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시인의 얼굴] 이 각박한 거리에서 꽃같이 살아보자고: 이호우, 「금」
[시민 시인의 얼굴] 이 각박한 거리에서 꽃같이 살아보자고: 이호우, 「금」
  • 이민호 시인
  • 승인 2024.07.0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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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가 사랑했던 시인들이 멀리 있지 않고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시민이라 여기면 얼마나 친근할까요. 신비스럽고 영웅 같은 존재였던 옛 시인들을 시민으로서 불러내 이들의 시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국민시인’, ‘민족시인’ 같은 거창한 별칭을 떼고 시인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조금은 어렵게 느껴졌던 시도 불쑥 마음에 와닿을 것입니다.

차라리 절망을 배워 바위 앞에 섰습니다.

무수한 주름살 위에 비가 오고 바람이 붑니다.

바위도 세월이 아픈가 또 하나 금이 갑니다.

- 이호우, 「금」

이 각박한 거리에서 꽃같이 살아보자고

가람 선생 이후 시조는 다시 목숨을 트인 듯합니다. 그래서 우리 삶의 일상을 드러내기 위해 애쓴 흔적이 현대 시조에 남아 있습니다. 그중 이호우는 단연 걸출합니다. 시조가 옛 장르라서 외면받고 있지만 오늘날 시조는 자유시보다 더 명징하게 현실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러한 명맥을 잇게 해 준 장본인입니다. 음풍농월에서 벗어나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 소리를 듣고자 귀 기울였으니까요. 이호우는 육사와 더불어 영남 지역 선비 정신을 삶과 시에 그대로 녹아냈습니다. 해방 이후 부조리와 불공정한 현실과 간단없이 맞섰습니다. 그때마다 역대 독재 정권은 그를 필화 사건으로 엮어 고초를 겪게 했습니다.

시 「금」은 1955년 『이호우시조집』에는 「균열」이란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후에 동생인 이영도와 공동 시집을 묶으며 이렇게 이름 붙였습니다. 우리말 제목이 더 아픕니다. ‘차라리’라는 말을 쓸 데는 더 나은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시인의 마음이 더 절실합니다. 이 당시 「바람벌」이라는 시 때문에 반공법에 걸려 치도곤을 당할 때입니다. 이승만을 향해 용비어천가가 난무할 때입니다. 하물며 ‘서울’을 이승만의 호인 ‘우남’으로 바꾸자 주장하는 모리배들이 날뛰던 시절입니다. 희망이 없으니 ‘차라리 절망’을 배우겠다는 현실이 더 핍진하게 다가섭니다.

이호우는 박정희 쿠데타 이후에도 절망을 삶의 뿌리로 삼았습니다. 월남전 파병을 풍자하는 시 「삼불야(三佛也)」를 쓰기도 하고 미국 핵실험을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서정을 잃지 않는 시의 구경은 놀랍습니다. ‘차라리 절망’을 배운 뜻이 ‘오히려’ 희망을 버리지 말자는 바탕이 자리하기 때문입니다. 시 「바람벌」 1연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 눈물 고인 눈으로 순아 보질 말라/미움이 사랑을 앞선 이 각박한 거리에서/꽃같이 살아보자고 아아 살아보자고.” 그래야겠습니다. 아직도 ‘미움이 사랑을 앞선 이 각박한 거리에서’. ‘차라리’.

 

■작가 소개

이민호 시인

1994년 문화일보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참빗 하나』, 『피의 고현학』, 『완연한 미연』, 『그 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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