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서평...『유럽의 책마을을 가다』
디자인서평...『유럽의 책마을을 가다』
  • 김은섭
  • 승인 2008.07.01 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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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독서인들의 유토피아, 책마을을 찾아서
 
▲     © 독서신문

 내가 교과서와 참고서 이외의 책을 접하게 된 것은 대학을 들어가면서부터였다. 공부하기보다는 놀기를 더 좋아했던 터라 성적도 형편없거니와 책이라곤 근처에도 가질 않았다. 다행히 중학생이 되어 때늦은 공부를 해서 간신히 대학이란 곳을 들어갈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책도 읽지 않았던 내가 대학을 들어갔으니 부끄러울 만큼 한심하지만, 당시 대학입시제도 또한 문제점은 많았던 모양이다.

 내가 다닌 대학교 주변엔 서점이 세 군데가 있었는데, 변변치 않은 인테리어에 누런 박스에 책을 넣고 바닥에 깔고 박스 한쪽 면에는 빨간 매직으로 500원부터 차례대로 가격을 매겨놓은 학교 정문앞 oo서점과 또 다른 한 곳은 중고서점에서 100미터 정도 떨어진 a서점. 이곳은 사회과학을 주로 취급하는 서점이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한쪽엔 책들이 있고 반대쪽엔 테이블 두어 개가 있어 사회과학(엄밀히 이야기하면 운동권) 동아리 사람들이 열띤 토론을 하던 곳이다. 데모가 있다는 정보가 들어오면 전경과 형사들이 제일 먼저 급습하는 그곳이라 ‘오해받을까 두려워’ 몇 번 들어가지 못했지만 대학가의 서점다운 열정과 향기를 풍기던 곳으로 기억된다.

▲     © 독서신문


 마지막 한 군데가 단골집이던 oo글방. 우연히 알게 된 글방 사장님 동생과 친해져 주말만 되면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책꽂이 한 칸 한 칸을 접수할 수 있는 특권을 얻었다. 함께 문을 닫고 책방 앞 포장마차에서 소주와 꼼장어를 나누며 책과 인생, 그리고 사랑을 이야기하곤 했는데 정말 행복해 했던 기억이 든다.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옆 대학 여학생을 좋아해 한 쪽 눈은 책에, 한 쪽 눈은 그녀를 보곤 했는데, 부사장 형님은 그런 날 보시고 ‘도다리눈깔’이라고 흉을 보곤 했다. 그곳에서 많은 책을 읽었고, 많은 책을 샀다. 많은 이야기가 있었고, 많은 기억들이 있다. 내 젊음의 휴식처는 책방이었다.

▲     © 독서신문


 이젠 세 곳 모두 편의점과 소주집 그리고 일년마다 간판을 바꾸는 프렌차이즈 점포로 모두 바뀌어 버렸다. 지난해 5월 대동제에 초대되어 갔을 때 교내서점을 빼곤 서점이라곤 눈씻고 봐도 이젠 없다. 대학가에 더 이상 서점은 없다. 만약 아직 대학교 주변에 서점이 있다면 그 대학은 명문 대학이라고 불러줘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가 되어버린 것이다. ‘시대의 흐름’이 그렇다는데야 어쩔 수 없지만 텁텁한 입맛이 나는 건 감출 수가 없다.

 요즘은 모두가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듯,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에서 책을 구입한다. 출판사는 자구책을 찾아 파주로 신도시 들어가 둥지를 틀었고, 서울 청계천에 마지막 살아남은 중고책방 몇군데는 이젠 책을 팔기보다는 추억을 파는 곳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책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만 이런 사라져가는 현실에 대해 애석해 하는 사람 또한 많지 않다.
 하지만 지난 해 부터 일어난 ‘거실을 서재로’ 캠페인은 늦은 감이 없잖지만 반가운 일이다. 일본은 67% 아침독서 10분 운동으로 독서를 권장하고 있고, 영국은 일찍이 1991년부터 영유아들에게 책꾸러미를 선물하는 북스타트 운동이 시행되고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독서문화가 나아가야 할 바를 고민하는 이때에 그 대안을 제시해주는 책이 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걷고 싶은 동네,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에서 우리의 미래를 찾아보고자 했다.

