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읽고 곧바로 ‘네’, ‘아니오’로 답한 분들이 계실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확신은 어디에서 왔나요? “청소년 문해력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라는 기사나 영상이 많아졌습니다. 교육 프로그램을 선도하는 EBS에서도 청소년을 포함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문해력에 관해 방송하기도 했죠. 그래서 교육에 관심이 많으신 학부모님들은 자녀가 어렸을 때, ‘독서교육’을 시키기도 합니다. 중고등학교에 들어서면 입시 공부를 하느라 독서할 시간을 따로 낼 수 없기도 하고, 일단 교과서, 문제 출제자의 의도, 긴 지문 등 공부의 시작점에는 문해력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죠.
예로부터 한민족은 ‘독서’를 중요시하던 민족이었습니다. 절대적으로 신성시했던 때도 있었죠. 우리는 종종 독서를 책 읽는 행위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독서로 인해 ‘분명히’ 깊어졌을 지혜와 인품까지도 ‘미리’ 내다봅니다. 그 사람이 독서로 정말 무엇인가를 얻었는지 애써 검증하지 않습니다.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사람이라면, 분명 다른 사람보다 훨씬 똑똑하거나 지혜로울 것이라고 추측하죠. 물론, 오늘날에는 독서에 대한 무한한 믿음이 많이 사라지긴 했습니다. 독서보다는 현장학습, 체험, 그리고 여행과 경험을 중시하는 학부모님들도 많아졌습니다. 맞습니다. 고전 100권만이 인생의 해답은 아닐 겁니다. 무조건 읽어야만 하는 책은 없죠. 누군가가 책에서 얻은 삶의 지혜들을, 누군가는 삶의 현장에서 배우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독서가 중요한 이유는, 여행이나 체험과 달리 독서는 가장 공평한 도구이자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운이 좋아서 경험하거나 여유가 있어서 여행을 하는 것과 달리 독서는 많은 청소년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독서의 장점은 이제 알 것 같습니다. 그런데 꼭 ‘고전’을 읽어야 할까요? 아니, 그전에 청소년이 ‘고전’을 읽을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네’라고 대답한 분들 중 대부분은 아직 어린 학생들의 창의력과 도전 정신을 믿기 때문일 겁니다. 반대로, ‘아니오’라고 대답한 분들은 어린 친구들의 문해력 수준이 어려운 철학을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과 너무 어려운 고전 때문에 자칫 학생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독서에 대한 흥미가 사라질까 염려하는 마음 때문이겠죠.
제게 누군가가 “고전 100권을 청소년이 읽을 수나 있나요?”라고 묻는다면, 저는 어떻게 대답할까요? 아마 저는 용감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겁니다. 막연히 학생들의 지적 능력이나 도전 정신을 믿기 때문은 아닙니다. 철학적으로 특출난 몇몇 학생들의 예시 때문만도 절대 아니고요. 제 생각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에 대해서 정말 중요한 뭔가를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전을 고전답게, 책을 책답게 읽지 못하죠.
책은 ‘일회용품’이 아닙니다. 전자책으로 쉽게 읽고 쉽게 삭제할 수 있도록 변해버리긴 했어도, 책의 본질은 저자가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거나, 감동을 주거나, 교훈을 주거나, 어떤 삶의 철학들을 드러내거나, 혹은 반드시 써야만 했던 뭔가를 예술적으로 승화한 것들을 종이 위의 텍스트로 ‘반영구적’으로 남긴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책이 우리 삶에 특별한 이유는 그것이 일회성 재미를 주기 때문인가요? <총, 균, 쇠>와 같은 두꺼운 책을 읽고서 어떤 지식을 얻었다면, 이제 그 책은 덮고 책장에 꽂혀 있어도 되는 건가요? 그전에, 내가 <총, 균, 쇠>를 읽을 때, 재미와 감동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철학들을 반드시 ‘한 번에’ 이해했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요?
제가 볼 때,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을 때 ‘빠른 소비’를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단숨에 읽고, 빠르게 이해하고, 책장을 덮죠. 그리고 만족합니다. 만약 만족할 만한 이해를 하지 못했다면? 곧바로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립니다. 그리고 책장을 빠르게 덮어버리죠. 이런 ‘빠른 소비’로서의 독서는 학부모님들에게도 나타납니다. 자녀가 한 권의 책을 너무 오래 붙잡고 있거나, 필독서 50권을 방학 동안 모두 읽지 못하면 왠지 뒤처지는 것 같죠.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읽을 순 없습니다. 지금 당장은 시간 낭비인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책’은 정말 ‘학업’이나 ‘직업’처럼 빠른 이해만을 필수로 하는 걸까요? 학생들이 고전 100권을 읽을 수 없다고 믿는다면, 그건 어쩌면 ‘읽는 행위’를 경쟁적인 학업이나 학술적인 연구로 생각하기 때문일 겁니다. 독서를 통해 지혜로워질 수 있다고 믿는 동시에, 그러한 지혜가 오랜 시간에 걸쳐서 형성된다는 불편한 사실은 애써 외면하는 것이죠.
