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화에의 유혹 극복하기
타자화에의 유혹 극복하기
  • 최용석
  • 승인 2008.10.27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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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예의 「꽃게무덤」
▲ 최용석 평론가     © 독서신문
1. 타자화(他者化)에의 유혹


권지예의 단편 「꽃게무덤」은 비교적 단순한 형식미를 지니고 있음에도 탁월한 서사적 전략으로 시대정신을 흥미롭게 담아내고 있다. 특히 인간적 가치의 상실에 대한 메타포로 설정된 ‘꽃게 먹기’ 내지 ‘꽃게무덤’은 당면 문제를 적시한 기발하고 독창적인 모티프로 독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더해 불교의 반야심경이나 윤회사상에 관한 작가의 진술은 주제의식의 우회적 확보는 물론, 현실의 직시에 따르는 긴장감과 경직성으로부터의 해방을 가져다준다.

이런 진술 내용은 메시지의 전달 과정에서 풍길 수 있는 스토리텔링의 표피성과 도식성을 걷어내는 데도 효과적이다. 또 그것은 무상감이나 무소유의 차원에 비추어 무기력과 허무감에 근거하는 맹목적인 삶의 황폐함을 부각시키는 데도 이바지한다.

작중의 남자는 익사 직전에 놓인 여자의 생명을 구한 인연으로 일 년 남짓 동거 생활을 한다.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지만 여자는 이전의 연인을 잊지 못해 결국 남자의 곁을 떠난다. 여자의 부재(不在)는 상상 이상으로 남자에게 지독한 고독과 무기력을 안겨준다. 그것은 여자의 부재가 남자의 일상에 감춰진 진부함과 공허함을 새삼스레 들추어내었기 때문일 게다. 이후 남자가 한 일이란 여자가 남긴 옷가지와 구두를 바다에 갖다 버리고 그녀처럼 꽃게 살을 탐닉하는 것이 전부다. 여자의 삶이 그러했듯, 남자 역시 ‘가슴속에 잔해만 남기는 텅 빈 꽃게무덤’으로 환기되는 삭막한 일상에서 당분간 헤어날 수 없을 듯싶다. 그것은 무엇보다 남자의 여자를 향한 동일화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타자화(他者化)를 향한 집착을 떨칠 수 없다면 남자의 일상적 황폐함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타자화에의 유혹을 극복하는 일은 건강한 생명체 혹은 주체로서 살아남는 필요조건이 되는 셈이다.

남자와 여자의 삶이 보여주듯 타자화된 삶은 결과적으로 주체의 무기력과 허무감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남자는 진정한 사랑에 대한 부정에도 불구하고 여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남자의 여자를 향한 집착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남자는 부재하는 여자를 자신의 내면 깊숙이 받아들이고 그녀와의 동일화를 시도한다. 이런 사실은 꽃게 살에 과도한 집착을 보였던 여자처럼 남자가 이전에 없는 이상 식욕 증세를 보이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아아 오늘밤은 게를 먹고 싶다. 속이 허하다. 간장에 곰삭은 게를 오래도록 파먹고 싶다. 이 입맛을 이기기엔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 걸까. 바닷게는 연인의 몸을 먹고 또 한 사람의 연인은 바닷게의 살을 파먹고…. 그는 갑자기 맹렬한 식욕이 돋는 걸 느낀다. 그는 간장 게장을 사기 위해 차를 몰아 포구로 간다.”(40쪽)

 
떠난 여자를 향한 남자의 강한 집착은 과도한 식탐, 즉 바닷게를 탐하는 욕망으로 전이적으로 드러난다. 남자의 이런 식욕(食慾)은 허기진 배를 채우려는 소박한 욕망이 아닌, 섬뜩할 정도로 애정의 육질(肉質)을 탐하는 원초적 욕망을 연상시킨다. 따라서 남자의 과잉 식욕에는 인간적 가치에 대한 열망의 일면을 읽어낼 수 있다. 그것은 남자의 과도한 식욕이 진정한 가치에의 성취에 대한 반작용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자나 여자의 ‘꽃게에의 탐닉’은 텅 빈 삶을 채우는 사랑과 소통 등 인간적 가치를 향한 열망이나 삶의 진정성 희구에 대한 표상으로 이해해도 무방할 듯싶다. 같은 맥락에서 ‘속살이 부재한 게 껍질’이나 ‘꽃게 무덤’은 허무하고 무자비한 삶의 풍경이나 인간적 가치의 부재, 또는 표피적인 인간관계의 아픔이나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공허함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그러한 가치들의 소중함을 역설적으로 일깨우는 징표로 읽을 수 있다. 따라서 작가는 바닷게에 대한 지나친 식탐(食貪)과 식사 후 남겨진 게 껍질을 매개로 인간적 가치의 실종을 환기하고, 나아가 그것의 소중함과 숭고함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2. 살아 있음의 숭고함

