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단의 원로 방산(芳山) 박제천
한국 시단의 원로 방산(芳山) 박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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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11.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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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학양성, 계속되는 박제천의 도전

▲ 한국시단의 원로 박제천

서울에서 태어나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현대문학상, 한국시협상, 월탄문학상, 윤동주문학상, 공초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자료관장, 경기대 대우교수를 역임했고, 2005년 현재 문학아카데미 대표, 계간 「문학과창작」 발행인 겸 편집인을 맡고 있으며 성균관대, 추계예대, 동국대(문창과 겸임교수)에 출강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 <시를 어떻게 고칠 것인가>, <마음의 샘> 등이 있고, 시집으로 <장자시>, <너의 이름 나의 시>, <나무 사리>, 등이 있다. 


■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의 의미

지난 65년 시단에 첫발을 내딛은 방산(芳山) 박제천 시인. 그의 시업 40년을 기념하는 『박재천시전집』이 최근 출간됐다. 그동안 무려 1천여 편이 넘는 시를 발표한 방산의 작품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수식어가 따른다. ‘노장철학의 문학적 수용과 형상화’(김용범 시인), ‘동양정신의 현대적 탐구’(최동호 고대교수), ‘동양적 초현실주의’(진순애 평론가) 등등.
특히 동국대 고영섭 교수(시인)는 방산의 시적 역정을 ‘곡신(谷神)’과 ‘사리(舍利)’의 변주과정이라 보고 있다. 즉 노장으로부터 무속과 주역과 불교와 성리학 등의 해후를 통해 독자적인 한 세계를 구축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 시단에 방산이 남긴 족적은 크다.
이와 관련 방산은 그의 시가 추구하는 것은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의 양식과 그 의미, 즉 한국민이 가지고 있는 기본 생각의 표현이라고 설명한다. 서양풍에 젖어서 우리가 잃어버린 우리의 것,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그가 추구하는 시의 양식이라는 것이다.
 

■ 활발한 창작활동과 후학양성

동숭동 한 연립에 조그맣게 둥지를 튼 그의 사무실은 온갖 책으로 둘러싸여 있어 들어가기에도 벅차다. 사무실이라고 하기보다는 창고의 느낌이 강하게 풍겨온다. 그만큼 그는 주변 환경에 상관없이 오로지 시작활동에만 열중했다.
방산은 말한다. “처음부터 돈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도 시를 시작했다. 다만 내가 추구하는 절대가치, 내 스스로 시가 좋아서 한 일에 무슨 이유가 있겠나. 오히려 시의 길이 황금가치가 보장된 길이라면 애초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라고.
하지만 시작활동과 함께 그가 딱하나 욕심내는 일이 있다. 바로 후학 양성이다. 현재 국내 대학들은 시를 학문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막상 창작열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가 시도한 일이 문학아카데미를 개설하는 일이었다.
지난 88년에 문을 연 문학아카데미를 거쳐 간 시인들은 총 150여명, 이중 박제천 사숙이 배출한 109인의 등단작을 한곳에 모아 이번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같이 만들었다. 특히 이들 시인들의 일간지 및 문예지 당선작 들은 지금도 패기가 넘칠 만큼 작품의 성취도며 발상이 신선한 충격을 불러일으키고 시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고 뿌듯해한다.

 ■ 지금도 계속되는 박제천의 도전

방산은 이번 『박제천 시전집』발간에 대해 “‘젊은 날의 나 자신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불꽃을 만들어왔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그 어리석음에 바치고 싶다’고 첫 시집 『장자시』에 써두었던 헌사가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간 것 같다”면서 “이번에 다 정리해 놓으니까 개운한 마음이며 새 출발의 계기가 된 듯하다”고 소감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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