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책에 없는 게 현장에 있고, 현장에 없는 혜안이 책에 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책에 없는 게 현장에 있고, 현장에 없는 혜안이 책에 있다”
  • 유청희 기자
  • 승인 2024.06.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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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책이다. 성인 독서율이 1994년 이후 최저치인 43%를 기록했지만, 전국 시도교육청은 최근 어느 때보다 독서에 진심이다. 그 옛날의 수직적인 '독서 권장 캠페인'과는 다르다. 일방적으로 책 읽기를 강요하는 대신, 다양한 지역 사회 주체들과 연합해 학생들이 책 읽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를 통해 성인을 포함, 온 마을이 함께 책을 읽는 선순환을 꿈꾼다.

이런 시도가 이어진다면, 온 나라가 작지만 큰 '책의 물결'에 뒤덮이지 않을까? 짧은 영상의 시대, 느린 책의 가치를 지역사회에 불러오는 시도교육감들의 노력을 <독서신문>이 들여다본다. 그 첫 번째 순서는 지난 5월 '북웨이브'(BookWave) 독서 캠페인을 시작한 서울시교육청의 조희연 교육감이다.

북웨이브. 이름 그대로, 학교·가정·도서관을 넘어 서울시 전역에 '책의 물결'을 일으키겠다는 포부로 마련된 독서 캠페인이다. 이미 지난 5월, 가정이 함께하는 독서 문화를 위해 학부모 실천 단 369명이 ‘하루 10분 독서선언식’을 가졌다. 아울러 서울 경희궁 공원에서는 시민들이 야외에서 책을 즐기는 행사를 열었다. 이 밖에도 올 한 해 동안 학교와 지역 도서관 안팎에서 초, 중, 고교 별 맞춤형 독서 프로그램을 이어간다.

그야말로 대대적인 캠페인이다. 여러 궁금증을 안고 서울시교육청 사무실로 향했다. <독서신문>임을 밝히자 조희연 교육감은 책에 대한 애정을 콸콸 쏟아냈다. 잠시 잊고 있었다. 현재 삼선(三選) 교육감이지만 그의 시작은, 책 먼지를 들이마시며 좁은 연구실에서 책장을 펼치던 사회학자이자 교수다. 어쩌면 누구보다 책과 가까운 교육감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는 왜 지금 책을 읽어야 할까? 책의 의미는 무엇일까? 서울시 교육감에게 물었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사진=안경선 PD]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사진=안경선 PD]

Q. '학생들의 문해력 향상과 비판적 사고력 함양'을 위해 북웨이브 캠페인을 기획하셨다고요. 문해력이 최근 화두이지만, 사실 학교는 늘 학생들의 이해력과 사고력을 걱정해왔죠. 캠페인을 열 정도로 지금 학생들의 문해력이 취약한가요?

요즘 학생들은 독서보다 유튜브 등 웹 콘텐츠에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성인도 마찬가지죠. 출판 경향도 이제는 내용이 많고 학문적인 책보다 에세이, 대담 등 입말로 된 얇은 책이 선호된다고 하더군요.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의 문해력 부족을 가장 먼저 체감하는 게 학교 현장입니다. 실제로 한 고등학교에서는 수업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한 학생들과 방과 후에 단어 뜻을 찾고, 예문을 만드는 활동을 했다고 해요. 학생들 사이에서 '이제야 알 것 같다'라는 반응이 나왔다고 합니다. 어쩌면 학생들이 수업에 흥미를 못 느끼는 이유가, 문해력 부족 때문일 수도 있는 거죠.

Q. 최근에는 유튜브 지식 영상을 시청하는 것도 ‘독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아날로그인 '책'과 독서를 꺼내온 이유가 있다면요?

물론 그럴 수 있죠. 하지만 동일한 내용을 책으로 읽은 학생과 영상을 본 학생들의 이해력이 다르다는 연구가 있었어요. 설명하면, 종이책을 읽은 학생이 주요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결과물도 창의적이었다는 겁니다. 디지털 시대의 학생들은 빠르지만 수동적으로 내용을 받아들이는 환경에 익숙합니다. 학생들에게 종이책으로 자유롭게 상상하며 소통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 그리고 사고력과 비판력을 향상시키는 독서 교육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Q. 이번 캠페인에 학부모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독려하셨습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 사회는 학부모가 자녀와 함께 밥 먹을 시간도 부족한 게 현실이고, 모든 학생이 학부모가 있거나 함께 사는 건 아닐 텐데요.

