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사랑받기 위해 내뱉은 말, ‘안 먹을래요’
오늘도 사랑받기 위해 내뱉은 말, ‘안 먹을래요’
  • 이세인 기자
  • 승인 2024.06.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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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이 얇아지는 여름이 다가오면서, 10·20대 젊은 층에서는 극단적으로 물과 소금만 먹는 ‘물·소금’ 다이어트가 유행하고 있다. 이른바 ‘뼈말라’(뼈가 보일 정도로 마른 몸) 다이어트. 다이어트의 사전적 의미(체중을 줄이거나 건강의 증진을 위하여 제한된 식사를 하는 것)와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이 체중 감량법은 반짝하고 사라질 줄 알았던 예상과 달리 최근 물 단식을 통해 짧은 기간에 살을 뺐다는 글이 화제가 되면서 다시금 청소년들 사이에서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실제로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SNS에서 식욕을 참는 비결을 공유하며, 몸무게를 경쟁적으로 인증하는 글이나 영상들이 잇따르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오늘(6월 13일) 기준 인스타그램에는 ‘물단식’ 해시태크가 달린 게시글이 1000개 넘게 게시되었으며, 엑스(옛 트위터)에는 짧게는 이틀, 길게는 열흘 넘게까지 ‘물단식’을 인증하는 글들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섭식장애의 뿌리를 살펴보면 그 속에는 단순히 아름다워지고 싶다는 마음뿐 아니라 애정이나 인정을 받고 싶다는 욕구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받고 싶은 만큼 애정과 인정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생기는 마음의 결핍이 몸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나는 식욕을 거부하면서부터 지금껏 나를 힘들게 했던 다른 욕구들도 내 의지로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열네 살에 우울증과 거식증 진단을 받았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책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는 중학생 시절 저자가 성적에 대한 압박, 가족 안에서의 상처, 주변의 가혹한 외모 평가와 또래의 따돌림 등을 겪으며 ‘먹지 않기’를 선택하게 된 과정을 진솔하게 풀어낸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언급되고 있는 ‘물단식’ ,‘뼈말라’라는 단어가 파생되기 한참 전의 일임에도 저자의 이야기가 전혀 생경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누구나 ‘거울이 나를 삼킨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외모 관리는 ‘자기 관리’의 일환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처럼 여겨지고, 몸은 외면뿐만 아니라 내면까지 판단하는 잣대로 적용되곤 한다. 하지만 거식증, 먹토, 씹뱉, 식욕억제제 처방을 ‘관리’라는 말에 함부로 포함해도 되는 걸까. 특히 주변의 시선과 반응을 중요하게 받아들이며 자아를 형성하는 청소년기에는 사회적으로 획일화된 기준이나 통념에 더 많은 영향을 받기 쉬운데 말이다.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내 분노밖에 없었다. 발작하듯 물건을 던지고 소리를 질렀다. 마음은 이미 너덜너덜해져 있었고 부모님과의 관계도 박살이 나 있었다.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자해하는 사람과 달리 거식증이 있는 사람은 그것이 자기 파괴 행위라는 자각은커녕 자신의 몸을 더 바람직하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생사의 갈림길까지 내몰리는 거식증을 두고 일부 사람들은 그저 외모를 가꾸려는 욕심 때문에 생기는 문제로 종종 치부하곤 한다. ‘프로아나(거식증‘Anorexia’과 찬성을 뜻하는 ‘pro’의 합성어)라는 말이 생기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프로아나’를 하나의 생활 방식으로 바라보자는 의견도 존재한다. 하지만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동이나 생각을 ‘생활 방식’이라 할 수 있을까. 정말 ‘프로아나’가 하나의 생활 방식에 불과하다면 그 방식을 바꾸려고 마음먹었을 때 큰 어려움 없이 쉽게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어느 날 찾아온 우울증과 거식증은 나를 찾는 과정이기도 했다. 늘 주변의 반응에 신경 쓰며 뭐든 잘하고 싶었던 나는 투병의 시간을 통해 이러한 욕구가 나를 위한 마음이 아님을 깨달았다. 누군가의 기쁨이 되기 위해, 누군가를 통해 나의 가치를 찾기 위해 잘하고자 했던 것이다. 내게 먹는 것을 통제하는 일은 누군가에게 쥐여 준 나의 주도권을 다시 찾기 위한 투쟁이었다.

청소년기 우울과 섭식장애 문제는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할 때 해결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저자는 10대 시기에 경험한 우울과 방황을 돌아보려는 이들과 지금 이 순간 그 고통을 앓고 있는 청소년 당사자와 가족들이 함께 읽기를 바라며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저자는 왜 기억을 복기하면서까지 이 고통스러운 시기를 그려냈을까. 아마 한 사람에게 있어 주변 사람의 영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 독자들에게 일깨워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우리는 의도하지 않은 상처들까지 모조리 예방 차단하며 성장할 수 없다. 다만 상처가 아문 성숙한 어른이라면, 이 사회가 청소년들에게 이상적인 모습을 지나치게 강요하지는 않는지 매 순간 살펴볼 의무가 있다. ‘몸 긍정하기’에선 ‘몸’이 아니라, ‘긍정하기’가 주인공이라고 말해줄 수 있는 어른이라면.

[독서신문 이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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