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향력이라는 것. 사무직 계열에 있는 사람들은 발휘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물론 개개인의 의지와 역량에 따라 그 차이는 있겠지만 전문직이나 일의 결과물이 눈에 딱 보이는 기술직에 비하면 사무직은 영향력이 있다는 느낌, 발휘한다는 느낌을 사실 잘 못 느낄 때가 많다. 여름 더위가 한창이던 어느 날, 성남시 구미도서관에서 한 이용자에게 책을 찾아주는 도서관 직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했다. ‘내가 고른 책을 이용자들이 빌려 갈 때 그게 좋든 나쁘든, 작든 크든, 그 순간만큼은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아닐까’, ‘그게 작게나마 ‘보람’이라는 이름으로 남지 않을까’라고.
“공간은 어떤 사람이 운영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데, 도서관도 마찬가지예요. 직원들이 근무환경에 만족하고 일에 애정을 가질 때, 이용자들도 도서관 서비스에 만족하게 되죠.” 성남시 구미도서관 박대철 관장은 이렇게 말하며 도서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Q. 어린이 영어특화 도서관이라고 들었어요.
구미도서관은 지난 2008년 개관할 때부터 ‘어린이 영어’를 특성화 사업으로 선정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성남시 전체 도서관에서 어린이 도서를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죠. 개관할 당시에 영어에 대한 학부모들의 관심이 많았고, 그로 인해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많았어요.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영어 교재를 하나씩 들여놓기 시작한 게 지금까지 오게 되었고요. 지금은 이전에 비해 사업이 좀 더 확대되고 체계화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도서관 1층 어린이가족열람실 내 English Zone을 별도로 설치해 어린이 영어책을 기반으로 독해능력 진단과 수준별 독서퀴즈를 통해 아이들이 영어책에 좀 더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어요. 또한, 사서분들이 제공하는 맞춤형 영어도서 추천과 대출 서비스로 도서관 이용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죠. 하나의 프로그램을 꾸준히 진행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이용자들의 좋은 피드백과 사서분들의 노력이 더해 도서관 특성화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Q. 이외에도 구미도서관에서는 다양한 독서 문화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소개해주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다면요.
시민들에게 많이 각인된 프로그램을 꼽자면 ‘방과 후 찾아가는 도서관 돌봄교육’일 듯합니다. 성남시 관내에 돌봄센터가 23개소 있고, 그중 매년 수요 조사를 통해 희망하는 기관을 대상으로 초등학생 1~4학년 돌봄 대상 아이들에게 맞춤 강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학기 중에는 요일별로 강사를 파견해 독서, 글쓰기, 한국사 등 독서와 관련된 5개 강좌를 운영하고, 방학 기간에는 화상교육 시스템을 활용해 1:1 비대면 원격 교육으로 독서스피치와 종이접기 2개 강좌를 운영하고 있죠. 해당 기관의 반응도 좋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의 반응이 좋아 지속해서 진행하려고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시니어를 위한 듣는 책 맞춤 독서’도 구미도서관의 대표적인 프로그램 중 하나입니다. 책을 읽는 데 불편함이 있을 어르신들을 위해 오디오북 사용법과 도서관 디지털 정보 서비스 활용법을 교육해 드리는 프로그램이죠. 오디오 청취 후 독서토론을 할 수 있는 독서 코칭도 하고 있고요. 오디오북 수요도 늘고 있고, 도서관 이용자 중 어르신 이용자분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어서 그런지 상·하반기 모집할 때마다 많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꾸준히 좋은 반응을 얻고, 중점사업이 되어 더 많은 이용자분이 누릴 수 있게 되면서 더불어 좋은 평가를 받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Q. 프로그램의 좋은 반응이 한국도서관상 수상, 그리고 ‘2023년 경기도 공공도서관 운영평가’ 최우수 기관까지 이어졌다고 들었어요.
감사하게도 ‘제55회 한국도서관상’ 공공도서관 부분 단체상 수상, 그리고 지난 ‘2023년 경기도 공공도서관 운영평가’에서 최우수 기관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이런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된 데에는 앞서 언급한 ‘방과 후 찾아가는 도서관 돌봄교육’이나 ‘시니어를 위한 듣는 책 맞춤 독서’처럼 정보 사각지대에 있는 이용자들에게 찾아가는 서비스를 운영한 것을 좋게 봐주신 것에 있다고 보고요. 일반 시민들을 위한 독서 프로그램도 물론 중요하지만, 도서관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인 만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는 프로그램이나 행사를 기획하고자 했던 도서관 관계자분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받을 수 있던 상이었죠.
