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춘천옥 (20회)
소설 춘천옥 (20회)
  • 김용만
  • 승인 2008.08.29 16: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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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아, 아버지가 돌아가셔? 네놈 얼굴에 써 있는데도 끝내 속여? 내가 남 눈치만 살피며 살아왔는데 날 속여? 네놈을 내가 잘못봤구나. 너를 자식처럼 아꼈는데, 죽일놈! 내가 숱한 배신을 당해봤지만 너한테 당한 배신처럼 분한 게 없어.”

“죄송합니다.”

“이놈새끼! 세상에 네가 그런 짓을 하다니. 딴놈 같으면 몰라도 하필 네가 그 따위 짓을 하다니....”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너 다른 데로 갈려고 그러지?”

나는 그게 제일 걱정이었다.

“ 아녜요. 그건 절대 아녜요.”

춘수는 다른 업소에 마음을 둔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럼 왜 그런 짓을 했지?”

“죄송해요. 실은 여자하고 약속한 게 있어서요.”

“뭐라구? 애인이 생겼어? 우리 춘수한테 애인이 생겼어?”

나는 얼굴을 환히 열며 춘수의 말을 반겼다. 우선 다른 업소의 의심이 풀려 마음이 놓이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기분이 밝아진 것이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임마, 은혜가 뭐야. 축하할 일인데. 며칠 쉬고 싶어?”

“아닙니다. 약속을 취소하겠습니다. 절대 그런 짓 않겠습니다.”

“그런 짓을 할 수밖에 없는 네 심정 이해한다. 하지만 나한테 솔직히 말하지 그랬어, 암튼 잘됐다. 그래 함께 어딜 가기로 했지?”

나는 춘수의 어깨를 다독거려주었다.

“해운대요. 난생 첨 해운대 해수욕장 구경하고 싶었어요. 이따 밤에 장사 끝내고요, 미스 문을 불러서 사장님께 확인시켜드릴께요.”

“그럴 건 없다. 나는 항상 네 말을 믿으니까. 그래도 미스 문을 보고 싶긴 하구나. 우리 춘수 애인인데 어떻게 생겼나 궁금하거든.”

“못생겼어요.”

“그래? 그럼 얼마나 못생겼는지 봐야겠구나. 눈이 하난지, 코가 두 갠지, 이빨도 빠졌는지, 잘 살펴야겠다.”

춘수가 킥킥거린다.

“맘이 문제야, 맘이 이쁜 게 젤 이쁜 거야. 얼굴이 못생기고 잘생긴 게 뭔 대수야. 암튼 해운대에 다녀오거라. 그동안 고생도 많았고. 명절에도 나다닌 적이 없는데, 모처럼 애인하고 바람을 쐬도록 해.”

“안돼요. 약속을 취소하겠어요.”

“걱정 말고 닷새 휴가 내줄 테니 재밌게 놀다 와. 암튼 네 애인 어떻게 생겼는지 얼굴이나 보자.”

“정말 못생겼어요.”

“짜식. 미스 문이라구?”

“네.”

“나이는?”

“동갑에요.”

“동갑내기로 맺어지면 자식을 많이 낳는다구나.”

나는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을 일부러 꾸며서 덕담으로 던져주었다.

“애는 하나만 낳을래요.”

“벌써 애 낳을 것도 의논했어?”

춘수는 공연히 실수했다는 듯 얼굴을 붉힌다.

“왜 하나만 낳고 싶은 거지?”

“키우기 힘들잖아요.”

“짜식. 사실은 나도 먹고 살기 힘들어서 하나만 낳았니라. 지금은 후회가 막심하단다. 지금 같아서는 스무 명쯤 낳아서 하나는 너 같은 주방장 만들고, 하나는 능수엄마 같은 마담 만들고, 나머지도 모두 춘천옥 종업원 만들면 좋았을텐데. 후회가 막심하구나. 그랬다면 사람 구하는 것 신경 끌 수 있을텐데.”

“그럼 제가 많이 낳을게요.”

“어이구, 춘수가 농담할 줄도 아네. 미스 문이 대단한 여잔가보구나 우리 춘수를 농담꾼으로 만든 걸 보니. 암튼 이따 미스 문하고 셋이 술 한잔 하자.”

