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장품]나태주시인의 몽당연필
[나의 애장품]나태주시인의 몽당연필
  • 나태주
  • 승인 2008.09.12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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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말까지만 해도 나는 초등학교 선생이었다. 하는 일이 교장이었으므로 학교 안을 둘러보는 기회가 많았다. 그럴 때, 운동장이나 공터 구석에서 몽당연필을 많이 주웠다. 아이들이 버린 몽당연필들이다.

아니, 아이들한테 버림받은 몽당연필들이다. 나는 번번이 반사적으로 허리를 숙여 그 몽당연필들을 주워 교장실로 가져와 수돗물에 깨끗이 씻어 서랍에 보관하곤 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참 학용품이 귀했다. 공책도 귀했고 연필도 귀했다. 지우개나 연필 깎는 칼 같은 것은 아예 있지도 않았다. 낫이나 부엌칼로 연필을 깎아서 썼다. 그런 경험이 있으므로 지금도 연필 한 자루는 나에게 대단한 물건이다. 몽당연필일망정 아직은 쓸모가 충분히 남아있는 필기도구이다. 이걸 <궁끼>라 그럴까?

글을 쓸 때면 나는 그 몽당연필을 칼로 깎고 엉덩이 부분을 볼펜깍지에 맞도록 다듬어 볼펜 깍지에 끼워 사용한다. 물론 성한 연필, 기다란 연필이 수두룩함에도 그렇게 해야만 마음이 편안해지고 글도 잘 써지는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는 일이다. 이런 나를 아내가 곤히 보아줄 일이 없다. 핀잔을 해대는 것이다. “당신은 그게 무슨 궁상이유? 멀쩡한 연필 다 놓아두고 아이들 버린 연필들 주워다 그러는 것은 또 무슨 두시럭이람!”

생각해보면 아내나 내나 몽당연필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다. 살아온 날이 많은 대신 앞으로 살날이 그렇고 건강 상태가 그렇고 생각하는 것이 그렇고 몸의 생김이 그렇고 얼굴 또한 그러하다. 그래도 아내는 나에게 아직은 쓸모가 많이 남아 있는 사람이다.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사라졌을 때. 내가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아내는 나에게 생활의 방편이고 도구이고 삶의 배경 그 자체이다. 나는 또 생각해 본다. 아내가 아직은 쓸모 있는 사람, 필요한 사람이듯이 나도 아내한테 그렇게 보여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래저래 우리는 이제 몽당연필이다. 두 개의 망가지고 닳아진 몽당연필이다. 이런 판국에 어찌 몽당연필 한 개가 소중하게 보이지 아니하랴.

<한국예술가 애장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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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태주 시인     ©독서신문
 
나 태 주

1945년 충남 서천 출생으로 공주사범대학교를 졸업했다.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대숲 아래서』 『누님의 가을』 『딸을 위하여』 『풀잎 속 작은 길』 『추억이 손짓하거든』 『슬픔에 손목 잡혀』 『섬을 건너다보는 자리』 『물고기와 만나다』 등이 있고, 흙의문학상, 충청남도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박용래문학상, 시와시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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