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랄까, 이제 아주 사소한 일에도 자극을 받아요. 도무지 제 마음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겠어요. 뇌가 멋대로 구는 게 정말 싫어요. 뭐 한 가지만 잘못돼도 영영 달아나고 싶어져요. 말 그대로요.”
누구나 청소년기에는 정서적인 변화와 사회적인 관계의 변화를 겪는다. 사춘기가 약하게 지나갔다고 말하는 사람은 있어도, 사춘기를 겪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듯이. 개인별로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청소년기에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리고 크고 작은 성장통을 거치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정체성을 확립해나간다. 즉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자기 계발과 자아 식별의 과정을 거친다는 말이다. 살짝 아프긴 하지만, 뒤돌아봤을 때 한 층 더 성장하는 시기임은 분명하다.
책 『외꺼풀』은 한국계 미국인인 작가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고 느껴 온 시린 감각을 생생히 전하며, 청소년기 경험했던 성장통을 그린 작품이다. 한국인과 미국인 사이, 오케스트라와 미술반 사이, 불안정하고 어렵기만 한 가족과 친구 관계 속에서 주인공 ‘데버라’가 느끼는 불안과 외로움을 솔직하고 깊이 있게 보여준다.
“나는 비-미국인이면서 동시에 비-한국인이다.
영원히 그 사이에 있을 것이다.”
낯섦과 설렘이 공존하는 고등학교 첫날. 데버라는 주변의 모든 것들이 어딘가 모르게 조금씩 어색하다. 남들과 다른 외모, 아무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이름은 항상 적응 기간이 필요했지만, 이번만큼은 몇 배를 더 노력해도 안 될 것만 같다. 어디에도 확실히 속하지 못한 채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 서 있는 데버라의 상황은 제목에서 여실 잘 드러난다. 작품 전반에 주요하게 등장하는 소재인 ‘외꺼풀’은 곧 데버라가 자신을 둘러싼 세계 속에서 느끼는 이질감. 쌍꺼풀이 디폴트인 세계에서, 외꺼풀은 이방인이라는 감각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그렇다고 이민자들에 한해서만 느껴지는 감각은 아니다. 소심하고 외로운 데버라의 청소년 시기의 고유한 불안은, 한국인으로서 한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우리에게도 충분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오랫동안 안식처가 되어 준 바이올린 연주에는 더 이상의 재능도 흥미도 느껴지지 않고, 이제는 학교 수업을 따라가는 것조차 버겁다. 비밀이 있어서는 안 될 것만 같은 찐친과의 관계는 소홀해지고, 가장 아끼는 친구는 어쩐지 자꾸만 내게 벽을 쌓는 것만 같다. 성적과 진로 문제로 인한 고민과 혼란, 가족보다 더 큰 세계로 다가오는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집착과 좌절 등 데버라의 복합적인 문제들은 우리들 저마다의 청소년기를 떠올리게 한다.
세계가 많아진다는 건, 이런 원들이 생긴다는 건, 그중 하나가 무너지더라도 지탱할 수 있는 기둥이 생긴다는 뜻이야.
앞으로 넌 아주 많은 기둥을 가지게 될 거고, 어쩌면, 정말 어쩌면, 결국 처음으로 돌아가 그 사랑을 다시 발견하게 될지도 몰라.
네가 다른 사람과 많이 다르고 또 부서졌던 역사를 지니고 있을지라도…
부모의 의존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주체로 나아가기 위한 반항 아닌 반항도 나온다. 엄마와의 관계는 늘 데버라의 마음속에서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있다. 눈에 보이는 성공이 중요하다고 믿는 엄마는 자식 교육에 열성을 다하며 데버라를 압박한다. 그런 엄마에게서 멀어지고자, 자신의 방황을 멈추고자 선택한 상담, 그리고 비로소 자신의 관계와 상황들을 한발 떨어져서 바라보기 시작한다. 데버라는 화해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엄마와의 관계를 돌아보며 그때의 상황을 되짚어 이해해 보려 시도한다. 동시에 그 과정에서 잊고 있던 기억과 자신을 일으켜 준 삶의 진실들을 떠올리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데버라는 조금씩 새로워지고 다시 단단해진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미술반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뉴욕이라는 새로운 도시에 발을 디딜 것을 고대하며 자신의 세계를 넓혀나간다. 마음을 주었던 존재가 설령 사라지더라도, 다른 기둥에 기대어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성장통 없이 쌓아 올려지는 것들은 그 내면이 한없이 나약하다고 한다. 물론 어른이 된 우리는 안다. 어른이 되는 과정에 꽤 아프고 서럽고 두려운 시기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어른이 된 이후의 시간도 무겁기는 마찬가지다. 거기에 주변인의 시선이 가득한 사춘기는 무섭기까지 하다. 데버라가 ‘차라리 내가 사라지면 마음이 편할까’라는 마음을 품은 게 안쓰럽게 느껴지는 이유다. 그리고 속 안의 감정을 토해낸 뒤 평정심을 찾은 데버라에게 안도감을 느낀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사춘기의 열병은 ‘시간이 약’일 수밖에 없다. 새살이 솟아나는 상처처럼, 갈라진 틈이 메워지는 나무의 결처럼, 데버라는 그렇게 어른이 됐다. 책 『외꺼풀』이 “내게 꼭 필요했던,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상담 시간‘이 되어 주었다고 고백한 작가의 말처럼, 책을 집어 든 이들에게 데버라의 이야기는 묵직한 위로를 전해 줄 것이다.
[독서신문 이세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