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최고 미남’.
한때, 아이돌 그룹 EXO 멤버의 닮은꼴(선후 관계는 반대이지만)로 화제가 된 고종의 손자 이우를 아는가?
어린 시절 일본으로 끌려간 뒤 1945년 8월, 히로시마 원폭으로 피폭돼 사망했다. 이우는 그 ‘잘생김’으로라도 후에 알려졌으나, 사실 일제강점기와 대한제국 시기의 왕실은 한국인에게 매력적인 소재는 아니다. 몰락사이기 때문이다. 또한 평범한 한국인의 감정을 대변하는 건, 왕족보다는 그 시절에도 독립을 위해 노력한 민중의 서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시기 왕족 중에도 독립운동에 힘쓴 이가 있었으니, 바로 고종의 아들이자, 이우의 아버지인 의친왕 이강이다. 생전 12남 9녀를 낳은 그는 복잡한 연애사로 ‘파락호’로 수사돼왔지만, 독립운동 참여 일화는 조명되지 못했다. 한국 사회를 낯선 시선으로 바라봤던 기자 출신 작가(『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등) 다니엘 튜더는, 최근 팩션 소설 『마지막 왕국』으로 한국이 잊은 의친왕에 빛을 비췄다.
소설을 통해 튜더는 의친왕을 가둔 ‘파락호’라는 낙인을 조심스럽게 걷어낸다. 소설에서 이강은 취약한 성정과 환경 속에서도 어떻게든 성장하며 각성해 가는 한 명의 인간이 된다. 그와 함께 독자의 시야에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다른 얼굴들도 있다. 실존인물인 여성 독립운동가 김란사를 비롯해 역사가 누락한 또다른 이름들이다. 다니엘 튜더는 대체 왜 이들을 소환한 걸까. 궁금증을 안고 그를 만났다. 오래전, 의친왕이 거닐었을 서울 덕수궁 근방의 한 카페에서였다.
다니엘 튜더, '아웃사이더 의친왕'을 복원하다
Q. 소설까지 쓰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것도 대한제국 배경의 소설이잖아요, 처음 소설을 준비할 때 주변에서 놀라지는 않던가요.
제 주변 사람들은 저를 잘 알잖아요, '쟤는 좀 또라이지…' 이렇게 생각하는 게 좀 있어요. (좌중 웃음) 쟨 항상 뜻밖의, 새로운 일들을 하는 애. 이런 느낌으로. 그래서 별로 안 놀라더라고요. 어렸을 때부터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거든요. 적어도 인생에 한번쯤은 음악을 하거나, 소설을 쓰겠다는 목표. 주변 사람들은 이미 그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Q. 한국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의친왕’(이강)을 소설화한 이유가 있다면요.
역사소설을 써서 뭘 보여줘야지, 이런 게 아니었어요. 집착이 있었다면 ‘의친왕’에 대한 집착이 있었죠. 매력적이었어요. 설명하면, 2012년 취재차 황실문화재단 이석 이사장님(의친왕의 11번째 아들)의 전주댁으로 가 인터뷰를 했어요. 처음에는 그분의 인생을 소설화하고 싶었어요. 월남전에 참전하고, 가수도 하고 다사다난한 삶을 사셨거든요.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이제 소설을 써보자' 하고, 그분의 부모님에 대해 검색해봤어요. 한 사람을 그리려면 엄마와 아빠를 알아야하니까. 그런데, 와, 부모님이 더 장난 아닌 거예요! 특히 의친왕의 인생과 역사가 연결되는 부분은 스펙터클했고요. 처음 그분을 소설로 쓰겠다고 했을 때, 후손분들도 반기는 분위기였어요. 아무래도 ‘파락호’라는 이미지가 있었으니, 잘 조명되길 바라는 마음 아니었을까요?