▲     © 독서신문

 이 책은 미술평론가인 정진국씨가 작년부터 올해까지 유럽의 책마을을 탐방하고 신문에 기고한 글과 사진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만든 것으로 6개국 24곳의 책마을을 소개하고 있는데, 소개되는 곳 모두가 시골 깊숙이박혀 있어 그곳을 찾아 헤맨 듯 그의 노력이 곳곳에 뭍어있는 책이다.
 우리의 현실에서 책마을이란 단어 자체가 동화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로 멀게만 느껴졌던 나에게는 책 속에 숨어 있는 그림 같은 책마을들의 풍경을 사진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사실이었다.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건물 한 쪽에 조그마한 간판과 진열대, 혹은 상자 속에 책을 담아서 주인을 기다리는 서점들의 모습은 우리가 즐겨 찾는 현대화된 대형서점에서 느끼는 것과는 다른 무엇이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책을 써낸 저자’가 큰 몫을 차지하지만 “좋은 책을 만들어내는 출판업자와 관계자들의 숨은 공덕, 그리고 그들의 책을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고자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책을 쓰는 저자와 번역자, 그리고 출판 관계자들의 수고와 노력이 인정받고, 사회적으로 대우해줄 수 있는 나라가 문화강국이 될 수 있다고 또한 저자는 말한다.

 높은 집값을 피해 농촌의 작은 마을로 옮겨간 작가와 출판인들의 공동체가 이젠 정착민이 되어 자생적으로 책마을을 만들게 되고, 마을경제의 일익을 담당하게 된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정부 주도로 신도시 특화마을로 지정하는 우리의 그것과 차이를 실감하게 된다. 경제적 이익을 넘어 책과 함께 호흡하려 노력하는 그들의 순수한 마음이 모여 이룰 수 있는 독서인들의 유토피아가 아닐까?
 그에 비교해 저자와 번역가, 출판업과 관계자에 대한 낮은 평가와 대우, 시류를 틈탄 베스트셀러의 양산과 그들을 쫓는 독서가들이 만드는 출판문화, 그리고 여전히 3d업종으로 여겨지는 중고서점에 대한 인식 등의 우리 현실은 책마을의 존재여부를 떠나 출판업의 미래마저 불안하게 하고 있다.

▲     © 독서신문

 내 나이보다 오래된 책들에서 품어져 나오는 눅눅한 종이 냄새와 빛바랜 표지의 책들, 그리고 수십 년 동안 그것들의 주인인 것 같은 넉넉한 서점 주인들의 모습이 사진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마치 눈에 보이는 듯 각국 책마을의 섬세한 묘사는 미술평론가다운 디테일을 보여주고 외국도서에 대한 깊은 조예, 그리고 그들의 현실을 알 수 있게 하는 의미깊은 인터뷰는 유럽에서 공부하고 생활을 했던, 저자가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의 박식함과 책에 대한 사랑에 놀라움이 앞섰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그들의 이야기와 저자가 책마을을 탐방하며 겪은 에피소드들이 부족해 여행을 추적했다기 보다는 사무적으로 가이드를 받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이야기와 위트가 함께 했다면 더욱 공감하며 책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정말 책에 미친 사람들, 그리고 책을 진짜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 것 같고, 책이 생명을 다하는 그날까지 책들의 수호천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도 만나게 되었다. 책이 읽히지 않으면 또 다른 이름의 나무의 시체일 뿐. 나이를 많이 먹은 책들이 아직도 사람들의 손에서 사랑을 받는 곳, 책과 독서인들의 유토피아를 경험하게 된다.
 
 바로 이 한 권의 책에서… 
 

<김은섭/리치보이 북멘토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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