Q. 관장 부임 후 받은 상이라, 감해가 더 뜻깊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구미도서관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어요. 2022년 도서관 관장으로 부임하기 전, 2007년 팀장으로 구미도서관 개관작업에 참여해 많은 고민과 노력을 쏟아낸 곳이거든요. 관장으로 부임하기까지 1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지금은 많은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중이죠. 개선해야 할 사항이나 애로사항들을 많이 들으려고 하고요.
예를 들어, 도서관 이용자분들의 불편 사항으로 많이 언급됐던 것이 노트북 좌석이었어요. 올해 예산을 편성해 전자정보실 노트북 좌석 24석을 신설하고, 노트북실 60석을 90석으로 확대해 부족한 좌석을 늘려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문헌정보실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의 편의성을 위해 3층에 있던 신문과 잡지를 2층으로 이동 배치하고, 직원들의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 2개로 나누어져 있던 대출공간을 통합해서 운영하고 있죠. 지금은 2층과 3층 간의 장서 이동의 편의성을 위해 소형화물용 엘리베이터 설치를 추진 중이고요. 큰 변화는 아닐지라도, 모두의 만족을 충족하는 도서관이 될 수 있도록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중입니다.
Q. 특히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만족도를 중요시한다고 들었어요.
도서관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내부고객인 직원들의 만족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임하고 직원들 한명 한명과의 1인 면담을 시행했죠. 저는 직원들이 자율적인 분위기에서 편하게 근무했으면 좋겠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직원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는 게 우선이니까요. 직원들의 애로사항을 듣다 보면 문제점들이 보이고, 그러한 문제점들을 순차적으로 해결하다 보면 결국 이용자들에게 질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더라고요. 내부고객이 스트레스받으면 그게 고스란히 외부 사람한테도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해요. 직원들의 만족도가 도서관 운영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이유죠.
Q. 도서관은 단순한 ‘책’이 아닌 문화 전반을 다루는 공간으로 점점 확대되고, 그 쓰임새도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도서관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요.
도서관은 글이라는 매개체로 표현된 다양한 지식과 지혜를 담고 있는 보물창고라고 생각합니다. 전자책, 오디오북의 역할이 점점 커지면서 종이책의 위기, 더불어 도서관의 위기라고 우려하시던 분들이 더러 계셨는데,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상생이 아직 이어지는 것처럼 전자책과 종이책의 상생 역시 상호 보완적 관계 안에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독서 수단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AI 시대에 더 쉽고 빠르게 정보를 접하는 환경에서 책이 가진 콘텐츠의 경쟁력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지난해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10명 가운데 6명은 1년간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물론 수많은 정보의 바다에서 사고의 방향을 잃어버리고, 단편적인 지식만을 습득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라도 우리가 사고하고 믿을 수 있는 명확한 정보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AI의 발전을 위해, 그리고 인류의 안전을 위해서는 비판적 사고력, 창의력, 인간성, 심리적 안정 등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도덕성’이 더 중요하게 강조됩니다. 이때 도덕적인 기준을 스스로 정립하는 데 독서가 도움이 되죠. 등한시할 수밖에 없는 책에서 더 가치 있는 것들을 질문하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일상의 변화를 만드는 데에는 도서관이 도움이 되고요. 그리고 때로는 개인적 일상뿐만 아니라 사회가 나아가야 할 다양한 문제들을 깊이 있게 다루기도 합니다.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이나 그와 관련된 프로그램, 서비스 등이 AI 시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역량을 제공해주죠. AI가 점점 일상으로 파고드는 지금, AI 기술을 활용해 독서 경험을 향상하는 노력과 함께 독서를 통해 인간만의 역량을 키워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 시대에 독서가, 그리고 도서관이 필요한 이유죠.
Q. 끝으로 구미도서관 이용자분들께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도서관 시설은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공간이고, 그 속에 비치된 수많은 책은 누구나 제약 없이 읽을 수 있습니다. 타인과 다 같이 공유하는 장소, 물건을 소중하게 이용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더불어 사서분들을 포함한 도서관 직원분들께 인격적으로 상호 존중하는 마음을 내비쳐주셨으면 하고요. 규정이나 규칙을 스스로 지키는 게 타인을 향한 배려고, 그 배려는 내가 먼저 보여줄 때 돌려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공동체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성숙한 시민의식만 있다면 도서관을 100% 잘 활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높은 시민의식은 저를 포함한 도서관 관계자분들로 하여금 더 많은 애정을 도서관에 쏟아붓게 해주곤 하죠. 사랑받는 도서관으로 발전해 나가는 데에는 도서관 직원분들의 노력뿐만 아니라 이용자분들의 배려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독서신문 이세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