Q. 궁 밖에서 자란 ‘아웃사이더 왕자’ 의친왕의 성장이 몰입감 있게 다가왔어요. 그런데, 개인적으로 여성 인물들에게 반하고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기혼 여성 최초로 조선에서 미국으로 유학 간 김란사(낸시 하)뿐만 아니라, 원하지 않았는데 의친왕비가 된 김수덕, 기녀인 해랑 등. 각자 위치는 다르지만, 그 시절 여성들의 한이 느껴졌다고 할까요.
아, 그렇게 읽어줬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남자 작가로서 제가 항상 걱정하는 부분이 그런 부분(여성의 상황이나 마음을 묘사하는 부분)이었어요. 그 시절이 과도기였잖아요. 김란사는 이전 시대 여성과는 다른 신여성 상이고, 김수덕은 조선시대 귀족 여성을 대표하는 동시에 그 시절의 도덕과 가치를 상징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걸 명심하면서 썼습니다. 이를테면 김수덕을 묘사할 때 귀족 여성의 도덕, 가치관, 사고방식을 고민한 거죠. 특히 김수덕은 정말 외롭고 힘들었을 거예요. 주체적인 여성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몸에 밴 도덕적 기준이 있으니 (사회에) 따라가고 희생할 수밖에 없는 게 있고. 그러면서 스스로 내부에서 충돌하는 것들도 많았을 것 같아요. 인물들 중 가장 비극적인 케이스가 아닐까 합니다.
Q. 김수덕의 상황은 비극적이지만 수동적인 인물로 보이지 않았어요. 오히려 내면의 강인함도 느껴졌고요.
김수덕의 그런 면모가 와닿았다면, 의친왕의 따님인 이해경 여사님 덕분이 아닐까 싶어요. 이 여사님은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시기도 한 분이에요. 소설을 준비하면서 인터뷰를 할 수 있었는데, 김수덕이 생모는 아니지만 그분을 엄마로 생각한다고 하시더군요. (김수덕이) 좋은 분이셨지만 시대와 상황의 희생양이 됐다고 생각하셨어요. 그분의 기억이 소설에 큰 도움이 된 거죠.
해랑은 한숨을 내쉬었다. (...) 이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나야말로 가족이라고 할 만한 사람 하나 없고 그들과 똑같이 빼앗긴 나라에서 살고 있다. 이런 나도 목숨을 걸고 돕고 있는데! 나는 그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불평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나 외국까지 다녀온 사람들이 이렇게 절망에 빠지는 걸까? <마지막 왕국, 517쪽>
Q. 기녀인 해랑은 예술가를 대표하는 캐릭터이지만, 평범한 민중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고도 생각돼요. 후에 ‘이우’의 어머니가 되는데, 그 설정이나 성격은 작가적 상상인가요?
네, 해랑은 합성 캐릭터예요. 이난향 아시나요? 당대를 대표하는 기생이었죠. 그분에 대한 자료나, 기생을 주제로 한 책을 읽고 그 요소를 참고해서 새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아, 그리고 이광수의 소설 ‘무정’도 참고했습니다. 1910년대 시대적 배경을 그리는 데 도움을 받았어요!
Q. 기자간담회 때 사소한 것까지 취재했다고 한 말씀이 떠오릅니다. 참, 작가님은 실존 인물이자 여성 독립운동가인 김란사를 애정하신다고 하셨죠? ‘그가 남성이었다면 동상도 세워지고 뮤지컬도 만들어지지 않았을까’라고도 하셨는데, 여성 위인이 조명되지 않는 문화를 잘 짚어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그 시대 여성의 역할이나 이미지는 한정돼 있잖아요. 그냥 아낙네. 아이 키우고 요리하는 사람 등등. 밖으로 나가면 안 되는 그런 존재 정도로요. 더 아이러니한 건, 귀족이나 세상을 좌우하는 계층에서도 여성은 더 제한된 조건에서 사는 경우가 많았다는 거예요. 김란사도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다 조선 최초의 기혼 여성 유학생이 됐고, 독립운동을 한 거죠. 그런 모습을 잘 그리고 싶었어요. 김란사는 의친왕과 유학 시절에 만나는데, 관계가 얼마나 얽혀 있는지 등은 알기 어려운 부분이라 소설적으로 쓴 거긴 합니다.
