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시인의 얼굴]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천상병, 「새」
[시민 시인의 얼굴]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천상병, 「새」
  • 이민호 시인
  • 승인 2024.08.0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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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가 사랑했던 시인들이 멀리 있지 않고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시민이라 여기면 얼마나 친근할까요. 신비스럽고 영웅 같은 존재였던 옛 시인들을 시민으로서 불러내 이들의 시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국민시인’, ‘민족시인’ 같은 거창한 별칭을 떼고 시인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조금은 어렵게 느껴졌던 시도 불쑥 마음에 와닿을 것입니다.

최신형기관총좌를 지키던 젊은 병사는 피비린내 나는 맹수의 이빨 같은 총구 옆에서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어느 날 병사는 그의 머리 위에 날아온 한 마리 새를 다정하게 쳐다보았다. 산골 출신인 그는 새에게 온갖 아름다운 관심을 쏟았다. 그 관심은 그의 눈을 충혈케 했다. 그의 손은 서서히 움직여 최신형 기관총구를 새에게 겨냥하고 있었다. 피를 흘리며 새는 하늘에서 떨어졌다. 수풀 속에 떨어진 새의 시체는 그냥 싸늘하게 굳어졌을까. 온 수풀은 성 바오로의 손바닥인 양 새의 시체를 어루만졌고, 모른 나무와 풀과 꽃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부르짖었다. 죄없는 자의 피는 씻을 수 없다. 죄 없는 자의 피는 씻을 수 없다.

- 천상병, 「새」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 시인 중에 천상병만큼 곡해하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단지 무구(無垢)한 웃음으로 남은 사내였습니다. 이 세상 소풍 끝내고 저세상으로 돌아갔을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그것은 조금 보는 것일 뿐. 그가 「나는 거부하고 반항할 것이다」(『문예』 2월 호, 1953.)라고 외친 것을 아는 사람은 몇 안 될 겁니다. 그는 평생 외상(trauma)에 시달렸습니다. 1967년 ‘동백림사건’에 연루돼 모진 고문과 폭력 끝에 세상과 격리되었습니다. 이 일로 그는 거부와 반항을 모르는 무위(無爲)의 세계로 빠져듭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평화’라 하지만 불구입니다. 중국 전국시대 노자처럼 그도 ‘약탈, 폭정, 살육에 대처할 최선의 방법’으로 그저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시 「새」는 그의 시 세계를 관통하는 이미지를 담습니다. 한때 새는 자유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동백림사건 이후 공포에 싸인 박제된 새가 되었습니다. 이 시는 1966년 7월 『문학』지에 발표됩니다. 시인들은 어쩌면 이렇게 예언자적일까요. 자신에게 곧 닥칠 폭력과 온 나라를 뒤덮을 파시즘을 간파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죄 없는 자’는 아름다움과 자유의 제단에 바친 어린양이며 순교자일 겁니다. 그는 무슨 소리인가 들었습니다. “죄 없는 자의 피는 씻을 수 없다.” 시인을 통해 존재가 전하는 이 무서운 말을 세상은 알아들을까요. 모르는 것 같습니다. 오직 ‘모든 나무와 풀과 꽃들’만이 어루만지고 있을 뿐입니다.

인사동 골목길 찻집 ‘귀천’에 가보곤 하지만 천상병을 만난 적은 없습니다. 그는 영원히 하늘로 돌아갔나 봅니다. 그런데 인사동을 나올 때마다 무슨 소리가 들립니다. “죄 없는 자의 피는 씻을 수 없다.” 상흔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외상은 우리 삶을 구렁텅이 속으로 밀어 넣습니다.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니지요. 웃어도 자꾸 눈물이 납니다. 천상병이 손을 내밀어 얻은 천 원 한 장으로 막걸리에 취해 살았던 까닭입니다. 나날이 그를 만납니다. 세상은 무엇 때문인지 어린 새의 가슴을 지금도 겨누고 있습니다. 무위(無爲)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만 억지로 하지 않을 뿐입니다. 언젠가 온 수풀이 모여들 때를 기다리며.

 

■작가 소개

이민호 시인

1994년 문화일보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참빗 하나』, 『피의 고현학』, 『완연한 미연』, 『그 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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