심적으로 가장 가까워야 할 연인의 무정하고 무관심한 태도는 상대에게 어떤 식으로든지 마음의 상처를 입힐 수 있다. 한밤중에 혼자서 게살을 파먹는 여자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남자가 외로움에 빠져든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그 고독의 정서는 여자의 육체를 소유할 때도 어김없이 남자를 사로잡는, 그녀의 영혼이 한 줌 바람처럼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과 다르지 않다. 일 년 동안 살을 비비고 함께 살면서도 실상 그들은 표피적인 관계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출판사 원고의 교정 문장 즉 ‘결국 그들은 고독한 존재이다.’는 글귀가 남자의 머릿속 깊숙이 새겨진 것은 그래서 우연이 아니다. 끝내 진심을 보여주지 않는 여자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입은 남자가 삶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 것은 자연스런 일일 수 있다. 어쩌면 이런 이유로 남자는 여자와의 진정한 소통 및 관계 맺기에 더 목말라 했는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점은 과거의 연인에 대한 집착으로 허무감와 무기력에 시달리고 있는 여자가 보여주는 꽃게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다. 여자는 꽃게를 대할 때면 믿기질 않을 정도로 맹렬하게 그리고 맛나게 그 살을 파먹는다. 여자의 과도한 식탐은 삶의 진정성 희구나 인간적 가치에의 열망 외에도 삶 또는 생명체에 깃들어 있는 비장함의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일까. 기꺼이 속살을 파 먹히고 딱딱한 껍질로 흉하게 꽃게무덤으로 남더라도 누군가에게 꽃게의 속살이 된다는 것은, 떠남을 예견하여 그것이 두려워 속살을 단단한 각질로 뒤집어쓰는 것보다 비겁하지 않은 일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행위는 죽음이라는 마침표가 두려워 삶의 속살을 거부하고 단지 삶의 껍데기에 연연해하는 것보다 한층 성숙한 존재의 도저한 몸짓일 수 있는 것이다. 작가의 표현대로 삶의 속살을 갈망하는 영혼이, 상처입기를 두려워한 나머지 속살 없는 각질로만 살아간다면 그것처럼 서글픈 일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텅 빈 삶에 죽음만을 채워놓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이다.

이렇듯 작가는 생명체의 살아 있음에 대해 남다른 애착을 보인다. 그것은 무엇보다 그의 작품에 반복적으로 드러나 있는 동물을 매개로 한 상상력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가령 옆으로 총총히 기어가는 꽃게의 이미지가 그러하고, 이상 문학상 수상작인 「뱀장어 스튜」의 흉물스럽게 헤엄치는 뱀장어의 이미지가 그러하다. 이들 존재의 이미지에서 삶의 맹목성에 더하여 살아 있는 생명체의 존엄성 내지 숭고함을 읽어낼 수 있다.

이처럼 ‘살아 있음’에 대한 찬사는 작가의 삶에 대한 열망과도 통한다. 작가의 경우, 이런 생동적인 삶에의 열망은 글쓰기에 대한 강렬한 욕망과 맥을 같이 한다. 그 바탕에는 삶에 대한 긍정적 시각이 깔려 있다. 여기에 더하여 동물 이미지를 통한 메시지 전달은 시각과 후각 혹은 미각 등이 동원된 감각적 이미지의 연출을 통한 텍스트 해석의 풍요로움을 이끈다. 작가의 작품이 줄곧 스토리텔링의 탄력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은 물론, 대상에 대한 관념과 정서의 깊이와 폭을 담보함으로써 독특한 서사적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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