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사상의 거장
20세기 사상의 거장
  • 황인술
  • 승인 2008.07.11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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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
 
▲ martin heidegger     © 독서신문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 1889~1976)


20세기 사상계에 큰 영향을 끼친 독일의 실존철학자로 1889년 9월 26일 독일 바덴주(州)의 작은 마을인 메스키르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성 마르틴 성당의 성당지기였다. 하이데거는 김나지움(독일 중등교육기관)에서 우수한 학생으로 인정받았으며, 프라이부르크대학에 입학한 것이 지방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하이데거는 성직자가 되려 했지만 악화된 건강으로 인해 철학의 길로 들어섰으며,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후설에게 현상학을 공부했다.

1913년 「심리학주의의 판단 이론」이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23년 마르부르크대학교 교수, 1927년 주요 저서인 『존재와 시간』을 출간한다. 현존재의 실존론적 분석을 한 『존재와 시간』으로 그는 실존사상의 대표자로, 시대의 지도적 철학자로 부상하게 된다. 『존재와 시간』은 불안·무(無)·죽음·양심·결의·퇴락(頹落) 등 실존에 관계되는 여러 양태가 매우 조직적·포괄적으로 씌어진 책이다.

1928년 후설의 후임으로 프라이부르크대학 정교수, 1933∼1934년까지 총장으로 지낸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참여를 이유로 전후에 논란이 됐다. 1951년 복직하여 강의를 하였지만 한 학기를 끝으로 은퇴하였으며, 1976년 5월 26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주요 저작으로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1929),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1929), 『휴머니즘에 관하여』(1947), 『숲 속의 길』(1950), 『휠델린 시(詩)의 해명』(1950), 『니체』(1961) 등이 있다.

 

『존재와 시간』 읽어보기

현존재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그의 실존에서부터, 즉 그 자신으로 존재하거나 그 자신이 아닌 것으로 존재하거나 할 수 있는 그 자신의 한 가능성에서부터 이해한다. 현존재는 이러한 가능성들을 그 스스로 선택했든가, 아니면 그 가능성들 안으로 빠져들게 되었든가, 아니면 각기 이미 그 안에서 성장해왔다. 실존은 장악하거나 놓치는 방식으로 오직 그때마다의 현존재에 의해서 결정된다. 실존의 문제는 언제나 오직 실존함 자체에 의해서만 처리될 수 있다?(중략)… 현존재는 일상적인 ‘서로 함께 있음’으로 타인들에 ‘예속’되어 있다. 현존재 자신이 ‘존재하고’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들이 그에게서 존재를 빼앗아 버렸다. 타인들이 임의로 현존재의 일상적인 존재가능성들을 좌우한다. 이때 이러한 타인들은 ‘특정한’ 타인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어느 타인이건 다 그 타인을 대표할 수 있다. 결정적인 것은 오직 ‘더불어 있음’으로서의 현존재가 뜻하지 않게 떠넘겨 받은 눈에 띄지 않는 타인들의 지배일 뿐이다.

사람들 자신이 타인들에 속해 있으며 그들의 권력을 공고히 한다. 타인들에 속한 고유한 본질적인 귀속성을 은폐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그들을 ‘남들’이라 명명할 때의 그 ‘남들’은, 곧 일상적인 ‘서로 함께 있음’ 가운데 무엇보다도 그리고 대체적으로 ‘거기에 있는’ 그들인 것이다. 그 ‘누구’는 이 사람도 저 사람도 아니고, 사람들 자신도 아니며, 몇몇 사람들도 아니고, 모든 사람의 총계도 아니다. 그 ‘누구’는 중성자(불특정 다수)로서 ‘그들’(세인世人)이다. 공공의 ‘주위세계’는 가장 가까운 주위세계에 그때마다 이미 손 안에 있으며 함께 배려되고 있다. 대중교통수단을 사용하든, 정보매체(신문)를 이용하든 타인은 모두 같은 타인인 셈이다. 이러한 ‘서로 함께 있음’은 고유한 현존재를 완전히 ‘타인’들의 존재양식 속으로 해체해 버리며 그래서 타인들의 차별성과 두드러짐이 더욱더 사라져 버리게 된다. 이러한 눈에 안띔과 확정할 수 없음 속에서 ‘그들’은 그들의 본래적인 독재를 펼친다. 우리는 ‘그들’이 즐기는 것처럼 즐기며 좋아한다. 우리는 ‘그들’이 보고 판단하는 것처럼 읽고 보며 문학과 예술에 대해서 판단한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또한 ‘그들’이 그렇게 하듯이 ‘군중’으로부터 물러서기도 한다. ‘그들’이 격분하는 것에는 우리도 격분한다. ‘그들’은 어떤 특정한 사람들이 아니고, 비록 총계로서는 아니더라도 모두인데, 이 ‘그들’이 일상성의 존재양식을 지정해 주고 있다. (『존재와 시간』, 서강대, 2005대입 논술고사 문제 지문)

 