Q. 의친왕과 김란사. 이들이 왜 한국 사회에 알려지지 않았다고 생각하시는지 견해가 듣고 싶어요.
의친왕뿐 아니라 이 시기 왕실은 대부분 잊히고 있잖아요. 여러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19세기 일본은 근대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한국은 일부러 현대과학을 포기하기도 했고, 그 외에 잘못된 선택도 많았고. 파벌주의와 세도 정치 때문에 내부 상황도 약해져 있었고요. 그래서 나라가 쉽게 일본에 넘어갔다는 비판이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 상황에서 고종이나 순종, 혹은 전주 이씨 가문에 좋은 평을 할 수 없으니 굳이 기억하지 않는 것도 있겠고. 이런 인식을 제가 고치고 싶다는 게 아니에요. 그냥, (책을 통해) ‘의친왕을 한번 보세요’ 이런 거예요. 그래도 그때, 이강이란 사람이 이런 노력을 했었다고.
“여성을 위한 자리는 하나인가...”
지워진 독립 운동가에 의문
Q. 독립운동가 김란사는 우리가 왜 몰랐을까요?
(튜더는 골똘하게 고민하며 입을 뗐다) 전, 사실 김란사가 알려지지 않은 게 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에요. 이를테면, 유관순은 한국 사회에서 엄청나게 상징적인 인물이 아닌가요? 김란사는 이화학당에서 그 유관순을 가르쳤고, 그 시기 여성 교육에 엄청난 역할을 하셨어요. 동시에 독립운동가죠. 1919년, 파리 강화회의로 가는 길에 암살을 당해 돌아가셨고요. 엄청 드라마틱한 이야기예요. 그런데 사람들이 잘 모르다니…! 소설 준비하면서 김란사가 공부하고, 또 유학 후 선생으로 있던 이화학당에 갔습니다. 그곳에 박물관 격의 공간이 있는데, 김란사 사진은 한 장 있더라고요. 유관순의 선생님인데... (한국 사회에서) 남자 독립운동가들은 많이 알려졌을 것 같은데, 여자를 위한 자리는 하나밖에 없던 걸까. 그런 생각도 드는 거죠.
Q. 소설은 임시정부 망명 작전 실패 직후 의친왕과 아들 이우의 모습을 보여주며 끝나요. 의친왕은 1955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전에 결말을 낸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 이후는 2권, 3권으로 써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 거죠. 이미 너무 긴 이야기라, 망명 작전이 적합한 엔딩 지점이라고 봤어요. 그리고 이야기가 이우의 대사로 끝나잖아요, 혹시 이우의 마지막을 아시나요? 세계 2차 대전 끝에서 히로시마 원폭 투하 당시 피해자로 돌아가셨어요. 1945년 8월 15일 광복절에, 일본 천왕이 라디오에서 '우리는 몰락했다' 이런 이야기를 선언할 때가 그분의 장례식 때였던 거죠.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서 '만세'를 외치는 바로 그 시기에 돌아가셨다니… 이런 부분까지 포함했으면 책이 엄청 길어졌을 거예요. 2, 3권이 나온다면 쓰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이미 그런 구상은 다 있어요, 제 머릿속에요.
모든 이들이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렸다. 소년이 흔들림 없이 말했다. “나는 의친왕의 아들, 조선의 이우입니다. 설사 이대로 이 땅을 떠나 백 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못한다고 해도, 나는 조선의 이우입니다.” <‘마지막 왕국’, 607쪽>
(*2편에서 다니엘 튜더와의 창작에 대한 인터뷰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