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은 당신을 지킬 수 없다, ‘폭염 살인’ 시대의 개막
에어컨은 당신을 지킬 수 없다, ‘폭염 살인’ 시대의 개막
  • 유청희 기자
  • 승인 2024.08.15 0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8만 9,000명.

2019년 기준, 전 세계에서 더위로 사망한 사람의 수다. 이는 허리케인, 태풍, 수해로 인한 죽음을 합친 것보다 많은 숫자로, 자연재해로 인한 사망 원인 중 가장 큰 비율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올해(8월 11일 기준, 질병관리청) 온열질환으로 21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주로 고령층이거나 불볕더위에도 실외에서 노동해야하는 이들이었다. 또한, 최근에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이던 한 시민이 더위를 버티다 열사병으로 사망한 사실이 알려져 문제화 됐다. 누구나 더위 때문에 힘들지만, 더위는 자원이 없는 이들에게 더 가혹했다. 폭염으로 인한 죽음이 사회적 문제가 된 이유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공기 정화가 되고 햇빛이 누그러진 실내에서 일한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집과 다리를 고치고 소포를 배달해야 하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적어도 어느 정도는 바깥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이 1,500만 명이다."

"악순환은 도시, 특히 더 노후하고 더 빈곤한 도시들에서 극심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도시에는 낡고 비효율적인 창문형 에어컨이 모든 건물에 매달린 채 실내의 열기를 빨아들여 바깥의 길거리로 내뿜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에어컨은 절대 냉방 기술이 아니다. 에어컨은 단순히 열기의 위치를 바꿔주는 도구일 뿐이다."

새로운 계급이 된 실내온도, 그러나...

실내온도가 '계급화'된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다. 하지만 미국의 기후 저널리스트인 제프 구델은 '지구 열탕'의 실체를 담아낸 르포르타주인 『폭염 살인』에서, 이러한 폭염의 속성도 언젠가 변화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말하자면 폭염의 '보편화'다. 저자는 "혼자 사는 노인이나 에어컨이 없는 가난한 이들, 혹은 속수무책 병상에 누워 있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죽는다"라면서도 "이런 상황도 언젠가는 변할 것이다. 폭염이 더 강력해지고 빈번해지면서 더 많은 사람이 평등하게 폭염의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말한다.

온도가 1도 상승할 때마다 생기는 일

변화는 이미 진행 중이다. 지구의 온도가 1도 상승할 때마다 미국 1년 GDP의 3천억 달러가 증발하며 전체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또한, 자살률이 늘고, 학생들의 시험 성적은 떨어지며, 폭력 범죄가 증가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한국만 해도 이상 기온으로 과일과 채소 값이 올라 농민과 서민, 자영업자들부터 큰 타격을 받았다. 이렇듯 더위는 먹거리부터 폭력 범죄까지 세상 많은 것과 연결된다. ‘실외 노동자도, 저소득층도 아니기에 에어컨으로 한철 견디면 된다’라는 생각은 깨지고야 말 환상이다. 당장 직장인이 가득한 퇴근길 지옥철에서 에어컨이 작동 중지되거나, 냉기가 줄어들면 어떻게 될까. 주위에서 작고 큰 욕이 터져 나오는 걸 경험해본 이가 적지 않으리라.

연일 폭염이 이어지는 8월의 한복판이다. 하지만 정책은 거꾸로 돌아가는 듯하다. 최근 정부는 신규 택지 개발을 이유로 서울 인근의 그린벨트를 해제하겠다고 얘기했다. 이것이 진행된다면 수도권에서는 2012년 이후 처음으로 그린벨트가 풀리는 것이다. 이에 대해 '도시 열섬'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찜통이 된 도시’를 걷고 싶지 않다면

주지하다시피 도시 열섬은 도시의 온도가 주변 지대보다 높아지는 현상이다. 도시 인구의 증가로 에어컨, 자동차 및 콘크리트 피복 등이 증가하면서 도시에 열이 가둬지는 찜통이 되는 것. 실제로 서울의 중심 상업지역의 온도는 그린벨트로 묶인 서울 외곽 녹지지역 보다 평균 3도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충분히, 지나치게 더운 현재. 그린벨트 철회에 대한 걱정이 커지는 이유다.

극단적인 폭염의 시대, 개인의 힘만으로 타오르는 지구를 구하기란 불가능하다. 변화는 기업과 정부 정책, 그리고 개인이 힘을 합쳐야 가능성의 궤도에 오르기라도 할 테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할까. (최재천 교수의 표현처럼) ‘안네의 일기’만큼 참혹한 기후 참상을 담은 『폭염 살인』의 저자는, 역설적으로 위험을 직면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신 역시 “이상하게도 기후위기를 똑똑히 인식하고 나니 내 삶이 더 생동감 있게,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라면서. 이미 일상에서 환경 문제를 조금씩 고민하고 있는 시민들만이 아니라, 기후위기 문제를 ‘회피’해왔던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회피에 대한 심리적 치료는 직면이 답이기 때문에. 개인만이 아닌, 정책 입안자들에게도.

[독서신문 유청희 기자]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