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도 하나만 터줬어도 다 살았을 거예요.”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로 세상을 떠난 김산하씨의 어머니, 신지현씨는 이렇게 말한다. 길 하나라도 더 터줬다면. 실내도 아닌 길 위에서 사람들이 압사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모두 살 수 있었을 거라고. 말하자면, 그날의 참사는 우연히,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사고’ 따위가 아니었다.
애초에, 연례행사처럼 돌아오는 축제였다. 예년만큼의 경찰 인력만 배치됐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 하지만 참사는 발생했고, 여덟 번의 계절을 돌아 2주기가 됐다. 사건 초기 156명으로 집계된 사망자는 159명이 되었고, 집과 직장을 오가던 유가족들은 한 여름에 아스팔트 위를 온몸으로 걷는 투쟁가가 됐다. 이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는 ‘간명’했다. 사랑하는 이들이 평범한 거리에서 죽은 이유를 밝히기 위해. 누구도 길을 걷다가, 친구를 만나러 가다가 죽지 않는 사회를 위해서.
이태원 참사 후 2년,
골목을 나온 사랑과 투쟁의 말
참사 이후 2년을 담은 유가족 구술집인 책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가 출간됐다. 이 책은 그들이 사랑하는 이를 기억하는 책인 동시에, 그날 이후 좁은 골목을 돌아 나와 무엇이 문제인지 사회에 질문하는 투쟁의 책이다. 너무 평범해서 아름다운 기억부터, 참사 당일의 기억, 그리고 구급대원의 바디캠을 전달받지 못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현장 상황 등 미시적이고 거시적인 이야기가 한 몸처럼 펼쳐진다. 나아가 고립돼 있던 유가족이 연대해 분향소를 설치하고, 특별법 시행을 위해 투쟁하는 2년의 과정은, 독자로 하여금 고통스럽지만 페이지를 절실하게 넘기게 하는 동력이 된다. 뿐만 아니라, 피해자 중 26명이 외국인인 ‘국제적 참사’였던 이 재난에서 소외된 외국인 유가족의 이야기도 비춘다. 400페이지 남짓의 분량이지만, 그 어떤 책 보다 더 많은 감정과 질문들이 웅성거린다.
놀러 가서 죽으면 왜 안돼요?
'죽음' 만큼 폭력적인 말과 싸우다
2022년을 살았다면 그날의 참상을 언론을 통해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책을 뒤로 넘길수록 자극적인 보도 뒤, 제대로 알지 못했던(알려고 애쓰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폭포처럼 쏟아져나온다. 많은 재난과 참사들이 그렇듯 이태원 참사와 이를 둘러싼 대응 모두 폭력적이었다. 하지만 참사 이후 유가족들을 특별히 괴롭힌 것이 있었다. 몸을 짓누르는 폭력도 아닌, ‘말’이라는 폭력이다.
투쟁하는 유가족을 향해 “세월호 가족들만큼 열심히 해보라”라는 슬픔의 경중마저 비교하는 한국 정치인과 언론의 말. 참사의 특수성으로 인해 “놀러가서 죽었다”라는 일부 여론들이었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말한다. 축제가 잘못이 아니라고, 누구도 축제에서 죽으면 안 된다고. “놀러 갔으면 길에서 그렇게 죽어도 되는 건가요? 우리 모두 일상에서 놀러 가잖아요. 꽃놀이도 각 유원지에도 놀러 가잖아요. 놀러 가서 죽었다는 건 상황을 왜곡하는 말일 뿐이에요.” <97쪽>
이태원 참사의 마지막 피해자로, 현장에서 살아남았지만 그해 12월 세상을 떠난 이재현 군(당시 16세)을 괴롭힌 것 중 하나도 ‘말’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이렇게 회고한다. “재현이가 감정이 격해졌을 때 서너 번 정도 울면서 말한 적이 있어요. 온라인상에서 본 댓글 이야기를요. 사람들이 왜 저렇게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무슨 연예인을 보러 갔네, 마약을 했네, 이런 글들을 대체 왜 쓰는 거냐고, 너무 화가 나고, 죽고 싶다고 말하면서 엄청나게 울었죠. 그때는 그게 이 아이한테 얼마만큼의 아픔이었는지 알지 못했어요.” <170쪽> 라고. 많은 사람들이 이태원 참사를 하루 이틀의 재난으로 알고 있지만, 유가족들은 재난 이후 계속해 재난을 살고 싸웠다.
'사고'는 문제를 은폐-반복 시켜...
너를 만나러 가다 죽지 않는 사회를 위해
책장을 넘길 수록 독자의 머리 위로 질문이 피어오른다. 그러니까, 대체 왜 이 모든 걸 피해자와 유가족이 짊어져야 하느냐고. 그리고, 세상에는 외면당한 피해자들이 왜 이렇게 많은 것이냐고. 실제로 책에는 5.18과 세월호 유가족과 만나는 이야기가 스쳐간다. 그리고 유가족의 거리 위 경험담이 풀리면서 자연스럽게 전세사기 피해자들, 그리고 화성 공장 화재 참사 피해자들의 ‘비어있는 영정’ 등 재난 사회의 수많은 풍경이 포개진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제시 싱어는 산업재해부터 ‘교통사고’까지 방대한 데이터를 추적한 책 『사고는 없다』를 통해 ‘사고’라는 단어가 구조적인 문제들을 은폐해 그것이 계속되게 만든다고 지적한 바 있다. 주목되는 점은 그가 이 방대한 작업에 몰입한 계기가 ‘사고’로 소중한 사람을 잃은 후였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마음이 세상을 바꾸는 책을 만든 셈이다.
하지만 이 작가는 자신의 직업을 통해 투쟁했다. 그러나 참사 유가족들은 그날 이후 직업이 아닌 삶을 걸고 거리로 나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누구도 쉬이 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이유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무엇보다 앞으로의 거리에서 같은 죽음이 반복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기 때문에. 슬픈 축제의 날이 다시 돌아왔다. '사고'로 위장한 재난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니까 그 누구도 거리를 걷다가, 축제를 즐기다가, 그 어떤 일상의 행위를 하다 길 위에서 죽지 않는 당연한 사회를 위해서는. 싸우는 일은 유가족만이 것이 아니어야 한다. 그들의 투쟁이 바로 우리가 밟고 있는 이 거리를 위해서이니까.
[독서신문 유청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