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춘천옥 (16회)
소설 춘천옥 (16회)
  • 김용만
  • 승인 2008.06.13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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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식업에서 가장 골치 아픈 것 중의 하나가 직원 모집이다. 다른 직종과 달리 아침부터 밤까지 음식을 나르고, 손님이 먹고 난 상을 치고 닦는 구질한 직종이어서 요즘 말로 3d 업종인 셈이다. 주방 담당은 열악한 환경에서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해야 하고, 바깥 서빙은 그 일 대로 고단하다. 직원들이 오래 붙어 있지 않는 것은 일 말고도 밤까지 계속되는 작업 시간 때문이다. 가정이 있는 주부들은 가족과 저녁을 함께 보내지 못해 괴롭고, 총각 처녀들은 퇴근시간이 밤중이어서 일찍 퇴근하는 회사 친구들처럼 자유롭게 여흥을 즐길 수 없어 오래 버티지 못한다. 어쩌다 마음을 독하게 먹고 버티는 경우도 있지만 친구가 꼬시면 결국 넘어갈 수밖에 없다.

“너 춘천옥 종이냐?”

그 한마디에 결심이 무너지고 만다. 쓸만한 젊은이가 들어오면 나는 그를 붙들고 회유하는 게 일이다. 고생은 되지만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침이 마르도록 설득해야 한다.

“기술 배우고, 월급 모으고, 장삿속을 익히면 어떤 친구보다 먼저 성공할 수 있는 게 식당일이다. 더구나 춘천옥은 한국에서 알아주는 업소이니, 이런 데서 제대로 일 배우면 성공은 보장된 거라구. 알겠니?”

매일 반복하는 말이다. 사실이다. 내 말 대로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 많은 자본을 투자하고 몫이 좋다고 해서 성공하는 게 아니다. 포장마차처럼 시작해도 솜씨가 좋고 서비스 감각을 익히면 성공할 있는 게 요식업이다.

“너, 어저께 보따리 들고 온 아줌마 봤지? 병원 원장 사모님이라구. 그런 여자가 종업원으로 써달라고 찾아왔잖니?”

어제 오후에 살결이 맑고, 귀티가 흐르는 40대 여인이 종업원으로 일하겠다고 찾아왔다. 고생티를 내려고 일부러 보따리를 들고 화장도 생략한 채 나타났지만, 나는 그런 경우를 여러 번 겪은 터라 웃는 얼굴로 대해주었다.

“경험 있으세요?”

“네.”

“고생한 분 같잖은데요?”

“남편 사업이 갑자기 무너지는 바람에....”

“고생한 손이 이렇게 고울 순 없죠.”

“원래 피부가 고와서....”

“아무리 피부가 고와도 일한 손은 물때가 끼고 거칠게 마련인데요?”

“아녜요. 식당일 많이 해봤어요.”

“반지는 어쨌어요?”

“네?”

“다이어 반지를 빼고 오셨군요. 무명지에 링 흔적이 역력하잖아요? 일을 배우겠다고, 솔직히 말씀하시잖구.”

내가 농조로 다그치자 여인은 얼굴을 붉히며 솔직히 고백한다. 산부인과 의원 원장 부인이었다. 요식업으로 성공하려고 위장취업하려고 찾아온 것이다. 그런 여자들은 한달 정도 장사 경험과 음식 노하우를 익히면 사라지게 마련이었다.

“죄송해요. 식당업을 해보고 싶어서....”

“큰 의원 사모님이 뭐가 아쉬워서, 고생을 사서하시렵니까?”

“돈 싫어하는 사람 어디 있겠어요.”

“돈 즉 식당이라. 식당만 차리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나는 커피를 대접하며 일부러 이야기를 이끌었다.

“호(이름)만 나면 큰돈 벌 수 있잖아요.”

“물론이죠. 하지만 삶의 질도 무시할 순 없잖아요?”

“품위를 말씀하시나 본데....”

“아직도 한국 사회는 밥장사를 하시하잖아요.”

“한국도 곧 요식업을 자랑으로 여길 날이 올 거에요. 유럽에서는 요식업이 청소년의 꿈이지요. 식당 종업원을 최고의 신부감으로 치거든요.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치고 과음 않는 사람 있는 줄 아세요?”