생업으로 부득이 함께할 시간을 내기 어려운 학부모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주 보호자로서의 부모님이 없는 청소년들도 많아요. 다만, 각 학교에서 활동 중인 학부모 독서 동아리 참여자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이 '모두의 아이'를 키워나가는 마음으로 학교 안팎에서 독서 교육을 장려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를 독려하는 프로그램도 마련했고요. 무엇보다 가정에서 독서 교육이 어렵더라도 학교와 지역 도서관에서 다양한 활동을 제공해 소외되는 학생들이 없도록 세심히 살피겠습니다.
 

지난 5월 25일 서울 경희궁에서 열린 북웨이브 행사에 참여한 조희연 교육감. [사진=서울시교육청]
조희연 교육감은 지난 5월 25일 서울 경희궁에서 열린 북웨이브 행사에 참여했다. [사진=서울시교육청]

Q. ‘지역 사회’ 전체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캠페인의 가치와 연결되는군요.

맞아요. 학생, 학부모뿐 아니라 지역주민 등 다양한 구성원이 독서를 매개로 소통하는 문화가 생겼으면 해요. 이 일을 위해 지역별로 특색 있는 독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인프라를 활용해 캠페인의 영향력을 높여야 합니다. 간단하게는 독서하는 공간을 늘리기도 하고요.

Q. 북웨이브 기자간담회에서 만화책이 추천 목록에 있는 것에 대해 '만화책이 깊은 독서로의 마중물 역할을 한다'라는 답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교육감님이 생각하는 '좋은 책'이란 뭔가요?

'내가 읽고 싶은 책, 내 수준에 맞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자에게 긍정적인 독서 경험을 주는 게 중요해요. 하지만 학생의 눈높이와 관심과는 먼 책들도 많이 추천되더군요. 어떤 학생들에게는 이것이 독서에 대한 진입장벽입니다. 반대로, 책 읽기를 힘들어하는 학생에게, 읽고 싶은 책이나 수준에 맞는 책을 직접 선택하게 하니 점점 독서의 즐거움을 알아갔다는 사례도 있었어요. 내가 읽고 싶고, 내 수준에 맞는 책으로 독서를 시작하면 좋겠어요.

다만, 학생들이 지금의 수준에만 머무르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양한 영역의 독서로 확장하면 좋겠습니다. 그럴 수 있게 학교와 가정에서 지도가 함께 가야 합니다.

Q. 서울시 전역에 독서 물결을 일으켜 얻고자 하는 최종적인 목표가 있다면요.

모든 서울시민의 문해력과 비판적‧논리적 사고력, 민주시민성을 높이는 것. 이를 통해 가정과 학교를 넘어 지역 사회 전체에 기여하는 겁니다.

Q. 많은 사람들이 책을 못 읽는 이유 중 하나가 '시간 부족'입니다. 교육감님은 최근, 책을 읽고 계십니까?

하하, 저도 시간이 없어 목차나 중요한 대목 위주로 읽거나, 서평만 읽고 넘어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책은 늘 가까이하고 있습니다. 요즘 읽은 책의 저자를 모셔 대화하는 영상 콘텐츠도 만들었어요. 유튜브 채널 '조희연TV'에 올리고 있습니다. (최근, 조귀동 작가의 『이탈리아로 가는 길』과 서울대 조영태 교수의 『인구 미래 공존』을 소개했다)

조희연 교육감. [사진=안경선 PD]
조희연 교육감 [사진=안경선 PD]

이날 방문한 조희연 교육감의 서재 뒤편에는 수많은 행정 자료들이 빽빽이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교육감이 아닌 교수 시절 사진들을 보면 연구실 한편에 두꺼운 책들이 무너질 정도로 쌓여있었다. 30년 넘게 비판적 지식인과 학자로 살아온 흔적이다. 말하자면 10년 전 그가 교육감에 출마한 것은, '책'에서 배운 것을 교육 행정이라는 '현장'에서 실천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궁금했다.

