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생, 영국 맨체스터에서 나고 자랐다. 그 말은, 학창 시절 세기의 라이벌인 오아시스와 블러, 그리고 무수한 영국 밴드의 음악과 함께 성장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기자 출신 작가, 다니엘 튜더의 꿈은 본래 록스타였다. 그 꿈은 (아직은) 이루지 못했지만, ‘거침없이 자신을 표현해왔다’는 점에서 록의 정신만큼은 실천 중인 것 같다. 2002년 한일월드컵으로 한국과 사랑에 빠진 그는, 이후 다시 돌아와 아예 자리를 잡았다. 이코노미스트 한국특파원 재직시절에는 "한국 맥주 맛없다"는 기사를 쓰더니, 한국에 맥주 집을 차렸다. 청와대 해외언론 비서관 자문, 사업가, 프리랜서... 실행력도 남다르다.
그뿐인가. 언젠가 소설을 쓰고 싶었다는 그는 최근 꿈을 이뤘다. 무려 616페이지의, ‘대한제국 시기’를 조명한 팩션 『마지막 왕국』 얘기다. 첫 장부터 빠르게 전개됐고, 묘사는 사실감 넘쳤다. 그 시절을 살던 왕족과 민중의 내면 묘사는 잠깐 멈춰 밑줄을 치게 했다. 5년간 취재하고 집필했다고 하지만, 소설까지 잘 쓰면 정말 '사기 캐릭터' 아닌가. 그러나 직접 대화를 나누고 알았다. '사기'가 아니라 ‘노동’이었다. 그가 매끄럽게 짜낸 '마지막 왕국'이란 태피스트리의 뒷면에는 수많은 수정의 자국, 육아의 시간이 스며있었다. 다니엘 튜더의 창작과 앞으로의 꿈에 관한 이야기.
(*1부 인터뷰에 이어 이어집니다)
Q. 사람들이 왜 의친왕과 그 시절 이야기를 읽어야 할까요?
사실, 제가 전하고 싶은 건… '역사 소설'로서가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의 스토리'예요. 한 개인의 성장. 힘든 시기에도 어떻게 커다란 문제들을 극복하려고 노력했는지, 실패한 영웅의 여정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잊힌 독립운동가 김란사와 의친왕을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 그걸 바랍니다.
“기자가 쓴 글 같아!”
친구 지적에 고치고 또 고친 소설
Q. 기자간담회에서는 한국 역사를 교육받고 자란 사람이 아니라서 취재를 많이하셨다고 하셨죠. ‘사소한 것도 천개가 모이면 세상을 이룬다’라는 생각으로 준비하셨다는 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무려 5년 가까이 자료조사를 하셨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소설을 쓴 건 얼마나 걸리셨나요.
5년간 조사와 글쓰기를 병행한 거예요. 초반 1~2년은 연구만 하고, 3년째부터 썼을 겁니다. 소설 자체는 장편, 단편 합쳐 이번이 처음이 맞지만... 이 한 권을 여러 번 고쳐 쓰면서 그게 연습이 된 것 같아요. 참, 워너브라더스에서 일하던 재미교포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고맙게도 먼저 읽고 얘기를 많이 나눠줬어요. 첫 드래프트를 읽더니 '아-! 좀 이모션이 없다. 기자가 쓴 글 같아!' 이러더라고요. (좌중 웃음) 아쉽게도 그 친구는 지금은 회사를 나와 다른 일을 하고 있어요. 계속 있었으면 (연결도 해주고) 좋았을 텐데…. (웃음)
Q. 소설이 드라마처럼 잘 읽히던 이유가 있었네요. 모은 자료의 양이 어마어마했을 텐데, 소설로 쓸 것과 버릴 것을 어떻게 구분했나요.
기준이나 룰이 있다기보다는, 다 시행착오 거치면서 쓴 거예요. 시작하고, 아닌 것 같으면 또 새로 쓰고... (좌중 탄식) 포커스나 시점을 어떻게 둘지 고민이 많았어요. 처음엔 (주인공인) 의친왕 1인칭 시점으로 썼다가 잘 안됐고, 3인칭으로 바꿔 쓰고 이렇게요. 소설 1부는 다섯 번 다시 고쳐 쓴 거거든요. 팩트가 있으니 한 사람에 100% 초점을 주느냐, 아니면 복잡한 역사를 넓게 그려내느냐, 이런 고민도 따라왔고요. 완성된 책이 600쪽이 넘어요. 책이 점점 두꺼워지니 걱정됐죠.
Q. 의친왕 이야기를 논픽션이 아닌 소설로 그려낸 이유와도 연결될까요?
네, 논픽션으로 썼다면 3천 페이지를 넘기지 않았을까요? 또 픽션이 될 수밖에 없던 건 사각지대가 많아서예요. 의친왕이 궁 밖에 있던 열 네살까지는 어떻게 살았는지 정보가 거의 없어요. 딸인 이해경 여사도 아버님의 어린 시절을 모른다고 하셔요. 그래서 (상상을 넣어) 소설로 쓴 거죠.
