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의 향기] 평촌도서관 재건축 단상
[사서의 향기] 평촌도서관 재건축 단상
  • 유옥환
  • 승인 2024.08.1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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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옥환 전)안양시동안구도서관장
유옥환 전)안양시동안구도서관장

도서관이 달라지고 있다. 인도의 문헌정보학자 랑가나단은 1928년 인도의 마드라스 도서관협회를 창립하고 1931년 도서관학 5 법칙을 발표하는 등 현대적 의미의 도서관학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는 변화와 성장을 거듭하는 유기체적 존재로서 도서관을 정의하였다. 도서관은 모두에게 통하는 교육의 수단이다. 남녀노소 모두 어떠한 이유로든 소외됨과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도서관이라는 공간 속에서 이용 시민의 삶이 풍요로워지고 삶의 질이 향상되는 것은 당연한 일로 보인다. 도서관을 찾는 시민의 관심, 요구, 이를 폭넓게 수용하는 도서관의 상호 관계가 시너지를 일으키며 도서관은 점차 성장하고 발전한다.

안양에 도서관이 없던 시절, 사서로 공직에 입문했다. 시에서는 92년 당시 현대적 규모의 만안도서관을 건립하였고 개관한 지 3개월 만에 필자는 안양시 사서 1호로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다. 이후 평촌(1994), 호계(1998), 석수(2003), 박달(2006), 어린이(2007), 비산(2010), 벌말(2014), 관양(2016), 삼덕(2016) 도서관을 순차적으로 건립했다.

그중 평촌도서관은 1993년 1기 평촌신도시 개발 당시 토지개발공사에서 기부채납한 시설이다. 접근성이 뛰어날 뿐 아니라, 지역주민의 교육열에 힘입어 유독 많은 시민의 사랑을 받아온 곳이다. 30여 년이 흐르며 비록 시설은 낙후되었을지언정 인류의 지혜가 담긴 장서가 누적되고 그위로 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스며들어 물리적 공간 이상의 의미가 더해졌다. 도서관을 일상의 중심에 둔 사람들의 변화를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큰 기쁨이었다. 현재는 재건축을 위해 건축물 철거를 마치고 시공이 진행 중이다.

평촌도서관 재건축 업무를 담당하면서 고민이 시작되었다. 시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만 기억만큼은 널리 공유하고 싶었다. 30년 전 엄마 아빠 손잡고 동화구연에 참여하던 아이들은 30대 중년이 되었을 것이며, 젊은 날의 누군가는 이제 대활자본을 찾아 읽는 나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모으고 싶었다. 그렇게 ‘평촌도서관의 기억’ 자료집을 발간하였다. 연대별 사진, 주요 인사의 평촌도서관에 대한 소회 글, 공모전 수상 사진 작품과 수기, 시민과의 인터뷰 내용을 수록했다. 한편, 22년 12월 5일부터 24일까지 도서관 로비에서 진행한 ‘도서관에 보내는 이야기’ 행사에 참여해 준 315명의 소회와 새로운 도서관에 거는 기대를 일부 담았다.

