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려은의 데일리 소나타] 달빛을 드리우다
[이려은의 데일리 소나타] 달빛을 드리우다
  • 이려은
  • 승인 2024.06.0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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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려은(민재)      수필가 / 비올리스트 / 목포시립교향악단 viola 상임 수석 연주자 역임
이려은(민재) 수필가/비올리스트
/목포시립교향악단 viola 상임 수석 연주자 역임

땅거미가 지는 서쪽 하늘에 짙은 어둠과 밤이 몰고 오는 서늘함이 서서히 번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은은한 달빛이 머리 위로 살포시 내려앉는다. 하늘을 보니 보름달이 둥실 떠 있다. 이 ‘달빛’ 때문일까? 요 며칠 사이 집안의 모든 전등불을 끄고 오롯이 달빛을 방안으로 들였다. 비록 빛은 희미하지만 달빛이 비치는 책상 위에 놓인 일기장에 하루를 정리하기엔 충분하다.

달을 바라보며 자신을 돌이켜 보는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게 왠지 행복하다. 그동안 휘황한 문명의 빛에 가려져 달빛이 지닌 미학(美學)을 미처 발견 못한 탓인가 보다. 달빛은 사물이 지닌 형태를 완벽히 드러나게 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은폐하지도 않는다. 달빛을 받은 나무도, 들꽃들도 자세히 보면 이파리와 꽃잎들이 눈에 선명히 보인다.

그동안 문명의 불빛에 익숙해져 달빛을 허술히 여긴 게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해본다. 햇살이 밝게 비치는 낮에는 세상 모든 풍경들과 만물들이 너무 잘 보여서 그곳들에 시선이 더욱더 집중이 되기가 쉽다. 하지만 요즘엔 밤에는 밖의 세상 보다 나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어 평온하고 고요한 여유마저 안겨주는 게 이 달빛 덕분이기도 하다.

열린 베란다 문으로 희미하게 비추는 달빛을 보면 엇박자로 시작하는 리듬의 멜로디가 귓가에 환청처럼 들린다. 적막한 밤에 온 누리를 비추는 달빛을 묘사한 곡이 그것이다. 묘한 분위기와 매우 서정적이며 몽롱한 느낌마저 드는 이 곡은 프랑스의 인상주의 음악가인 ‘드뷔시’가 작곡한 ‘달빛’이라는 작품이다.

드뷔시는 단순히 곡을 작곡하고 연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곡의 표현들을 다양한 주법과 상징적인 표현, 묘사를 잘 살려내는 작곡가로 유명하다. 이러한 특징은 당시 화가들과 시인 등 인상주의의 예술가들과 긴밀한 교류를 가지며 그들에게서 많은 영향과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달빛’은 네 개의 소품으로 된 <베르가 마스크 모음곡> 중 제3곡에 해당되는 곡으로 영화의 소재로도 많이 사용되었고 대중들에게도 친숙하게 알려진 작품이다.

1991년 작품의 영화 <프랭키와 쟈니>에 이 작품이 삽입되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중년의 남녀 주인공이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서로 보듬어 주며 사랑을 키워 나가는 내용이어서 매우 인상 깊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남자 주인공은 상대 여주인공에 대한 마음의 문을 쉽게 열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남자는 우연히 라디오를 듣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드뷔시의 ‘달빛’을 듣고 라디오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그 음악을 다시 들려달라고 신청을 한다.

라디오를 진행하는 DJ는 두 사람의 사랑의 결실을 진심으로 기원하며 이 곡을 방송에 나가게 했다. 이 음악을 들은 두 주인공은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서로의 마음을 다시 열게 되는 것으로 영화는 막을 내리게 된다. 이 곡은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잔잔하게 움직이는 묘한 매력과 감성을 불러일으킬만한 서정성이 느껴지는 곡이다.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서로의 굳게 잠긴 마음의 문을 열어 끝내는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된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다.

달빛이 고요히 흐르는 밤, 나 역시도 그 달빛 아래 서면 내면의 침잠에서 헤어날 수 있을까? 오늘도 달빛으로 마음의 커튼을 만들어서 외롭고 허전할 때마다 가슴에 드리우고 싶다. 그러면 혼탁했던 마음마저 정화되는 기분이 들지도 모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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