Q. 세상에 소설이 필요하다는 증거이기도 하죠! 또 하나 흥미로운 게, ‘마지막 왕국’에는 인물들이 책을 언급하는 장면이 많아요. 이 부분도 작가가 쓴 설정일까요?
사실과 섞여 있어요. 수덕이 이강(의친왕)에게 보내는 편지에 셰익스피어 ‘리처드 2세’를 인용하잖아요. 제가 학교에서 배운 희곡인데, 리처드 2세와 의친왕이 닮은 것 같아 일부러 심어놓은 거예요. 쾌락을 좇다 뒤늦게 성장하고 반성하는 그런 부분이요.
그리고 (이강이 유학 간) 미국 대학교 총장이 프랑스 리얼리즘 소설을 읽지 말라고 하잖아요? ‘이 쓰레기 같은 프렌치 리얼리스트들 책을 읽지 말라!’ ‘똑바로 서야 하는 미국의 청년들은 이런 책 대신 도덕적인 이 책을 읽어라!’ 이렇게요, 하하. 그건 실제 대학교 신문 기사를 정리한 거예요. 영문학 교수가 쓴 칼럼인 것 같은데, 전 처음에 그 작가가 누군지도 몰랐어요. 찾아보니 당대 미국에서 유명한 작가더라고요. (웃음)
Q. 작가님은 애서가로 유명하시잖아요. 영향받은 소설가가 있나요?
그레이엄 그린 아세요? 한국에서는 인기 진짜 없는 것 같아요. 20세기 영국에서 유명한 소설가예요. 그런데 좀 특이해요. '문학적인'(튜더는 손가락을 들어 따옴표 표시를 했다) 묘사가 있는데, 줄거리 자체는 '장르 소설' 같다고 할까? 스파이럴 플롯처럼 복잡하면서도 재미있어요. 그런 소설을 쓰는 게 제 목표예요.
Q. 재미있게 읽히면서도 깊은 묘사가 있는 작품이요?
네, '장르 소설'과 ‘문학’을 구분하는 표현 자체를 좋아하지는 않아요. 제가 한국은 잘 모르지만, 영국이나 미국 서점에 가면 ‘문학 소설’, ‘장르 소설’ 이렇게 분류가 나뉘는 데가 많아요. 그런데 (그는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그런 구분을 보면 '이게 뭘 위한 건가?' 싶은 거예요. 더 심한 건, '여자 소설, 로맨스 소설' 이런 ‘장르’까지 포장해서 만든다는 거예요. '여자'는 로맨스를 좋아해, '남자'는 추리 소설을 좋아해. 이런 뉘앙스로요. 그런데, 우리 엄마도 추리 소설 좋아하는데… (좌중 웃음) 또 '문학'은 좋은 대학교 나온 '보링'한 사람들이 좋아하는 어떤 것이다…. 그런 구분은 대체 누구를 위한 건가요? 고전인 찰스 디킨스 소설 보면 당연히 문학적이지만 줄거리도 멋있고 재미있잖아요. 끝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썼죠. 그런데 언제부터 영미권 문학에 이런 이상한 구분이 생겼는지 의문이에요. 그레이엄 그린은 그걸 한번에 하는 거죠. 저도 그걸 원해요.
'인터뷰 없이 쓰면 자만심 아닐까'
기자 출신 작가-아빠의 살고 쓰는 방법
다니엘 튜더는 여러모로 '자유로운 방랑자' 같았다. 그의 다양한 이력과 거쳐온 도시들을 보면. 하지만 지난해, 작가이기도 한 임현주 아나운서와 결혼했고 아빠도 됐다. 한때 ‘외로움은 나의 BGM’이라던 그의 삶의 배경음악은 이제 가족들의 목소리로 가득 찼고, 육아를 겸하느라 하루가 짧다. 그렇다면, 앞으로 이 사람의 글쓰기는 어떻게 변화할까.
Q. 육아가 글쓰기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아내가 제왕절개를 했어요. 그때 아내가 경험한 아픔, 수술, 회복 기간… 이 시간에 영향 받아 ‘마지막 왕국’ 프롤로그를 쓸 수 있었어요. 또, 육아를 하면 인내심이 생기거든요. 소설에 도움이 된다고 느껴요. 제 영국인 소설가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도 ‘아빠가 되고 나서 훨씬 더 좋은 작가가 됐다’라고 하더라고요. 아마 인내심이 생겨서가 아닐까요? 물론, 그 친구도 애들이 정말 어릴 땐 힘들어서 한 문장도 못 썼다고 하지만요.
Q. 다음 책은 육아의 경험을 녹인 한국의 저출생 현상에 관한 논픽션이라고 들었습니다.
지금 여러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중이에요. 아, 전 뭘 하든 항상 인터뷰하고 있는 것 같아요. 논픽션이든, 소설이든. 모든 걸 100% 상상으로 쓰면 좀 뭐랄까. 지나친 자신감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드니까요.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예요.
Q. 마지막 질문입니다. 오늘 계획은 무엇인가요.
육, 육아입니다. 저녁에는 이유식을 만들어야 하니까.
[독서신문 유청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