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희의 PR 토크] 역사와 대화하기
[박찬희의 PR 토크] 역사와 대화하기
  • 박찬희
  • 승인 2024.09.3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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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희 ㈜박찬희 PR 대표
박찬희 ㈜박찬희 PR 대표

역사는 흔히 승자의 기록이라 하지만, 나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EH Carr의 말에 더 마음이 기운다. 과거로부터 오는 메시지에 끊임없이 귀 기울이고, 교감하고 해석하면서, 내 안의 역사의식을 깨우다 보면 나의 삶도 그만큼 더 의미 깊어질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승자의 기록이 역사라면, 시대와 진영에 따라, 역사의 해석은 계속 바뀔 것이다. 따로 열린 올해 광복절 경축식이 그걸 말해주고 있다. 역사 바로 세우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등 지난 수십 년간의 노력들이 이름만 거창했지 상처와 갈등을 키워오고 있지 않았을까.

“우리가 만세를 부른다고 당장 독립되는 것은 아니요. 그러나 겨레의 가슴에 독립정신을 일깨워 주어야 하기 때문에 이런 기회에 꼭 만세를 불러야 하겠소” 3.1운동을 주도한 33인의 한 사람인 손병희 천도교 교주의 말이다. 3.1 운동이 더욱 빛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진영과 신분의 차이를 넘어 진정성의 역사를 함께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다. 미국 뉴욕의 9.11 테러 추모 박물관 로비에는 “시간의 추억으로부터 그대를 하루도 지울 수 없다” 라(No day shall erase you from the memory of time) 쓰여있다. 로마 시인 버길 리우스의 시구절이다. 3,000여 명 테러의 희생자들을 영원히 기억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후세에 전달하겠다는 의지에 공감하며, 수천 년 전으로부터 날아온 메시지를 통해서 역사와의 대화는 이루어지고 있었다.

2년 전 3.1절에 국립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이 서대문 형무소 박물관 건너편에 문을 열었다. 나는 이 기념관 건립 홍보자문위원으로 위촉되어 3년간 활동하면서 우리가 세계사적으로도 자랑스러운 독립운동사를 가진 민족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임시정부가 표방하는 진보적 사상과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이야말로,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하는 미래 비전이자 가치라 생각했다.

자문위원 자격으로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파리 시내를 걷다 보면, 곳곳에서 작은 현판과 그 위에 놓여있는 작은 꽃다발과 마주쳤다. 자세히 보니 프랑스 혁명과 레지스탕스 활동으로 죽어간 청춘들의 이름과 생일, 그리고 사망한 날짜가 적혀 있었다. 잘 만들어진 기념관이나 박물관의 박제된 역사 보다 훨씬 더 살아있는 메시지를 내게 던졌다.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희생된 600만 명의 유럽 유대인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세워졌는데, 희생자 이름 없는 지상 추모비가 인상적이었다. 그런가 하면, 유태인 거주 지역의 골목길 바닥에 징 박혀 있는 작은 명판들이 많았다. 누군가의 밀고에 의해 나치에 끌려간 유태인들의 이름과 끌려간 날짜, 처형된 날짜 등이 적혀 있었다.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여 읽다 보면, 끌려가던 유태인들의 공포와 절망감이 그대로 전해졌다.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는 역사의 메시지가 교감되는 순간이었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 그것이 내 삶의 가치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진영과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는 객관적인 사실에 기초를 두고, 이에서 의미를 추출하고, 서로 교감하는 메시지를 창출하는 PR의 과정이기도 하다.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이란 남을 움직이기 전에 내가 먼저 변하는 것이라 했다. ‘그대 하루 5분이라도 조국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라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내 안의 역사의식을 끌어내어, 과거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며 내 안의 진정성을 만나보았으면 좋겠다.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임시정부기념관에 가보길 권한다. 거기에 우리가 모르던 대한민국이 있고,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내 자부심의 원천을 발견할 것이다. 선진국일수록 지금의 나라를 지켜내면서 이어온 역사를 잃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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