내 자녀가 오늘 당장 <어린 왕자>를 ‘어른’처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 독서는 정말 잘못된 독서일까요? 제 생각에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어린 왕자>는 앞으로 내 자녀가 꾸준히 다시 펼쳐볼 책이기 때문이죠. 고전이 고전인 이유는 꾸준히 다시 읽히고, 연구되고, 계속해서 새로운 의미들을 찾을 수 있는 보물 같은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린 왕자>와 같은 책들은 각 연령대마다 감회가 다르다고들 말하지 않던가요. 한 번에 소화할 수 있는 책은 드뭅니다. 어쩌면 그런 책은 일회성 유희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기 힘들 수도 있죠. 반면, 여러 번 곱씹어야만 하는 책들, 그리고 처음 읽었을 때와 다시 읽었을 때의 느낌이 다른 책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책들 중 수천, 수백 년에서 수십 년을 살아남은 책들이 바로 ‘고전’이죠. 고전은 어차피 살아가면서 꼭 한 번은 읽어야 봐야 할 책입니다. 먼저 읽었던 사람, 나이 들어서 읽는 사람 누구나 한 번에 이해하고 끝낼 수 없는 책이죠. ‘책’은 일회용품이 아니라 다회용품이며, 삶이라는 모험을 계속하는 동안에는 두 손 가득 지니고 가야 할 엑스칼리버입니다.
좋습니다. 그럼, 어차피 어른이 되면 꼭 읽어봐야 할 고전을 어렸을 때부터 무조건 선행학습 시키듯 읽히면 되는 걸까요? 좋은 책이 좋은 책이니까, 꾸준히 꾸역꾸역 읽히면 그만일까요?
제가 생각할 때, ‘독서 교육’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당장 내 앞에 놓인 한 문장에서 지식의 열매들을 줄줄이 끌어올리는 것도 독서 교육이겠지만, 진짜 독서 교육이란 ‘용기’를 심어주는 것이 아닌가 싶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뜬금없이 감성팔이가 된 것 같지만, 살아가면서 용기라는 능력은 정말 중요합니다. 불의에 항거하고,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도 용기이긴 하지만, 제가 말하고자 하는 용기는 ‘자기 자신을 객관화할 줄 아는 용기’입니다. 요즘 말로는 ‘메타인지능력’이라고 하죠.
책 한 권을 읽고 요약하고서 ‘내가 아는 지식 1’로 만드는 건 생각보다 쉬운 작업입니다. 그저 읽고, 이해하고, 그걸 내 머릿속 어딘가에 저장하면 되거든요. 그런데 책을 ‘다시’ 읽는다는 것, 특히나 단순히 재미로 다시 읽는 게 아니라, 어떠한 삶의 의미들을 되새기기 위해 다시 읽는다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내가 당장 틀릴 수 있다고 인정할 줄 아는 자세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미덕입니다. 내가 예전에 이 책에서 얻었던 지식과 의미, 그것들로 인해서 내가 갇혀 있던 내 세계가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용기. 더군다나 내 시간을 들여서 내 세계를 깨뜨려보고자 하는 용기 말이죠.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독서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가져다주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살아가면서 내가 지니고 있던 철학, 가치관, 의미들을 언제든 다시 성찰할 수 있는 용기를 ‘책’을 도구로 하여 심어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철학 스승이나 친구로 삼을 수 있는 좋은 사람을 만나고, 인생의 중요한 터닝포인트 때마다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상황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책’, 그중에서도 양질의 도서로 인정받은 ‘고전’은 ‘좋은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가장 공평한 도구일 수 있습니다.
제가 자녀를 키우게 된다면, 고전에 대한 재미와 삶을 스스로 성찰할 줄 아는 용기를 심어주는 데 최선을 다할 겁니다. 고전을 당장 이해하고 이해하지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에서 어떤 감동을 느꼈는지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감동과 이해에 감동하면서 공감하는 것. 그리고 어렸을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른이 되어서도 같은 고전을 다시 읽었을 때, 자신이 무엇을 오해하고 있었고 무엇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는지 찾아가면서 ‘나’를 둘러싼 세계관의 확장을 능동적으로 경험하는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게 있어서, 고전은 일회용품이 아니기 때문이죠. 제 경험상 고전은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빛나는 명검이며, 여러 번 닦을수록 빛나는 보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