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만년
  • 독서신문
  • 승인 2008.08.30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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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삶 속에서 빛났던 단 하나의 순간
4번의 자살 시도 끝 세상을 떠난 천재작가의 처녀작
▲ 다자이 오사무의 '만년'     © 독서신문
“나는 이 단편집 한 권을 위해 10년을 허비했다. 만 10년 동안 시민들이 먹는 것과 같은 산뜻한 아침을 먹지 못했다. 나는 이 한 권을 위해 몸 둘 곳을 잃어버린 채 끊임없이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세상의 세찬 찬바람을 맞으며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다” - 다자이 오사무
 
사람에게 있어서 삶의 행복이란 누구에게나 다르게 다가오는 법이다. 다자이 오사무는 우리가 보통 행복을 말할 때 꼽곤 하는 ‘부’라는 것을 가진 사람이었다. 1909년 아오모리 현 기타쓰가루에서 중의원과 귀족원 의원을 역임한 지방 호족의 자제로 태어났던 그는 학생 시절부터 습작 활동과 문학동인지 발행을 주도하며 작가를 지망했다.

좌익 운동에 경도되어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영향을 받은 동인지 「세포문예」를 펴내기도 한 그는 남들에게 ‘부’란 행복의 수단인 ‘부’가 자신의 이데올로기에는 반하는 행동이었기에 괴로워 하다가 1929년 첫 번째 자살을 시도했다.

1930년 도쿄제국대학 불문과에 입학 후 유부녀였던 카페 여급과 함께 가마쿠라에서 투신자살을 시도했으나 여급만 죽고 다자이는 살아남았다.

이후 「역행」으로 제1회 아쿠타가와상 후보로 올랐고 1936년 처녀 창작집 『만년』을 발표했다.

결국 1948년 투신자살로 생을 마쳤던 다자이의 파란만장한 인생에서 첫 창작집이기에 『만년』은 그 작품이 나오기 전까지 작가의 모든 인생을 글로써 갈무리 해냈다고 할 수 있다.
 
작가 본인마저도 “이 책 한 권을 쓰기 위해 태어났다”고 말했던 이 작품은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잎」과 에필로그에 해당되는 「장님 이야기」를 작품집의 전후에 배치함으로써 『만년』 전체를 단순한 단편들의 모음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한 고백록으로 만들려는 시도를 꾀했다.

원래 『만년』에는 열네 편의 작품이 들어갈 거라고 다자이는 썼으나 출간할 때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작품을 끼워넣어 그런 의도를 확실히 했다. 일본의 독자들도 “『만년』은 단편집이라고 불려서는 안 되며 전체가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라고 말하고 있다.

『만년』은 꾸밈없이, 때로는 위악적으로 자신의 기만적인 모습과 죄를 고백한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무런 의식의 검열 없이 죽음을 앞둔 자의 다급함과 자기중심적인 요설이 숨김없이 드러나 있는 몇몇 작품들에서는 작가의 초조함이 아주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런 암울한 전망과 절망 속에서 쓰인 이 작품집에 오히려 독자들은 열광한다.

“『만년』 한 권이 당신의 그 두 손의 때로 까맣게 빛날 때까지 거듭거듭 애독될 것을 생각하면, 아아, 나는 행복하다”라는 다자이의 말은 이 책이 유서의 어두움이 아니라 오히려 의외라고 할 정도의 밝음과 화려함이 넘치는 청춘의 책이 되어 사람들에게 남게 될 것을 예견했다는 것을 조심스레 보여주고 있다.

자살로 끝맺었던 그의 인생, 남들이 보면 파란만장하고 우울한 인생이었겠지만 이 작품이 있어 다자이의 인생은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만년
다자이 오사무 지음 / 송태욱 옮김 / 서커스 펴냄 / 333쪽 / 9,800원
 
<권구현 기자> nove@enew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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