이해되는 말이었다. 내 친구가 떠올랐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그도 소주를 맥주컵에 따라 마신다. 나는 그녀를 정중히 현관 밖까지 배웅해주었다.

▲ 그림 송대현     ©독서신문


여느 때처럼 밤 10시 경에야 장사가 끝났다. 주방 냉장고를 옆자리로 옮기고 싶어 퇴근하는 주방장에게 함께 들어달라고 했다. 그런데 주방장의 얼굴이 금방 굳어진다.

“못해유!

칼날처럼 섬뜩한 목소리였다.

“5분도 안 걸리는데, 싫다구?”

“수당을 주실 거유?”

“나 혼자 들 수 없어 잠깐 도와달라는 건데?”

“그것도 엄연히 일이잖유?”

“자네가 그렇게 야박한 사람인가?”

“야박하다구요? 그건 업무하구 별갠데 당연히 대가를 주셔야쥬.”

천길 만길 벼랑 아래로 추락하는 낭패감에 몸이 떨린다. 인간에 대한 신임이 무너지는 그 혼돈이 눈을 멀게 한다. 사방이 절벽이다.

“오늘 기분 상한 일 있나?”

나는 화를 눙치며 조용히 물어보았다.

“아무 일 읎어유.”

“내가 자네한테 잘못한 게 있는가?”

“읎어유.”

“아무래도 내가 자네한테 실수한 게 있나보군.”

“읎당게 왜 자꾸 그러시쥬? 저한테 화내시지 않구유?”

“화야 나지. 하지만 화로 풀기는 너무 어려운 싸움이잖나.”

“그럼 저를 때려주세유.”

“그럴 순 없지.”

“참 미치겠네....”

주방장이 고개를 숙였다. 어딘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그의 어깨를 곱게 다독거려주었다. 그러자 주방장은 또 “미치겠네.”라고 중얼거리며 머리를 긁적거린다.

“자네, 나와 헤어지고 싶어서 그러지?”

“....”

“말해 봐. 그래서 일부러 매정하게 구는 거지?”

“왜 제가 여길 떠날 거라구 생각하세유?”

“그게 아니면?”

“몰라 그러세유?”

“뭘?”

“참 미치겠네. 제가 꼭 말을 해야유?”

그제야 내 입에서 저절로 웃음이 터져나온다.

“이 사람아, 솔직히 말할 게지 왜 그런 식으로 약을 올려? 자네가 이런 식으로 바보짓을 하니까 미스 진이 마음을 안 주는 거라구.”

“....”

“낸들 어쩌겠나. 미스 정을 몽둥이로 팰까? 자네와 짝을 지으라구? 못난 사내 같으니. 암튼 내가 자네를 교육시킬 테니 철저히 배우도록.”

“무슨 교육유?”

“무슨 교육은 무슨 교육이야, 연애교육이지.”

“언제부터유?”

“지금 당장.”

드디어 주방장의 얼굴에 화기가 돋는다.

“어떻게유?”

“어떤 식으로 교육을 시키든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야. 자넨 열심히 배우기만 하면 돼.”

“....”

“자넨 자네 성격이 좋다고 생각해?”

“아뉴.”

“알면서 왜 성격을 못 고치지?”

“사람이 달라지는 게 쉽잖찮유?”

“어려울 것 없어. 내 말대로 하면 돼. 알지?”

“....”

“첫째.”

“....”

“대답해!”

“예.”

“첫째, 항상 얼굴을 환하게 열고 지내도록.”

“예.”

“둘째, 어떤 일이 있어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도록.”

“예.”

“세째, 아무리 기분이 잡쳐도 얼굴에 미소를 매달도록.”

“예. 그런디, 첫째 둘째 셋째가 모두 한 뜻이잖유?”

“뭔 소리야?”

“얼굴을 훤히 열라는 거나, 얼굴을 찡그리지 말라는 거나, 얼굴에 미소를 매달라는 거나 죄 한통속인디유.”

 
▲ 김용만(소설가,한성디지털대 문창과교수)     ©독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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