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려은의 데일리 소나타] 일시정지
[이려은의 데일리 소나타] 일시정지
  • 이려은
  • 승인 2024.07.0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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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려은(민재)      수필가 / 비올리스트 / 목포시립교향악단 viola 상임 수석 연주자 역임
이려은(민재) 수필가/비올리스트
/목포시립교향악단 viola 상임 수석 연주자 역임

오늘은 항상 귓가를 맴돌던 음악이 들리지 않는다. 음악을 듣다가 잠시 멈추었기 때문이다. 매일 감미로운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으로 나 자신을 위로했지만, 오늘은 왠지 잠시나마 고요함에 귀 기울이고 싶었다.

‘내 손으로 이렇게 음악을 멈추다니!’ 이렇게 내 의지로 음악을 중단 시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음악은 언제나 내가 힘들고 지칠 때 의지할 수 있던 대상이었다. 그리고 그 의지의 대상은 음악을 듣는 것은 물론, 음악을 연주하는 것까지 모두 포함한다.

막상 음악을 멈추고 나니, 항상 곁에 있던 가족이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어느 순간 홀연히 사라져 버린 것처럼 허전하고 허탈한 기분마저 든다. 역시 음악은 나에게 필수불가결의 존재인가?

평소와는 다르게 음악 감상을 중단한 이유는 내가 음악 외에 어떠한 것을 원하고 좋아하는지 문득 알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그것에 대한 해답을 심각하게 찾고 싶은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는 인생사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철학을 배우고 알지 못해도 인생의 한 장면마다 모든 철학이 숨은 그림처럼 담겨 있다. 그리고 음악을 배우고 예술에 대해 알지 못한다 해도 우리의 삶 속에서 깊은 애환과 시련, 고통을 통해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고 예술로 승화 시킬 수 있다. 인간의 삶은 그야말로 철학, 예술, 종교 등 모든 것이 그대로 스며들어있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우선시 되고 있는 것은 바로 경쟁력이다. 어떤 분야에서든 경쟁력에서 이기고 독보적인 위치에 있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기본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인 구조와 분위기 덕분에 항상 멈추지 않고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일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우리는 멈추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다. 잠시 일상을 멈추고 자신의 오늘을 점검해 보거나, 너무 과한 생각이나 욕심을 비우는 일에는 과감하게 용기를 내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던 일을 멈추거나 노력했던 일을 멈추면 자신이 남들에게 도태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지난날 교향악단의 단원이었을 때, 다른 단원들에게 실력이 뒤처질까 두려워 늘 쫓기 듯 늘 연습에 매진했다.

그때는 연습과 연주 외에는 내 삶에 다른 활력소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만이 내 인생의 전부인 양 목숨을 걸었다. 그래서 그곳을 그만두고 나왔을 때 더 이상 내 삶에 낙이 없고 허무한 마음에 사로잡혀 한동안 우울증과 과거에 대한 집착으로 방황도 했다. 그렇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내가 좋아했던 일이 멈춰졌기에 그만큼 인생에 대한 나름의 깨달음을 얻은 것은 아닐까?

삶이 너무 고달프고 힘들면 잠시 멈추어 보는 것도 괜찮다. 모든 것이 멈추었다고 느낄 때, 그 멈춤 속에서 비로소 또 다른 가능성과 희망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자동차 도로 위에 ‘일시정지’라는 안내판이 없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인생의 도로에서도 때로는 ‘일시정지’라는 안내판이 꼭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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