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시적 신선감과 영상미가 어우러진『바다칸타타』
서정시적 신선감과 영상미가 어우러진『바다칸타타』
  • 안재동
  • 승인 2008.06.27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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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계의 게릴라’ 박종규의 신간 수필집 ◀
▲ 박종규 소설가     © 독서신문
올해(2008년) 장애인의 달 4월에 대한적십자사와 함께 서울숲에서 ‘사랑과 감동의 바다 칸타타’란 행사를 연 소설가이자 수필가 박종규 씨. 전맹 장애우들을 위한 퍼포먼스인 이 자리에서 시각장애우들에게 자신의 에세이집 『바다칸타타』(폴리곤커뮤니케이션즈 刊)를 기증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이후 7개월 동안이나 문화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이 같은 행사를 벌여왔으며, 이번이 28회째다.

『바다칸타타』 표지는 출시 시점으로는 백지 형태로 아무런 글씨도 그림도 없는, 좀 ‘독특한’ 책이다. 작가가 독자에게 책을 전하면서 그때그때 표지에 그림을 직접 그려준다. 때문에 책마다 표지 그림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번 서울숲 행사에서 기증한 책들도 그러했다. 이 점, 정말 특이하지 않은가?

 
상조도와 하조도를 잇는 조도대교를 넘어오면서 헤라 여신의 빛나는 실루엣은 아쉽게 내 가슴을 벗어나 짙어진 햇살 속으로 흩어져 간다. 맞잡은 아내의 손끝이 풀려나갈 때, 본섬인 진도로 향하는 여객선에 올라 나는 조도의 하늘과 풀빛 바다가 연주했던 바다 칸타타로부터 비로소 멀어져 간다. 아스라이 수평선에는 또 다른 내가 남아 칸타타 선율 속에서 여전히 서성거리고 있다.

―<바다칸타타> 부분



박 작가는 수필가이기 이전에 소설가다. 그래서 그런지, 위 작품 <바다칸타타>는 수필이긴 하지만 소설 속에서나 묘사될 수 있는 조곤조곤한 멋이 있고, 또 다른 측면으로는 서정시적인 신선감과 영상미도 어우러져 있다. 이 작품 외의 다른 많은 작품들에서도 그런 점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 『바다칸타타』 표지     ©독서신문
이 책은 내용을 떠나 외형상의 두드러진 특징이 있는데,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앞서 밝힌 것처럼 책의 표지에 그림이 없다. 한 권 한 권 작가의 손에 의해 직접 그려져 독자에게 전달된다. 둘째, 책에 페이지가 매겨져 있지 않다. 따라서 통상적인 페이지 확인 방법(맨 마지막 장을 들추는)으론 전체 페이지를 확인할 수가 없는데, 이 점 또한 적지 않게 인상적이다. 셋째, 각 작품마다 키 프레이저(key phrase)가 메모되어 있다. 작품의 가장 중요한 대목을 각 작품 앞에 배치한 간지에 짤막하게 보여줌으로써, 작품의 요지가 쉬 파악될 수 있도록 배려한 흔적이 보인다. 이 역시 독자의 눈길을 끄는 요소가 아닐까 한다.

이 책은 저자가 2002년부터 각종 문예지 등에 발표해온 에세이들을 중심으로 모두 50편을 수록하고 있는데, 2007년 영호남 수필문학상 대상 작품인 <거리두기>를 비롯해 <참새와 함께 식사를!>, <나, 개들의 신이야>, <눈으로 소리 듣기>, <읏땅 으∼땅!>, <아프리카의 귀신들>, <달 뜨지 않는 동네>, <비무장지대의 천불> 등 사뭇 독특하고 신선한 주제에 내용적으로도 다분히 관심거리다.

양장본의 이 책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낭독 에세이 11편이 담긴 cd 1장이 부록으로 들어있다.

▲ 『바다칸타타』 cd     © 독서신문
“14살 때, 동그란 밥상 위에는 원고지가 수북이 쌓였고, 소년은 등잔불 밑에서 몇 개월 동안 펜과 씨름을 했다. 아버지는 공부나 하지 쓸데없는 짓거리 말라며 원고지 뭉치를 찢어버리기도 했다. 마옴이 찢겨나가는 아픔이었다. 소설이 뭔지도 모르고 써낸 원고지는 2천 장, 잉크와 펜이 지펴낸 어린 꿈의 흔적이었던 표지에는 펜글씨로 ‘1964년 10월 마침’이라고 쓰여 있다. 그러나 소년은 더 이상 글쓰기를 이어가지 못했다. 밥상 위에는 원고지보다 밥이 먼저 놓여야 했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에 부쳐진 박 작가의 어린 시절 회상이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썼던 원고지 2,000매가 50대에 들어서서 시작한 글쓰기에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그 육필 원고가 “아들의 아들, 그 아들의 아들들에게까지 전해져 진정한 가보가 되길 바란다”는 기대도 내비쳤다.

유한근 문학평론가(한성디지털대학교 교수)는 “박종규 작가의 수필은 다양하고 자유롭다. 잡다한 삶의 체험이 그대로 수필의 소재가 되고 그 기술 양식이나 발상과 전개가 자유롭다. 발상과 전개가 자유롭다는 것은 발칙함이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발칙한 상상력 전개는 기발한 창의성에서 나온다. 그래서 그의 수필은 여타의 수필가의 수필과는 변별성이 있다. 수필계의 게릴라 같은 존재라 해도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면서, 박 작가를 ‘수필계의 게릴라 같은 존재’로 평가하기도 한다.

 
거리에 나가면 많은 사람들이 각기 저마다의 거리를 가늠하면서 타인들과 어깨를 맞대어 걸어가고 있다. 내 주변의 사람들도 나름대로의 적절한 거리에서 나와 관계하고 있다. 적절한 거리란 타의에 의해 설정된 거리가 아니라, 스스로가 거리 두기를 인위적으로 설정하여 둔 거리이다. 무릇 너무나 가까운 것은 너무 먼 것 이상으로 본질을 외면 할 우려가 있으니…, (중략) 이른 여명으로 모든 것들이 덜 깨어나 물안개 속으로 적당히 감추어져 있었지만, 그 모습에서 새벽향기가 더욱 짙게 배어 나왔다. 모가 나는 모습을 가려주고 부드럽게 안아주는 자연의 포용력이 수심처럼 깊고 산세처럼 은근해 보였다. 안개가 걷히고 주변이 또렷하게 보일 때마다 물안개 핀 저수지의 모습이 훨씬 더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를 자연은 스스로 보여주고 있었다.

―<거리 두기> 부분

 

박종규 수필가는 1949년 전남 진도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미술대)와 한양대학원을 졸업하고 ≪순수문학≫지(소설부문)와 ≪에세이스트≫지를 통해 문단에 나왔다. 탐미문학상 본상을 수상하였고, ≪서울문학≫지에 장편 <파란비속으로>를 연재중이다. 군산대학교 출강과 에세이스트문학회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문인협회와 한국소설가협회 회원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장편소설 『주앙마잘』, 『파란비 1, 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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