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했던 것들이 하나둘씩 없어지는 게 어색하지 않은 요즘이다. 기술의 발달은 소수에게 편의를 제공했고, 그 범위가 소수에서 다수로 넓혀지고, 이제는 그러한 편의가 디폴트가 되었으니. 직업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어떤 직업은 사라지고 있고, 그 자리를 재빠르게 새로운 직업이 꿰차고 있다.
국내 AI·로봇 전문가들은 다가오는 2025년경에는 AI와 로봇이 본격적으로 사람의 일을 대체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한다. 또한, 한국고용정보원에서는 2025년에 국내 근로자의 60%, 약 1,630만 명이 AI·로봇에 의해 대체될 직업에 속한다고 분석했다. 직종별로는 단순노무직(90.1%)의 대체 위험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추정됐는데, 구체적인 직업군으로는 음식 배달원, 생산직(기계조작), 건설업 단순 종사원, 청소원, 매표원, 주유원, 주방 보조원, 가사 도우미, 주차 관리원… 등이 해당된다.
곧 인구의 60%가 언제든 대체 가능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지금, 우리는 ‘사라지는 직업’을 어떻게 바라보고, 기억해야 할까.
책 『어떤 동사의 멸종』은 저자의 직업 체험기, 노동에세이로 ‘사라지는 직업들의 풍경’을 기록했다. 작가는 여러 보고서에서 지목한 ‘기술의 발달로 머지않아 대체될(사라질) 직업’ 가운데 그 확률이 높은 편에 속하는 네 직업의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모습을 담고자 했다. 작가가 보고 듣고 맡고 맛보고 느끼며 기록한 네 직업은 ‘콜센터 상담, 택배 상하차, 뷔페식당 주방, 빌딩 청소’다. 책 제목과 연관 지어 ‘동사’로 표현한다면 각각 ‘전화하다, 운반하다, 요리하다, 청소하다’이다. 작가는 이들 직업을 두루 겪으며 그 풍경의 안과 밖을, 그 가운데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을 세세하게 담아냈다. 그리고 이들 ‘직업-동사’를 미화하지도 않는다.
소프트폰의 대기 버튼을 누르자 곧바로 내 전화기에서 벨이 울렸다. 전형적인 따르릉 소리였지만 콜센터에서는 영화 ‘사이코’에서 샤워실 커튼이 젖혀지면서 울렸던 바이올린 소리처럼 들린다. 식칼을 치켜들고 커튼을 열어젖힌 이는 다름 아닌 품절 불만 고객이었다.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기는’ 직업은 콜센터 상담원이다. 유수의 기관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 직업의 대체확률이 무려 0.97~0.99에 이른다(1에 가까울수록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소위 감정노동의 ‘끝판왕’ 자리에 있는 직업답게, 콜센터 상담사는 고객들의 말도 안 되는 언어폭력과 직장 내 비인간적 처우가 내몰린다. 아무 권한이 없어 고객의 컴플레인을 그저 받아내야 하는 이들 노동자들은 어느 고객의 말마따나 (고객들의) ‘감정처리’를 목적으로 생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책 속 “이런 일자리는 그냥 사라지는 게 더 낫겠다”라고 작가가 말한 것처럼. 그리고 작가의 말은 머지않아 현실로 다가온다. 인공지능 상담원이 그들의 자리를 대체하면서 인간 상담원들은 자신의 직업을 돌려달라며 영하의 길거리에서 소리쳤다. 곧 사라질 직업과 사라지는 편이 나을 직업 사이에서 그들의 노동은 곧 움직임을 멈출 동사가 되어갔다.
숨을 내쉴 때마다 마스크 앞부분이 풍선을 분 것처럼 불룩하게 부풀었다가 들이 쉴 때는 코와 입에 찰싹 달라붙는다. 숨을 헐떡이다 보면 마스크에서 깃발이 펄럭이는 소리가 난다. 풀무질하듯 숨을 쉬어보지만 작업 속도를 쫓아가는 데 필요한 산소를 보충하기에 충분치 않다. 조선 시대에서는 ‘도모지’라는 형벌이 있었다.
청소는 대체확률이 그냥 1이다. 퍼센티지로 말하자면 100퍼센트라는 뜻이다. 여러 보고서의 전망에 따르면 청소하는 일은 확실하게 대체된다. 작가는 한 고층빌딩 청소를 맡은 업체에 소속되어 일한다. 재미있게도 젊지도 늙지도 않은 작가는 그곳에서는 ‘어린’ 축에 속한다. 실제로 주변을 둘러보면 어느 건물이든 청소 노동자들은 대개 60대 이상이다. 의도치 않게 작가는 ‘동료’들보다 힘이 세고 재빠르다. 청소는 ‘성취의 감각’을 부단히 일깨우며, 끝마치고 나면 뿌듯함이 온몸에 솟구친다. 지극히 단순하지만 그래서 ‘조금의 모호함’도 없을뿐더러 아무도 청소의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다만 책 속에 등장하는 누군가의 말씀처럼 “젊은 게 초능력”일 뿐이다. 기술 발달 덕분에 세상엔 이미 청소하는 기계가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남아 있는 그들의 자리마저 꿰차고 들어올 기계가 도입된다면 세상은 좀 더 깨끗해질까? 노동이 일깨우던 감각을 잃는 대신.
이 노동에세이에는 풍자와 해학이 있다. 어둡고 마냥 힘든 현실 속에서도 희망과 유머를 잃지 않으려는 그의 시선은 독자들에게 위안과 웃음을 전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비판, 그런 사회가 존재할 수 있기까지의 인간애를 보여준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작가의 콜센터 상담원, 청소 노동자의 직업 체험기는, 단순한 경험담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현시점 일어나고 있는 변화와 그로 인한 인간의 노동과 삶의 변화를 깊이 있게 성찰한다.
“직업이 사라진다는 것은 생계 수단이 사라지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는 곧 직업, 곧 “노동을 통해 성장하고 완성되어 가던 특정한 종류의 인간 역시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책은 사라지고 있는, 앞으로 사라질 직업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작가가 들려주는 직업, 그리고 그 속의 사람들을 보며 작게나마 경의를 표해보는 건 어떨까. 누구든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으니.
[독서신문 이세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