크’가 더 이상 생산되지 않게 된다. 이는 엠므에게 있어서 자존감을 상실하게 되는 계기가 되고 만다.

아껴 쓰기 위해 머스크의 양을 줄일수록 자신감으로 충만하던 매력적인 노신사는 점차 위축되고 초라한 늙은이로 변해간다. 늙기를 거부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허영기에서 시작된 일이 결국 그는 자신이 더 이상 초라해지지 않게 자살을 시도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죽음을 ‘삶과 구분되는 비약적인 단계’로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과 유쾌하고도 리얼하게 묘사해가는 자살의 준비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은 향수 하나 때문에 69세의 노신사가 자살을 선택한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허구적인듯 하지만 자존감의 붕괴가 가져오는 혼돈은 충분히 죽음의 문턱으로 사람을 내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죽는 순간까지 아름다움과 완벽함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프랑스인의 고고하고 품위를 논하는 행태를 우회적으로 풍자고 있다.

‘자살’이라는 것이 사회의 심각한 키워드가 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어느 한순간 작은 사건 하나로 인해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자아를 상실해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과연 나를 나로써 존재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생각과 그 존재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하고 있다.

 
■ 머스크

퍼시 캉프 지음 / 용경식 옮김 / 끌레마 펴냄 / 173쪽 / 9,800원

 

/ 권구현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