사무실을 나가는 춘수의 발걸음이 튀는 공처럼 가벼워 보인다. 애인과 며칠 지내고 싶어 겨우 그런 쇼를 하다니, 나는 춘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 그림 송대현     ©독서신문
 

“그게 뭔 소리에요? 쇼라뇨? 춘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데, 왜들 쇼라고 수군대는 거죠?”

아내가 퀭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왜 수근대는지 이유를 물어보지 그랬어.”

“웃기만 하고 대답을 통 안 해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해. 자세한 얘기는 집에 가서 해줄 테니. 그리고 직원들이 수군거려도 못들은 척 해. 잘못했다간 춘수를 놓친단 말야.”

“왜요?”

“착한 놈인데, 미안해서 여기 있겠어?

아내는 고개만 흔든다. 무슨 일이 생기긴 했지만 나쁜 일은 아니구나, 하는 표정이다. 나는 춘수한테 애인이 생겼다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어서 춘수의 ‘사건’을 가라앉히고 싶었다. 그걸 재밌다고 자꾸 뒤적거리면 춘천옥이 웃음바다가 될 것이고, 그럴수록 춘수의 마음 속 구멍이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아까 서울대 정교수한테서 전화 왔었어요. c신문을 보래요. 우리 춘천옥이 났는데 올림픽 특정업소로 지정됐대요.”

“특정업소라니?”

“나도 몰라요. 보쌈 막국수는 우리 업소가 하나뿐인 대표업소래요. 신문에 그렇게 났대요. 갈비는 홍능갈비구요.”

“나쁜 일은 아니군. 암튼 당신 솜씨 덕야.”

“기분이 존 모양이네요. 난생 첨 마누라 칭찬을 다 하구. 그 대신 골치가 아플지 몰라요. 시설을 어떻게 고쳐라, 이건 이래라 저건 저래라, 그런 것 딱 질색인데....”

“그나자나 우리도 위생시설을 고쳐야겠어. 이름난 업소치곤 낯이 뜨거워.”

“참 주방도 공개해얀대요. 벽을 헐고 손님이 내부를 볼 수 있도록 꾸며얀대요.”

“그러지 뭐. 잘된 일이네. 이 참에 화장실도 고쳐보자구.”

그후 화장실에 신경을 써오다가, 서울 시장의 표창장을 받기에 이르렀다. 화장실이 깨끗하다고 표창장을 받다니. 화장실로는 훈장을 받아도 좀 꺼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내 고지식한 사고방식이었다. 따지고 보면 화장실 표창은 그 의미가 크다. 화장실이 일류면 모든 게 일류일 테고, 손님 역시 그 업소에서 믿음성이 느껴질 것이다.

최고의 멋진 식당보다 화장실이 최고인 업소!

한국도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우리 뒤로 물러납시다. 업소를 팔든가 누구한테 물려주든가....지금부터는 소설에만 미치고 싶어. 쓸 시간도 모자라고. 당신도 그동안 하고 싶었던 테라코타에만 매달릴 수 있고.”

“그럽시다. 사람이 얼마나 산다고, 이젠 굶어죽을 걱정 없으니, 하고 싶은 것 하다 죽죠 뭐.”

“그럼 어떻게 처리한다?”

“당연히 순지한테 줘야지 뭐. 어려서부터 한 가족처럼 지내왔고, 온몸으로 헌신한 앤데, 사실 그애가 안 돌봐줬으면 이렇게 성공할 수 없죠.”

“그애한텐 뭘 줘도 아깝지 않아. 솔짓히 아들 딸보다 그애한테 주고 싶었어. 또 그애에게 줘야 제대로 운영이 될 테고.”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우리집에 와서 배추 니어카 끌고 다니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내 재산 반을 줘도 아깝지 않을 인간이다.

행복하다.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이처럼 즐겁다니.

▲ 김용만(소설가,한성디지털대 문창과교수)     ©독서신문
“춘천옥은 우리의 능력이 어떤지를 테스트해본 실험기구였어. 맨 손으로 이룩할 수 있다는 신념과 자신감, 그 비참한 현실에서 하나의 예쁜 장난감을 만들어 냈다는 자부심. 정말이지 우린 너무 매달렸어. 이젠 다른 고생을 해보자구. 진짜 내것을 만들어보자구. 허무 말야. 이제부터 허무에만 매달려 보자구.”

 

(소설 춘천옥은 이번호를 마지막으로 독서신문 연재를 끝마칩니다. 그동안 독자들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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