Q. '책'에서 배운 것이 더 많습니까, 아니면 '현장'에서 배운 것이 더 많습니까?

교수 시절엔 당연히 책에서 많이 배웠죠. 그리고 교육감이 되고 난 후엔 책이라는 돋보기로 학교 현장을 깊이 있게 바라보고, 혁신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이론과 현장의 경험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는 겁니다. 이론에만 강하고 현장과 거리가 멀거나, 배경지식 없이 현장에만 가까운 행정가는 첨예한 갈등을 조율하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책에 없는 현실이 현장에는 있고, 현장에서 쉽게 생각하기 힘든 수많은 혜안이 책에 있을 수 있어요.

 

조희연 교육감. [사진=안경선 PD]

Q. 10여 년 동안 교육감으로서 현장에서 다양한 사건을 마주하셨습니다. 가장 어렵거나 아쉬운 일을 말씀해주신다면요.

선생님들의 교육 활동 보호가 미흡했다는 지적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하며 보완적 혁신으로 선생님들의 교육 활동을 보호하겠다고 천명했어요. 하지만 지난해 서울에서 가슴 아픈 비극이 있었죠. 그동안 우리는 어렵게 권위주의적 학교를 민주적 학교로 변화시켜 왔습니다. 그런데 여러 주체들의 권리가 상호 충돌하고, 어떤 극단적 주체는 법 제도를 자신의 권리만을 위해서 악용하기도 하더군요.

특히 교육행정가로서 학부모 민원 처리 방식이 교사들의 무력감을 키웠다는 자성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여러 민원들을 잘 구분해 교사의 교육 활동을 명백히 방해하거나 현장을 혼란스럽게 하면 교육청이 나서 선생님과 학교를 보호할 것입니다. 선생님의 교육 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 마련에 힘쓸 것입니다.

 

조희연 교육감. [사진=안경선 PD]

Q. 올해 서울시교육청의 비전 키워드로 ‘공존’을 내밀었습니다. 하지만 양극화 사회에서 공존이 참 어렵습니다. 학교 내 계급 격차도 심각하고요. 이 상황에서 교육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 앞에 놓인 문제가 참 많습니다. 기후 위기, 인공지능 시대 전환, 경제적 양극화, 교육에서의 과도한 경쟁 등. 상황이 어렵지만 역지사지를 기반으로 공존의 역량을 기르는 게 교육의 역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를 위해 저희는 '국·토·인·생' 정책(‘국’제공동수업, '토’론 교육, '인'공지능 교육, '생'태전환교육의 약자)을 확대할 계획입니다. 먼저, 국제 연결성이 강해진 지금, 다양한 학생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실시간 국제공동수업을 합니다. 이 외에도, 인공지능 활용법 교육, 기후 위기 문제를 교육과정과 연계한 생태전환교육을 중점적으로 추진할 예정입니다. 토론 교육도 강화하고 있고요.

Q. 북웨이브 프로그램에도 '저자와 함께하는 심층 쟁점 독서‧토론 한마당'이 있더군요. 토론 교육을 중시하십니까?

맞아요, 저희는 특별히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 교육'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그냥 토론이 아닌, 학생들이 다양한 주제에 대해 서로 입장을 바꿔 갈 수 있게 하는 토론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는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악마화하고 의견은 극단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공존형 토론에서는 최소한의 공통분모라도 도출하려는 시도가 중요합니다. 의견이 만장일치 되거나, 한 가지 결론을 낼 필요가 없는 거죠.

Q. 역지사지 정신은 독서와도 연결되네요. 독서는 타인의 입장이 되는 경험이기도 하니까요.

그렇습니다. 책을 읽는 게 그래서 중요합니다. 또 독서문화와 함께 실천도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저희 서울시교육청도 생태전환교육의 가치에 맞게 올해부터 일회용품 미사용 정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합니다. 학교 내 교육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 전체에 희망을 주는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책을 읽는 북웨이브 캠페인도 마찬가지고요.

[독서신문 유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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