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아이들한테 버림받은 몽당연필들이다. 나는 번번이 반사적으로 허리를 숙여 그 몽당연필들을 주워 교장실로 가져와 수돗물에 깨끗이 씻어 서랍에 보관하곤 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참 학용품이 귀했다. 공책도 귀했고 연필도 귀했다. 지우개나 연필 깎는 칼 같은 것은 아예 있지도 않았다. 낫이나 부엌칼로 연필을 깎아서 썼다. 그런 경험이 있으므로 지금도 연필 한 자루는 나에게 대단한 물건이다. 몽당연필일망정 아직은 쓸모가 충분히 남아있는 필기도구이다. 이걸 <궁끼>라 그럴까?
글을 쓸 때면 나는 그 몽당연필을 칼로 깎고 엉덩이 부분을 볼펜깍지에 맞도록 다듬어 볼펜 깍지에 끼워 사용한다. 물론 성한 연필, 기다란 연필이 수두룩함에도 그렇게 해야만 마음이 편안해지고 글도 잘 써지는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는 일이다. 이런 나를 아내가 곤히 보아줄 일이 없다. 핀잔을 해대는 것이다. “당신은 그게 무슨 궁상이유? 멀쩡한 연필 다 놓아두고 아이들 버린 연필들 주워다 그러는 것은 또 무슨 두시럭이람!”
생각해보면 아내나 내나 몽당연필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다. 살아온 날이 많은 대신 앞으로 살날이 그렇고 건강 상태가 그렇고 생각하는 것이 그렇고 몸의 생김이 그렇고 얼굴 또한 그러하다. 그래도 아내는 나에게 아직은 쓸모가 많이 남아 있는 사람이다.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사라졌을 때. 내가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아내는 나에게 생활의 방편이고 도구이고 삶의 배경 그 자체이다. 나는 또 생각해 본다. 아내가 아직은 쓸모 있는 사람, 필요한 사람이듯이 나도 아내한테 그렇게 보여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래저래 우리는 이제 몽당연필이다. 두 개의 망가지고 닳아진 몽당연필이다. 이런 판국에 어찌 몽당연필 한 개가 소중하게 보이지 아니하랴.
<한국예술가 애장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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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태 주
1945년 충남 서천 출생으로 공주사범대학교를 졸업했다.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대숲 아래서』 『누님의 가을』 『딸을 위하여』 『풀잎 속 작은 길』 『추억이 손짓하거든』 『슬픔에 손목 잡혀』 『섬을 건너다보는 자리』 『물고기와 만나다』 등이 있고, 흙의문학상, 충청남도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박용래문학상, 시와시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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