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리의 그림책 이야기] 집밥이라는 사랑
[이루리의 그림책 이야기] 집밥이라는 사랑
  • 이루리 작가
  • 승인 2024.09.3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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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네 식당』 표지

너무나 익숙하고 편안한 『엄마네 식당』

그림책 『엄마네 식당』은 표지부터 너무나 익숙하고 편안합니다. 살굿빛 식탁보 위에 갓 지은 밥과 시금치와 김치가 보입니다. 그리고 두부, 호박, 표고버섯, 팽이버섯을 넣은 된장국을 누군가 두 손으로 고이 올려놓습니다. 숟가락과 젓가락도 가지런히 놓였습니다. 그리고 ‘엄마네 식당’이라고 쓴 제목이 보입니다. 마치 엄마가 쓴 것만 같습니다. 

집밥을 먹으며 저는 『엄마네 식당』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네 식당』 속 한 장면. [사진=월천상회]

“아침부터 분주한 식당이 있어요. 아직 이른 아침, 엄마는 오늘도 제일 먼저 일어나 엄마네 식당을 열어요. 보글보글 지글지글 딸각딸각. 달그락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알람이 되어주기도 해요. 때로는 맛있는 냄새에 눈이 번쩍 뜨이기도 하죠.” - 『엄마네 식당』 중에서

그림책 속 그림은 마치 우리 가족을 보는 것처럼 편안하고 정겹습니다. 엄마, 아빠, 큰딸, 작은딸, 그리고 막내아들로 구성된 주인공 가족의 아침 풍경이 펼쳐지죠. 엄마가 밥을 차려주고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밥을 먹으며 『엄마네 식당』을 읽다가 저는 그만 울고 말았습니다. 

보통 명절에는

『엄마네 식당』 속 한 장면. [사진=월천상회]

명절이 오면 우리 부부는 우선 서울 부모님 댁에 갑니다. 형님네가 준비한 생선과 전을 식탁에 올리고, 우리가 준비한 불고기와 나물을 올리고, 엄마가 지은 밥과 김치와 미역국을 올리면 명절 상차림이 완성됩니다. 밥을 다 먹고 나면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다시 함께 과일을 먹습니다. 과일을 먹으며 덕담 몇 마디를 나누고 나면, 강릉 부모님 댁에 가야 할 때입니다. 

늘 명절 당일에 출발하기에 장시간 운전을 즐깁니다. 휴게소에도 자주 가고 강릉에서 기다리는 부모님과 처제에게 전화도 합니다. 보통 여섯 시간 이상 걸려서 강릉에 갑니다. 도착하면 이미 밥상이 차려 있습니다. 장모님과 처제가 함께 만든 명절 상입니다. 문어숙회, 생선구이, 갈비찜, 도루묵찌개 그리고 먹음직스러운 밑반찬들이 한 상 가득합니다. 이윽고 더 먹으라는 잔소리와 배불러서 더는 못 먹겠다는 하소연이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모든 것은 변하고, 또 변하고

『엄마네 식당』 속 한 장면. [사진=월천상회]

하지만 이번 명절에는 당연한 줄 알았던 명절 밥상을 차리기가 어렵습니다. 서울 부모님은 이제, 맵거나 씹기에 단단한 음식은 먹기 어려울 만큼 연로해지셨습니다. 강릉 부모님은 아버님이 서울 큰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두 분 모두 병원에 계십니다. 

양쪽 부모님 댁의 ‘엄마네 식당’은 쉬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서울 엄마는 제가 어릴 때도 밥 하는 것을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그래도 평생 밥을 지어주셨습니다. 강릉 엄마는 음식 솜씨가 좋기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한때는 밥집을 하기도 하고 하숙생을 받아서 자녀들을 키운 분이시죠. 이제 두 분 모두 80대 노인이 되어 엄마네 식당을 열기가 너무 힘이 듭니다. 우리는 부모님을 맛있는 식당으로 모시고 갑니다. 맛있게 드시는 부모님 모습을 보면 기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울컥합니다. 

밥을 짓는다는 것, 밥을 먹는다는 것

아무리 배달 음식이 넘쳐나고 외식산업이 발달해도 집밥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엄마네 식당이든 아빠네 식당이든, 할머니 식당이든 할아버지 식당이든, 언니네 식당이든 오빠네 식당이든, 아내 식당이든 남편 식당이든…. 모든 집밥은 힘이 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먹는 집밥은 그냥 집밥이 아니라 사랑이고 추억입니다. 부모님은 언제나 묻습니다. 
“밥 먹었니?”라고요.
양선영 작가는 책 『엄마네 식당』의 마지막을 이렇게 맺습니다.
“배고프겠다. 얼른 밥 먹자.”

부모님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사랑하는 사람과 밥 먹으러 왔습니다.  

『엄마네 식당』
양선영 지음 | 월천상회 펴냄 | 48쪽 | 16,000원

이루리(작가/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글_이루리(작가/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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