재건축 공사 기간에도 중단 없는 독서 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도서 특별대출서비스인 ‘일년대출’을 시행하였다. 개인당 50권, 4인 가족 기준 200권, 기업이나 단체에는 1천 권 이내의 도서를 일 년간 마음 놓고 볼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2023년 2월부터 3월까지 약 1개월간 총 1,756명이 58,231권의 도서를 대출하였다. 건축물 철거 후 동일 부지 내 착공이라는 상황에서 도서의 이전 보관비용에 따른 예산을 절감하는 한편, 시민에게는 다량의 도서를 최소 1년 이상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기획이었다. 참여했던 시민들은 시민 중심 서비스를 제공해 준 신선하고 파격적인 아이디어라며 호응해 주었고 끊임없이 새로운 제도로 시민이 원하는 욕구를 채워줘서 감사하다는 의견을 내주었다. 또한 평촌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는 시민으로서 재건축으로 도서관이 휴관하는 것은 아쉽지만, 일년대출로 위안 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는 의견과 장기간 전집류 같은 도서를 대출해서 여유롭게 도서를 골라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일년대출은 다양한 서비스를 병행하여 제공하였다. 대량의 책을 손쉽게 옮길 수 있도록 도서이동카트 대여서비스를 병행하고, 일년대출 기념사진 명소를 조성하여 독서 의지를 다짐하게 하였다. 도서의 책등 상단에는 일년대출 스티커를 붙임으로써 재개관 후에도 ‘일년대출’을 기억하며 도서관 역사 자료 보관에 이바지하도록 했다. 일년대출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 조사에서 94.2%가 만족스럽다고 답변했으며, 향후 이런 특별대출서비스에 참여하겠다는 답변은 99%로 나왔다. 시의 적극 행정 사례로 선정되었고, 한국도서관협회가 발간하는 월간 ‘도서관문화’에 우수 현장 사례로 소개되었다. 참여자를 대상으로 일년대출 참여 수기 공모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발굴하였다. 도서관의 기획 의도를 잘 이해하고 공감하며 기회를 잘 활용해 주신 분들께 감사하다.

“가족의 책 취향과 관심사를 알게 되었고, 서로의 책에 대해 관심도 갖게 되었다. 또한, 생각을 행동에 옮길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종합적이고 능동적인 독서는 2주의 대출 기간으로는 경험해 보지 못했을 새로운 시도였음이 분명하다. 무릇 독서는 눈으로 보고 그 내용을 머리에서 이해해 마음에 새겨 넣는다고 했는데, 지난 1년간 나는 비로소 진정한 독서에 눈을 뜬 것이다.”, “1년 대출 책들을 고를 때, 나만의 선택 조건이 있었다. (중략) 책꽂이에 꽂혀 책등의 제목 몇 글자로 우리 가족을 만나는 순간에서조차 말할 수 없는 따뜻함과 행복을 주었다. 아침에 눈 뜨는 아이에게 매일매일 1년 대출 책을 조각내어 읽어주었다.”

또한, 근거리에 위치한 어린이도서관 내에 일부 공간을 마련하여 2023년 6월부터 평촌도서관 임시자료실을 운영함으로써 중단 없는 독서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안양시민의 도서대출회원 가입률은 68%이다. 2023년 한 해 동안 도서대출권수는 총 1,871,807권이다. (전자책 이용과 관내 열람 등을 제외한 수치) 시에서 운영 중인 공공도서관이 10개 관이니 1관 당 평균 187,180권의 도서가 대출 이용되었다. 전국 평균 대비 167% 수준이다. 중단 없는 독서활동 지원을 위한 일년대출과 임시자료실 운영, 스마트작은도서관의 확충이라는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평촌도서관은 2022년 전국도서관 운영평가에서 문화체육부 장관상을 받았다. 2023년에는 한국도서관상 단체상을 받았으며, 이러한 수상이 마중물이 되어 2023년 독서운동 우수지자체 부문 대한민국 독서문화 대상을 받았다. 위풍당당한 평촌도서관의 마지막 모습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제4차 도서관발전종합계획(2024-2028)에서는‘모두가 행복한 도서관’이라는 비전 아래, 따뜻한 동행, 공동체 성장, 지속 가능한 미래를 핵심 가치로 설정했다. 사회문제 대응 등 도서관의 역할 확장을 위한 정책 제시에 초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으로 이루어지는 차세대 산업혁명이라고 정의한다. 특히,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적합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으며, 독서를 통한 창의적 인재 양성에 주목하고 있다. 전 세대를 아우르는 도서관의 중요성은 거듭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2026년 하반기에 개관 예정인 평촌도서관은 더욱 변화하고 성장한 모습으로 지역주민의 독서문화를 선도하는 창의적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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