존재 개념 생각해보기

1. 존재는 가장 보편적 개념이다. (…) 제일 먼저 인지되는 것은 존재이며, 존재의 이해는, 사람들이 존재자에 있어서 파악하는 모든 것 속에 그 때마다 이미 함축되어 있다. 그러나 존재의 보편성은 유(類)의 보편성이 아니다. 존재는, 존재자가 유와 종(種)에 따라 개념적으로 분절되는 한, 존재자의 최고 영역에 한정되지 않는다 : ο.τε τ. .ν Υ .ενο. (존재는 類가 아니다). 존재의 보편성은 모든 유적 보편성을 넘어선다. 존재는 중세 존재론의 명칭에 따르면 초월자이다. 사상적(事象的) 최고 유개념의 다양성과 구별되는 이 초월적 보편자의 통일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미 유비(類比)의 통일로서 인식하였다. 플라톤의 존재론적 문제제기에 전적으로 의존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유비의 통일을 발견함으로써 존재의 문제를 원칙적으로 새로운 지반 위에 세웠다. 그러나 그도 물론 이 범주적 연관들의 어두움을 밝히지는 못하였다. (하이데거, 소광희 역, 『존재와 시간』, 경문사, 1998, 6-7쪽)

 

2. 존재 개념은 정의할 수 없다. 이것을 사람들은 이 개념의 최고의 보편성에서 추론하였다. 만약 정의는 최근류(最近類)와 종차(種差)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한다면 그것은 옳다. 사실 존재는 존재자로서 파악될 수는 없다. (…) 존재에는 어떤 성질도 덧붙일 수 없다. 존재에 존재자를 귀속시키는 방식으로는 존재는 규정될 수 없다. 존재는 정의를 통해 상위개념으로부터 도출될 수도 없고, 하위개념에 의해 서술될 수도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존재가 더 이상 아무런 문제도 제기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을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여기서 귀결되는 것은 존재는 존재자와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뿐이다. (8쪽)

 

3. 존재는 자명한 개념이다. 모든 인식과 언표에서, 존재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태도에서, 존재(있다 ; 이다)가 사용되거니와, 그때 그 표현은 군말 없이 이해되고 있다. 하늘은 푸른빛이다 ; 나는 기뻐하고 있다 따위는 누구나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평균적 이해(가능성)는 이해하고 있지 못함을 보여줄 뿐이다. 그러한 이해는 존재자로서의 존재자에 대한 모든 태도와 존재에는 아프리오리하게 하나의 수수께끼가 놓여 있음을 보여 준다. 우리가 그 때마다 이미 존재이해를 가지고 살고 있건만 존재의 의미는 동시에 어둠 속에 묻혀 있다는 사실은,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반복해야 할 원칙적인 필요성을 보여 준다. (8쪽)

 

실존의 어원

실존철학(주의)이 오늘날 추구하는 것은 절망적인 세계관을 용납하고, 그 절망 자체를 터전으로 하여 생명에 대한 긍정의 윤리를 건설하려는 것이다. - s. 키에르케고르-

실제존재인 ‘실존(existenz, existence)’의 existenz는 중세철학 existentia(실재)에서 비롯된 단어로 어원은 라틴어 existere(앞으로 나타난다. existere는 ex:~로부터, sistere:존립하다의 합성어)에서 유래했다. 중세 스콜라철학에서 말하는 실존은 본질과 맞서는 의미로 쓰였다. 즉, 본질(sosein, essenz; essentia)에 반대되는 실제로 존재하는 한 사물의 실재(dasein)는 자신에 대한 근본에 의해 스스로 서게 된 존재자가 실제로 있는 것을 의미했다. 플라톤 이데아개념에 의하면, 본질은 이데아로 실존은 이데아가 실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존재를 사물이 아닌 인간중심으로 생각해 보면 인간자신의 의식이 지시하는 대로 자신의 본질을 나타내려고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대 실존철학은 여기서 출발한다.

 

정리

▲ 황인술 교수     ©독서신문
하이데거는 존재 그 자체를 직접 물으며, 존재라는 단어를 존재하는 ‘있음’ 혹은 존재자들의 본질(우주 속의 모든 것이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맨 처음의 조건 혹은 발생하는 근원의 기초가 될 만한 바탕)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한다. 바로 이 ‘존재’가 모든 존재자들 속에 넘나들며 쓰이는 관계로 깃들여 있으며, 따라서 우리 자신의 존재는 다른 어떤 것으로부터 나뉠 수 없다. 존재는 개개의 존재자와 같은 수준이나 위치에 있는 존재자가 아니라, 존재자들을 저마다의 존재자로 존재하게 하는 특별히 다른 시간과 공간이며, 본래적 실존에 나타나는 비극적·영웅적 색채는 사라졌으므로 종래의 실존 대신 ‘개존(開存:eksistenz)’이다. 존재자를 인간의 객체로서 기술적으로 처리하는 인간중심적인 ‘폐존(閉存:in-sistenz)’의 상황은 형이상학에, 즉 존재의 잊어버림에 그 내력이 있다. 현대의 삶에 필요한 한 가지 일은, 형이상학의 역사적 내력을 알아 그것을 이겨내고 역사를 지배하는 존재 그 자체가 일러주는 대로 잘 들어 좇아가면서 그것을 지키고 간직하는 일이다.

 

논제

개인의 실존과 네티즌의 익명성에 관한 관점들은 혼란을 가져온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익명성의 문제점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비판적 관점에서 논술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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