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
나는 내가 직업적인 음악 청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 순간이 언제인지 정확하게 안다. 스무 살에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더 포럼 경기장에서 봤던 레드 제플린 콘서트였다. (...) 하지만 콘서트가 절반쯤 지났을 때 나는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24쪽>
부모님 문제가 아니었다. 어머니는 내가 열네 살에 돌아가셨고, 아버지와는 더 이상 같이 살지 않았다. 열일곱에 고등학교를 중퇴한 나는 나이 많은 남자친구와 결혼했다. 가정을 꾸리는 것이 안정과 독립을 손쉽게 얻는 길이라고 생각한 것인데, (...) 남편은 내가 음악에 열광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귀가 시간을 못 박아두었다. <24쪽>
너무도 무력하고 우울했다. 나는 평생을 음악과 열렬하고 또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요컨대 거의 필연이라 할 관계를 이어왔다. 음악을 들을 때면 모든 음 하나하나가 중요하게 느껴졌고 모든 가사가 진실하게 와닿았다. 그런 내가 겁에 질려 인생을 통틀어 가장 신나는 음악 경험을 포기하고 고립된 곳으로 돌아가야했다. 나도 모르게 반항심이 들었다. (...) 언젠가는 다시 포럼으로 돌아와 멋진 밴드가 공연하는 소리를 믹싱할 거야! <24쪽>
1983년 초여름에 내 인생을 바꿀 기회가 찾아왔다. (...) "그게 말이지, 기가 막힌 일자리가 있어. 프린스가 기술자를 찾는대!" <26쪽>
캘리포니아 남부에 거점을 둔 내 주변의 포크 록 뮤지션들이 보기에,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전위적으로 활동하는 프린스는 별종이었다. 그러나 나 또한 음악업계에서 몇 안 되는 여성 오디오 기술자 중 한 명이었으니 별종이긴 마찬가지였다. 로스앤젤레스의 숙련된 기술자들은 아무도 프린스와 작업하려 하지 않았다. <27쪽>
오디오 기술자와 녹음 엔지니어는 아예 다른 일이다. 영화 산업으로 비유해보자면, 녹음 엔지니어가 촬영감독인데 반해 오디오 기술자는 카메라를 수리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프린스는 내가 소리를 매만지는 일에 경험이 없다는 걸 몰랐다. 혹은 알면서 개의치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는 내가 가진 기술 관련 지식을 믿었고, 대담하게도 나의 듣는 능력을 기꺼이 믿어주었다. <28쪽>
내가 가장 강력하게 반응하는 음악은 가장 ‘나다운’ 대목이 어느 지점인지 드러낼 수 있다. 몽상에 잠기거나 꿈의 나래를 펼칠 때 내 마음이 어김없이 향하는 바로 그곳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청취 프로필에 딱 들어맞는 음악의 특징을 파악함으로써 여러분은 그저 더 좋은 청자가 되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가장 내밀한 본질을 더 잘 알게 된다. <63~64쪽>
요즘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독창성으로 받아들일 만한 일탈을 노력을 기하지 않고 대충 얼버무린 것으로 듣는 경향이 있다. (...) 가장 단순한 연주 제스처인 호흡에 대해 생각해보자. 레지나 스펙터가 〈Eet〉을 노래할 때 들숨과 날숨이 놀랍도록 선명하게 들리는 것과 달리 아리아나 그란데의 〈7 Rings〉를 들으면 숨 쉬는 소리가 거의 나지 않는다. 나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숨 쉬어, 이 여자야, 숨을 쉬라고!” 하고 끊임없이 생각하느라 긴장하게 된다. <98쪽>
음반 프로듀서는 노래의 모든 소리적 요소들을 종합하여 총체적으로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을 가리켜 ‘종합적 청취’라고 한다. 프로듀서는 이런 종합적 청취 능력을 활용하여 음반에서 완벽해야 하는 디테일과 사소한 실수나 의도적인 실수가 오히려 나은 디테일을 구별한다. 분석적 청취 능력은 다년간 정규 음악 훈련을 받으면 길러진다. 이와 달리 종합적 청취 능력은 다년간 꾸준히 음반을 들으면 길러진다. <298쪽~299쪽>
이 책을 다 읽었다면 이제 여러분이 좋아하는 음반을 다시 꺼내 들어보자. 면밀히 듣자. 휴대폰 없이 집중해서. 여러분 마음속에서 울림이 이는 가장 깊은 통로에 주파수를 맞추자. 선입견을 벗어놓고 여러분을 황홀경으로 이끄는 음악의 특별한 차원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여러분 자신에 대해 진정한 무엇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367쪽>
『당신의 음악 취향은』
수전 로저스, 오기 오가스 지음 | 장호연 옮김 | 에포크 펴냄 | 404쪽 | 2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