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폐비로 때론 황후로... 조선시대 왕비들의 삶이야기
|
고려시대만 해도 재산상속과 제사봉사에서도 남녀구별을 두지 않았으며 혼인한 후 사위가 오랜 기간 동안 처가에서 생활하는 남귀여가혼 등으로 인해 여성의 지위가 낮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조선건국 이후 유교적 여성관을 널리 전파하면서 여성차별은 심화됐다.
그 중에서도 가장 철저하게 유교적 여성관을 신봉해야 했던 계층은 왕비들이었다. 조선의 기반 확립을 위한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왕비들은 조선의 개국과 개국 초기 체제 확립에 많은 공을 세웠다. 그러나 국정에서는 배제되었다. 조선이 강력한 유교적 가부장 체제를 표방했기 때문이다.
태종 임금이 왕실에서 첫 번째 희생양으로 삼았던 이가 바로 왕비의 친정일족이었다. 왕비이지만 아무런 힘이 될 수 없었던, 그래서 가슴으로 울었던 원경왕후 민씨, 연산군의 생모로 사약을 받고 죽은 폐비 제헌왕후 윤씨, 자신의 가문을 지키기 위해 남편인 사도세자가 죽는 것을 방관한 것도 모자라 가문의 명예회복을 위해 『한중록』을 썼던 헌경왕후 홍씨 등.
그럼에도 뛰어난 정치력을 발휘한 왕비들도 있었다. 첫째 부인을 밀어내고 이성계와 결혼한 뒤 적극적으로 조선 개국의 일등공신 역할을 한 신덕왕후 강씨, 놀라운 정치적 술수로 20년간 국왕 이상의 권한을 휘두른 여성 독재자였던 문정왕후 윤씨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 책은 조선 개국에 참여했으나 왕비들이 국정에서 배제되어가는 과정과 유교적 이념이 체계화되어 가는 가운데 왕실 속에서의 삶, 조선 왕조가 안정되어 가면서 맺게 되는 정치세력과의 관계, 마지막으로 국정을 주도하게 된 왕비들이 어떤 전략과 전술을 통해서 이러한 기회를 얻게 되었는가를 살펴보고 있다.
유교적 여성관에 순종하지 않으면 즉각적으로 마녀사냥의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었으며, 생존하기 위해서 남성들보다 훨씬 더 기민하게 지지 세력을 만들어내고 권력을 휘두를 수밖에 없었던 조선의 왕비들. 이 책은 과거 오백년 동안 조선 정치세계에서 위태롭게 삶을 영위했던 왕비들의 이야기이다.
■ 조선왕비 오백년사
윤정란 지음 / 이가출판사 펴냄 / 404쪽 / 13,800원
<이재현 기자>
저작권자 © 독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