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이나 정보를 얻는데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다. 다른 사람들에게 지식인(?)인 척하며 뽐낼 수 있는 멋진 무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책을 가까이하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독서량도 점점 줄어들어 연간 몇 권 정도에 불과하다는 참담한 조사 결과도 있다. 요즘은 과거에 비해 쉽게 정보나 지식을 구할 수 있는 채널이 다양해졌다. TV도 있고, 유튜브도 있고, 스마트폰도 있고. 그러나 독서 인구의 감소가 단지 그런 이유만 있는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관점을 바꾸어보면 어떨까? 지금까지 책은 눈으로 읽는 데 초점이 맞춰졌지만, 이제는 책을 바탕으로 독자의 관점을 이야기하도록 하는 데 방점을 두는 건 어떨까.
선제적으로 책의 주체를 저자보다는 독자 중심으로 바꾸는 것이다. 책의 내용은 중요하다. 저자의 혼과 땀이 담겨있기에. 하지만 그건 저자의 지식이고 경험이다. 오롯이 저자 한 사람의 소우주이며, 결국에는 저자의 손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걸 의미한다. 독자 중심의 관점으로 바꾸는 출발점은 ‘그래서 어쩌라고’에서 시작해야 한다. 저자가 쓴 책을 바탕으로 독자는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를 중요시해야 한다는 말이다.
독자는 무슨 책을 읽든지 나름대로 자기의 생각과 느낌을 정리할 수도 있다. 그런데 혼자 책을 읽던지 독서 모임을 하든지 책의 핵심 내용에 관한 질문이 있다면 체득하는 느낌과 생각은 더욱 깊어질 수 있다. 질문을 통해 예전에 겪었던 자기의 경험이나 서사를 떠올려 이야기하며 정리할 수 있다. 이에 더해 그것과 관련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또 다른 추억을 떠올려 새로운 이야깃거리로 만들 수 있다. 동시에 자기도 모르게 힐링의 감정도 느끼고.
지난 몇 년간 나이든 사람을 많이 만나서 알았다. 그들이 누군가에게 자기 서사를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하긴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건 젊은 사람이나 나이든 사람이나 관계없이 대부분의 희망 사항이 아닐까 여겨진다. 다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인내심이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뿐이다.
개인적으로 인생 2막을 평생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찾았다. 글쓰기와 독서였다. 그중 글쓰기는 혼자도 할 수 있기에 틈만 나면 달인이 되어 보려고 애쓰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블로그가 매일 내주는 숙제하기다. 지금까지 50일째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더 큰 관심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독서다. 방법을 찾다가 우연히 책 질문지 만드는 법을 알았다. ‘바로 이거구나! 하고 무릎을 쳤다. 책을 읽고 거기서 핵심 문장을 찾아 사람들이 이야기할 수 있도록 질문지를 하나하나 만들었다. 너무 재미있었다. 지금까지 40여 권의 책을 질문지로 만들어 이제는 이골이 날 정도다.
책 질문지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 독서 모임도 시작했다. 처음에는 의욕이 넘쳐 둔촌도서관에 멋모르고 6개월이라는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진행하겠다고 제안했다. 이름하여 《책과 함께 이야기하기》란 제목으로. 다룬 책도 『고립의 시대』 『미움받을 용기』 『타이탄의 도구들』 『꽃잎 떨어지는 소리 빗물 떨어지는 소리』 『지적 대화를 위한 얇고 넓은 지식』 『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사』 등으로 다양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한참 진행 중인 시기였기에 대면과 비대면 모임을 병행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충분한 산 교육이었다.
그걸 교훈 삼아 서울시민대학에서는 다룰 책을 수필류나 가벼운 철학으로 한정했다. 왜냐하면 두 분야의 책은 사람들이 쉽게 자기 서사를 꺼낼 수 있는 주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필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작가가 현실 세계에서 체험한 사실을 바탕으로 했기에 누구나 비슷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분야다. 철학도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살아오면서 나침반 역할을 한 것들이니 누구나 숟가락 한쪽을 걸칠 수 있기에.
강동 구립 둔촌도서관과 서울 평생교육진흥원에 속한 시민대학 동남권 캠퍼스에서의 2년 반 동안 시행착오 끝에 <이야기 독서>는 단단하게 자리를 잡았다. 두 곳에서 동고동락했던 참가자 중 절반이 새로운 둥지에서도 함께 하기를 희망했다. 그 이유를 지난해 11월 동아일보 <서영아의 100세 카페> 인터뷰 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거기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퇴직 후 동병상련의 시니어를 많이 만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 대부분이 누군가에게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그럴 기회가 별로 없다는 것, 그리고 이들이 자기 서사를 이야기하며, 그 자체로 위로받고 치유된다는 것을요. 나이 든 세대는 하소연할 데가 없잖아요. 그래서 이야기하는 것 자체로 마음 치료가 되는 것 같아요.”
또한 참가자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10년간 혼자 지내던 생활에서 벗어나 사람들을 만나러 나오는 과정 자체에 용기가 필요했다. 이제는 매주 이 시간을 기다리게 됐다.”
주위에 프로그램이 알려졌는지 강동노인복지관에서도 연락이 왔다. ‘올 하반기에 <책 질문지 이야기 사랑방> 모임을 10회 정도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운영해 보자’라고. 서둘러 기획안을 작성하여 보냈다.
이야기 독서는 일종의 ‘품앗이’다. 책 질문지를 바탕으로 내 서사를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책을 읽는 사람들의 경험이나 생각을 끌어내 이야기하게 하고 스스로 힐링하고 마음을 치유하게 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게 독서의 최고 목적이자 가치인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방식이니 급격한 변화는 없겠지만 분명히 독서 저변을 늘릴 수 있는 멋진 방법의 하나가 되리라 믿는다.
모든 분야가 다 그렇지만 공급자보다 수요자의 눈높이 맞게 접근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한때 ‘소비자는 왕’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공급자가 수요자를 마케팅의 대상으로 여겨 만들어 낸 구호가 아닐까. 진정으로 수요자, 독서계에 있어서는 작가가 아니라 독자가 중심 위치에 있는 패러다임으로 바꿔야 할 시점이다. 그 중심에는 이야기 독서가 있다.
앞으로 이 지면을 통해 이야기 독서의 구체적인 사례를 공유하겠다고 약속드린다. 그리고 <독서신문>을 통해 이 방식을 독자들에게 소개하여 그들이 책에 다시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